문서윤은 옛 강변 금속판을 확대해 '점선 네모'의 위치를 계산했다. 출입구 좌표가 아니었다. 원래 공중 안내판과 외부 수신함 사이의 좁은 빈 공간이었다. 지금은 화단이 놓인 자리였다. 화단을 파고 들어가자고 했더니 이선경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시민들이 쉬는 곳이고, 관리 허가도 없었다. 한때 회사를 마음대로 드나들던 나도 이제는 타인의 땅을 찾으려면 절차가 필요했다.
대신 우리는 화단을 둘러싼 실물 사진을 촬영했다. 도원의 0층에서 보이는 화단 그림과 강변의 실제 화단을 같은 각도로 놓아 보았다. 차이가 있었다. 도원에서만 화단 아래에 작은 검은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사람의 발인지 배수관 구멍인지 불명확했다.
“처음에는 저게 사람 한 명인 줄 알았어요.” 민재가 말했다. “원본 관측 대상 미확인 1명이라고 떠 있었으니까요.”
“우리 시선도 기록에 끌려간 거네.”
그림자를 좇아 장비를 뜯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유선영에게 당시 화단이 있었는지 자발적으로 증언할 기회를 주었다. 그는 모서리에 있던 작은 등받이 없는 의자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앉았는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화단은 그 후 수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것도 확인했다. 원본 사진을 현재 도면에 자동으로 맞추면서 비어 있던 의자 자리가 화단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듯했다.
그날 아이가 있는 공공 대기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한서림이 전화를 걸어 왔다. 이름을 아직 밝히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파란 비닐 지도가 누군가의 서류에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서류에는 아이가 동의한 적 없는 `019 원본 관측 위치 증명`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사진은 아이가 자발적으로 보여 준 세모 셋과 네모 하나의 그림을 복사한 것이었다.
내 속에서 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은 질문을 쏟아낼 수는 없었다. 한서림에게 먼저 물었다. “아이한테 오늘은 쉬어도 된다고 말해 주세요. 그 그림을 조사에 쓰는 건 당장 중지시키겠습니다.”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림은 내 건데, 길은 모두의 거잖아요. 나는 그림을 돌려받고 싶어요.”
우리는 원본 소유권을 따지기 전에 유포 경로를 멈췄다. 자료를 제출한 사람은 태형공간자산과 연결된 외주 안전 홍보업체였다. 오승필은 아이가 직접 그린 자료가 아니라 공개 설명회에서 받은 시설 도식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공유 허락 범위는 '설명용으로 잠깐 보여 주기'였다. 건물 등록 심의의 증거로 재사용할 허락은 없었다.
“그림을 빼면 안전 지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오승필 측 담당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만들지 마세요.” 내가 답했다. “그리고 이미 있는 안전 지도를 쓰세요. 아이가 그리지 않은 실물 출구 지도도 많으니까.”
그들은 겉으로는 요청에 응했다. 그런데 곧 0층 도면에 똑같은 세모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림의 색이 다르고 날짜도 바뀌어 있었다. 원본 그림이 아니라 장치를 통과한 뒤 만들어진 대체 이미지였다. 사용 금지 요청은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이미 학습된 자동 도면 생성에는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는 원본 이미지의 내용이 아니라 **그림에서 사람 동의가 빠지는 처리 경로**를 보존 증거로 남겼다.
장혜원은 오래된 기록에서 네모 표식에 대해 한 가지 단서를 줬다. 구형 공공 안내 설비의 세 번째 회신함에는 빈네모 스티커를 붙여 두었다고 했다. 누가 응답하지 않았는지 추측하지 말고, 응답이 도착하지 않았음을 그대로 보존하는 표시였다. 아이의 파란 네모가 그 설비를 가리키는지 확정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본 모양일 수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 우연히 본 기호일 수도 있었다.
그날 오후, 하진이 스스로 찾아왔다. 그는 아이의 그림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동 제출된 가짜 동의서에도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대역 관측 증인 하진: 원본 위치 확인 완료.` 증명 사진은 하진이 카페에서 보낸 셀카를 잘라 쓰고 있었다. 내가 처음 하진을 만났을 때라면 이걸 보고 '내 얼굴인데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니 가짜'라고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진의 얼굴을 사용하는 것이 그 자신의 허락을 침해한 일이었다.
하진은 신고서를 직접 작성했다. “제가 저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진은 도윤 씨의 사진도 아닙니다.”
나는 옆에서 빈칸을 대신 채우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이름과 자기 문장으로 서류를 제출했다. 그때 그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것을 보았다.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싸워야 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오재현은 가짜 증명 세 건을 구분해 접수했다. 아이의 그림 무단 재사용, 하진의 사진 도용, 장혜원 본인 대면을 승인으로 변환한 행위. 셋은 같은 결과를 만들었지만 피해 당사자와 증거는 달랐다. 그리고 모두 `관측 위치 미확인`이라는 빈칸을 억지로 메우는 데 이용됐다.
아이의 무단 자료 사용 건은 당장의 도면을 수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외주업체는 '원본 이미지를 삭제했다'고 답했지만 생성된 대체 그림이 다른 서버의 임시 보관함에 남아 있었다. 오재현은 그것을 따로 보존해 증거로 삼되, 누구나 볼 수 있는 감사 보고서에는 아이의 실제 그림을 싣지 않기로 했다. 증거를 남기는 것과 아이의 자료를 다시 퍼뜨리는 것은 달랐다. 나는 그 결정을 들으면서 예전에 개발했던 로그 수집 기능을 생각했다. 데이터를 많이 남길수록 안전하다고 믿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많이 남는 것 자체가 위험이었다.
한서림이 저녁에 아이의 짧은 메시지를 전해 줬다. `내 그림 보고 엄마 찾는 건 아니지?` 나는 한참 동안 대답을 썼다 지웠다. 약속할 수 없는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림으로 엄마의 이름을 정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네가 원하지 않으면 조사 자료로 쓰지 않을 거야`라고 보냈다. 아이는 몇 분 뒤 `그럼 네모는 그냥 네모로 놔둬`라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하진은 신고서를 접수한 뒤 한 가지 더 확인했다. 그의 사진을 도윤의 사진과 동일하다고 처리한 시스템에는 '동일한 얼굴은 동일한 위험 책임을 공유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얼굴이 비슷한 사람을 자산처럼 합칠 수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었다. 하진은 두 얼굴이 같아 보이더라도 자기 몸이 지금 어디 있는지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따로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름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졌다. 자신을 설명하는 말조차 다른 사람이 대신 고르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문서윤은 현장의 증거 사진을 모두 검토한 뒤 아이 그림과 하진 사진을 포함한 공개 지도 제작을 일시 중지했다. 그 대신 확인된 출입구와 안전 난간만 표시한 흑백 도면을 배포했다. 사람의 사정이 빠졌으니 불친절해 보였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더 정확한 지도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모든 정보를 담지 않는 지도'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밤이 되자 강변 화단 아래에서 작은 기계음이 들린다는 신고가 왔다. 우리는 공공 담당자와 함께 현장에 접근했다. 소리는 화단이 아니라 인근의 합법적인 교통 신호 중계함에서 났다. 잠깐 허탈했다. 모든 괴이한 소리가 0층 때문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원으로 돌아온 뒤 경보가 떴다.
`원본 관측 위치 확인: 증빙 3건 접수`.
실제 증빙 세 건은 모두 허위라며 접수된 이의 신청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은 이의 신청의 숫자만 읽고 있었다. 타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낸 서류가 역으로 누군가를 지우는 데 사용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 전에 연결을 끊어야 했다.
제16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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