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그린 지도에는 세모 세 개가 있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세모가 대피소를 뜻하는지, 엄마가 약속해 둔 가게를 뜻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확인한 것은 아이가 그 표시를 공개해도 된다고 직접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강변 019 원본 자료에서 똑같은 세모 셋이 발견됐다. 세모 셋 옆에는 작은 네모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곧바로 그림을 다시 그려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설계도를 찾겠다고 아이의 기억을 시험하는 일은 그만두고 싶었다.
“사진에 있는 세모만 기술적으로 비교해 보죠.” 문서윤이 말했다. “아이 얼굴과 개인정보는 제외하고, 지난번에 허락받은 기호만요.”
김하린은 동의 범위를 확인한 뒤 공개된 그림 사본에서 기호 부분만 분리했다. 옛 019 설비도와 나란히 놓자 세모의 각도가 조금 달랐다. 하나는 피난 방향, 하나는 점검 담당자의 확인 위치, 하나는 접수 실패 시 머물러야 하는 공공 대기점이었다. 문제는 네 번째 네모였다. 기호 설명에는 `발신자 없음 / 수신만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게 IN-000일까요?” 강민재가 물었다.
“비슷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림만으로 단정하지 마.”
그날 오후 한서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름 없는 아이가 스스로 종이 한 장을 더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도원으로 데려오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서림은 아이가 안전하게 쉬는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범위만 설명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켰다. 화면에는 아이의 손과 파란 색연필만 보였다. 아이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네모를 자꾸 문이라고 해서요.” 아이가 말했다. “그건 문 아니에요. 엄마가 네모는 기다리는 거라고 했어요.”
“기다리는 게 뭔데?” 내가 물었다.
“그건 몰라요. 엄마는 제가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이해를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엄마의 직업이나 행방을 증명할 의무는 없었다. 아이는 세모 셋을 가리킨 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길을 다 그리면 네모는 비워 두랬어요. 누가 나중에 그릴 거라면서.”
그 말은 0층의 빈 관측자리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가 당시 설계자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019 자료를 본 다른 사람이 나중에 알려 줬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누군가 빈 공간을 사람 이름으로 채워야 한다는 규칙을 잘못 믿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통화가 끝나고 아이에게서 또 하나의 메시지가 왔다. `제 그림을 회사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우리는 원본 그림을 도원 서버에 업로드하지 않았다. 기술 비교 자료에는 사람 정보가 없는 기호 도식만 남겼고, 그 역시 외부 감사 보관소에서만 열람했다.
통화가 끝나고 한서림은 아이가 종이를 상자에 넣어 달라고 했다고 알려 줬다. 아이는 자기 그림을 우리가 너무 오래 보고 있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 요청을 그대로 따랐다. 아이가 그린 선을 다시 요구하지 않고, 이미 받은 범위의 자료도 필요 최소한의 표식만 보존했다. 나는 무심코 “그림 하나면 큰 비밀을 풀 수도 있는데”라고 말했다가 서윤의 눈치를 봤다. 서윤은 대답 대신 사무실 벽에 걸린 안전 수칙을 가리켰다. `자료를 확보했다는 것은 사람을 확보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날까지는 이 문장이 동의를 구하는 문제라고만 여겼다. 오늘은 사람이 자기 그림을 더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을 때 멈추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날의 작업 기록에는 누가 무엇을 들었는지도 분리해서 남겼다. 아이가 직접 말한 문장은 짧았다. 어머니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실제로 019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점을 빨간색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색으로 쓰면 자꾸만 비밀을 밝혀야 할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서윤은 ‘아이에게 추가 확인을 요구하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미해결 사건이 남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었다.
그날 밤 서지완이 찾아왔다. 그의 입사 예정일은 이미 도착했지만 도원에 강제 입사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의 고용 계약과 ‘내일의 출근부’를 구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도윤인 나에게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내가 퇴사하려고 애쓰던 회사에 입사 예정자가 찾아와서, 아직 출근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완 씨, 이럴 땐 출근 전 교육이 먼저라던데요.”
“교육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없던데요.”
“고객사 특수 환경이라고 써 놨을 겁니다. 아주 특수하죠.”
지완은 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가 역방향으로 움직이던 날의 영상을 가져왔다. 원본에는 투사광 때문에 그림자가 두 개로 보이는 구간이 있었지만, 단 한 프레임은 달랐다. 지완이 가만히 있는데 그림자 끝이 강변 019의 네모 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제가 그때 저쪽으로 간 기억은 없어요.” 지완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 그림자를 제 행동 기록으로 삼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 요청을 기록했다. 그는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만 스스로 제공했다. 지완의 미래 출근부가 실제 미래를 보여 준다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예언처럼 쓸 이유가 없었다.
오재현은 외부 보관소의 옛 설계 목록에서 ‘세모 셋, 네모 하나’에 대응하는 구형 기호표를 찾아냈다. 세모 셋은 각각 `외부 신고`, `중계`, `실물 확인`이었고, 네모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응답을 남기는 자리`였다. 이 네모에 사람을 기입하는 기능은 원래 없었다.
그런데 도원 인사 연동 자료에서는 네모가 `최종 담당자`로 바뀌어 있었다. 하진의 서명을 예약하던 것과 같은 필드였다. 누군가 빈 응답을 인격 있는 사람으로 대신 채워 넣으려고 했다는 단서가 또 하나 생겼다.
“아이 엄마가 그걸 알았을까요?” 민재가 물었다.
“알았다는 증거는 없어. 하지만 그 방법을 누군가 아이에게 보여 준 건 맞아.”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요즘 ‘증거가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와 ‘증거가 없으니 네가 틀렸다’가 전혀 다른 말이라는 걸 알아 가고 있었다. 나도 가끔 헷갈리는 부분이었다.
밤 열 시, 강변 시설의 독립 신고 수신기가 짧은 불빛을 냈다. 아이가 가리킨 네모와 같은 위치였다. 공공 수신 기록에는 아직 발신인 정보가 없었다. 우리는 긴급 구조대에 현장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근의 실제 통로는 안전했고, 출입 통제선 바깥 시민은 대피를 완료했다.
그런데 신호의 내용이 평소와 달랐다. 무기명 신고가 아니라 설비 점검 문장이었다.
`세모 셋이 모두 응답했습니다.`
`네모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수신 위치와 별개로 발신 시간이 표시됐다.
`내부 대기 기록: 17:53`.
나는 휴대전화로 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찾는 건 사라진 사람일 수도 있지만, 먼저 그 시간이 무슨 시간인지 확인해야겠어. 비어 있는 곳에 누군가를 세우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
민재의 대답은 의외로 단호했다. “네. 이번엔 빈칸을 남겨 놓고 확인해 보죠.”
어쩐 일로 인프라팀의 보고서가 상식적인 방향으로 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공공 수신기에서는 네모 표시 하나가 서서히 입체로 변하고 있었다. 화면 속 네모가 손바닥만 한 문틀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오래된 설계도에 그려진 빈칸이, 실제 공간에서 문이 되려 하고 있었다.**
제1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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