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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62화
PAYLUA ORIGINAL · 제162화

대체 위치를 만들겠다는 사람들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534자

오프라인 책장
타이머가 열 분을 표시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지 계산했다. 예전 같았으면 서버 담당자였다. 지금은 실제로 바닥을 밟고 있는 사람들부터였다. 도원 시설팀, 강변 순찰 담당자, 세림병원 야간 당직자. 화면을 바꿀 수 없는 동안에도 사람은 계단을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안전선을 좁히지 마세요. 새로운 공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서윤은 도원에, 나는 강변의 이선경에게 각각 전화했다. 안내판 터는 멀리서 관측만 하기로 했다. 어느 것도 발굴 허가 없이 뜯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오승필이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옛 안내판 터에 태형공간자산 로고가 적힌 이동식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는 전화기 너머로 태연히 말했다. “위험한 시설을 아무나 건드리게 둘 수 없잖습니까. 저희가 보존 비용을 부담하겠습니다.” “그럼 장벽 옆에 '대피 통로'라고 적힌 표지부터 가리지 마세요.” “법적 시설물이 아니어서 명칭을 보류한 겁니다.” 그는 나보다 법률과 서식에 밝았다. 문제는 그 재능을 사람이 아니라 빈 공간을 자기 회사 장부에 넣는 데 쓴다는 점이었다. 오승필은 더 교묘한 제안을 꺼냈다. 옛 안내판을 사기업이 관리하는 임시 시설로 지정하면 관측 장치가 요구하는 `대체 위치`의 주소가 확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원 안에 무작위로 방이 생기는 현상을 막는다는 설명이었다. “가능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적어도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 말은 불안한 사람을 설득하기 좋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0층에서 가장 위험했던 일 대부분은 바로 그 '일단 해 보자'에서 시작됐다. 타이머가 여덟 분을 남기자 도원의 복도 벽이 젖기 시작했다. 습기를 머금은 회색 페인트 사이로 노란 안내선이 나타났고, 철거된 강변 안내소의 작은 우편함이 사무실 비상문 옆에 튀어나왔다. 서윤은 테이프를 붙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배만식 소장은 벽에 구멍을 뚫자는 관리자의 요구를 거절했다. 젖은 벽 뒤가 실제 배수관인지, 이미 사라진 과거의 공간인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선경은 공공 기록실에서 `019-2` 시설 보수 도면을 찾았다. 안내판 기초는 도로 시설과 직접 연결되지 않았고, 아래에는 좁은 점검 공간이 있었다. 접근하려면 지하 빗물 관로의 허가가 필요했다. 오승필은 그 도면을 알아보자마자 장벽을 점검 공간 쪽으로 옮겼다. 그는 단순한 탐욕꾼이 아니었다. 대체 위치를 자기 회사 관할처럼 보이게 만들면 도원 시스템이 내놓을 새로운 공간을 선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바로 현장 철거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현재 비상 통로를 가리는 물건에 대해서만 시정 요청을 넣고, 관측 장치의 관리 요청을 정식 증거로 보존했다. 싸울 때 이기는 방법은 언제나 한 가지가 아니었다. 상대가 법을 이용하면, 우리가 법을 버릴 이유는 없었다. 도원으로 돌아가는 길, 강민재가 원본 인계 카드의 스캔을 복원했다는 연락을 했다. 이선경이 제공한 공개 가능한 부분만 화질을 개선했다. 현장 보관 도장 옆의 빈칸에는 희미한 `검수 없음`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인을 누가 했느냐가 아니었다. 애초에 두 명의 검수가 모두 필요했던 작업이 하나의 도장으로 승인될 수 있도록 조건이 바뀐 시점이었다. “변경 이력이 있나?” “도원으로 이전하기 전, 협의회 장비 표준화 작업 때요. 서식 이름이 `현장 인계`에서 `인사상 자산 인계`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자산이라고 불렀다고?” “아니요. 근데 시스템은 그렇게 읽은 것 같아요.” 그 순간 `00:04:20`으로 줄어든 타이머가 멈췄다. 정지시킨 것은 우리의 접근 권한이 아니었다. 서윤이 보낸 '현장 경계 검수 미완료' 수동 보고가 안전 회선을 통해 도착한 것이다. 구형 장치가 아직 지우지 못한 원래 규칙은 `두 곳의 현장 검수 결과가 서로 다르면 자동 공간 재생 금지`였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도원의 젖은 벽과 강변의 멀쩡한 보도였다. 두 곳이 일치하지 않았다. 오승필이 전화를 걸어 왔다. 이번에는 웃음이 없었다. “당장 재생을 멈추면 공간이 중간 상태에 남습니다.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지금 멀쩡한 길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갇히지 않게 지켜야죠. 새 주소를 누가 소유하느냐는 나중 문제고요.” “그렇게 말을 돌리면 비용은 남습니다.” “비용이 남는다고 사람을 집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복도는 젖어 있었다. 점검 장치는 원본의 강변 습도를 계속 재생했다. 재생 명령을 중단했다고 모든 변화가 거짓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배만식이 배수관 접합 상태를 확인했고, 서윤은 누수 구간을 표시했다. 물리적 피해는 물리적으로 수리해야 했다. 타이머가 멈춘 직후에는 도리어 문제가 많아졌다. 도원의 복도는 우편함이 튀어나온 채로 고정돼 있었고, 출입 금지 구역 안에는 젖은 바닥이 남아 있었다. 전산 담당자는 성공이라고 표시한 화면을 보여 줬지만 배만식은 고개를 저었다. “화면이 멈췄다고 바닥이 마르는 건 아닙니다.” 그는 누전 검사를 먼저 하고, 물이 닿은 배선의 전원을 분리한 뒤 별도의 조명을 설치했다. 위험 구역 밖에서만 작업할 수 있도록 교대 인원도 다시 짰다. 작업하던 한 명이 낡은 우편함을 보고 어릴 적 자기 동네에 있던 물건과 닮았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어 가족에게 보여 줘도 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서윤은 지금까지 확인된 촬영 자료와 미확인 물품의 위치를 구분하고, 개인 휴대전화 촬영은 안전 점검이 끝날 때까지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직원은 처음에는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물건이 다른 장소의 실제 우편함과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무조건 명령하는 것보다 이유를 말하는 일이 오래 걸려도 효과가 있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괜히 미안했다. 퇴사하던 날, 나도 누군가가 왜 내 이름을 회수하겠다는지 설명해 주길 바랐으니까. 지금은 내가 설명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복사기는 없애도 되겠죠? 저번엔 종이 괴물이 나왔잖아요.” 나는 대답했다. “복사기 죄는 아니에요. 어떤 결재를 복사하느냐가 문제죠.” 배만식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내 월급명세서는 열 장쯤 복사해 줘라. 금액이 늘어나는지 보게.”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웃을 수 있다는 건 통로가 적어도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였다. 그날 밤, 공공 보관소에서 작은 상자가 하나 더 발견됐다. `019-2 보수 전 사진`이라 적힌 봉투 안에는 안내판과 세 사람의 그림자가 찍혀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진이었다. 안내판 하단에는 `최초 보관자 현장 입회`라는 글씨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현장 보관 담당의 서명은 이동 승인 서명이 아니다.` 오승필이 붙였던 장벽이 마지막 사진에서 떼어지는 동안, 도원 0층의 멈춘 타이머에는 새로운 작은 항목이 나타났다. `대체 위치 생성: 보류`. `다음 조건: 최초 보관자 본인 확인`. 나는 화면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을 찾는 문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람의 이름을 시스템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왜 애초에 이동을 승인하지 않았는지, 직접 들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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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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