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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54화
PAYLUA ORIGINAL · 제154화

누구에게 구조 요청을 보낼 것인가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558자

오프라인 책장
세림병원 302호 환자의 이름을 0층 첫 사용자로 입력하려던 절차가 중단된 뒤, 도원에는 잠깐 고요가 찾아왔다. 그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열 시 십일 분, 019-B 회신함이 이상한 안내문을 출력했다. `신고 수신 확인: 완료.` `안쪽 구조 요청 전달: 실패.` `실패 사유: 유효한 담당자의 이름 없음.` 나는 종이를 읽고 한숨을 쉬었다. “이 회사는 사람 없으면 경고도 못 보내는 병에 걸렸나 봐요.” 김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옛 공공 회선에서는 담당자 이름을 필수로 두지 않았어요. 그건 기업 인사 연동에서 붙인 조건이에요. 지금은 회선을 분리했으니까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최근에 수정한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바깥의 1758 신고선은 정상. 안쪽의 IN-000은 수신 확인을 받았지만 원문은 여전히 발신함에 남아 있었다. 도윤이라는 운영자 명칭도, 아이 팔찌 번호도 그 안에 넣지 않았다. 우리가 확보한 것은 보내지 못한 신고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최도경이 옛 공공 수선 기록을 가지고 도원을 찾아왔다. 그는 낡은 공중전화 수리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고, 전화를 분해할 때는 의외로 손이 조심스러웠다. “기계에 사람이 없어도 경보를 보내는 선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설명했다. “대부분은 사고 나면 끊어 버리지요. 그 선이 동작하는 걸 봐도 사람들은 꼭 누가 버튼 눌렀냐고 묻거든요.” “버튼이 스스로 눌렸을 수도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버튼은 아닐 수 있어요. 압력이나 문이 닫히는 걸 감지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본을 봐야 압니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IN-000 발신함 바깥면의 구조를 검토했다. 외부 수신 확인이 오면 내부 신고 본문이 보내지는 게 정상 절차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본문을 막는 보조 잠금이 있었다. 잠금 해제 조건은 `안쪽 대피 경로의 안전 확인`. 즉, 신고를 먼저 받고 구조할 사람을 보내야 할 상황에서, 정작 **대피가 확인돼야 신고 내용을 보내는** 역순이 생겨 있었다. “누가 이런 순서를 만들었습니까?” 민재가 물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서윤이 말했다. “현장 구조 완료를 출석 완료로 바꿔 놓은 것처럼, 다른 용도의 확인 단계를 한 줄로 합친 거예요.” 우리는 원본을 덮어쓰지 않고 두 조건을 나눠 보았다. 신호가 수신됐다는 사실은 지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전 상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안전 상태를 ‘완료’로 거짓 입력하지 않고도, 미발신 신고의 존재와 장비 위치를 공공 구조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임시 절차를 만들자 우편함에서 짧은 문장이 인쇄됐다. `신고 존재 확인됨. 본문 수령 권한 별도 확인.` 내용이 없는 통보였지만 구조 현장에서는 중요했다. 도원 아래에 무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019-B 복도의 왼쪽 문을 향해 카메라를 돌리자 벽에 우리를 닮은 그림자가 생겼다. 그림자들은 지금 사람들의 동작과 한 박자씩 어긋나 있었다. 내가 팔을 들지 않았는데 내 그림자는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하진이 한 걸음 물러났다. 내 얼굴을 한 그에게만 그림자가 두 개였다. 하나는 그의 발뒤꿈치에 붙어 있었고, 하나는 어제의 나처럼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저건 제가 아닙니다.” 하진이 말했다. “알아. 네가 손 안 든 거 봤어.” “그래도 계속 제 이름을 보여 줘요.” 모니터에는 `차도윤 / 대체 발신자`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누군가 하진을 발신자로 지정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거절했던 책임을 내 얼굴을 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겠다는 뜻이었다. “하진은 별도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임의 발신 처리하면 안 됩니다.” 서윤이 시스템 입력창에 정정 사유를 적었다. 그때 하진이 직접 말을 보탰다.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보내러 온 게 아닙니다. 제 할 말이 생기면 그때 제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말을 끝내자 두 번째 그림자가 잠깐 멈췄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섣부른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느꼈다. 우리가 그를 ‘가짜 도윤’이라고 부르며 밀어냈다면, 장치는 지금쯤 그를 처리 가능한 빈 서명칸으로 삼았을지도 몰랐다. 오승필은 이 와중에도 새로운 계산서를 보냈다. 이번에는 소송 예고가 아니라 ‘임시 구조 운영비 산출표’였다. 산출표에는 구조대 안전 울타리, 의료 대기, 외부 신고 수신, 심지어 이름 없는 아이가 사용한 담요까지 항목별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담요에 임대료가 붙었네요.” 민재가 말했다. “이러면 겨울에는 숨 쉬는 것도 시설 이용료로 걷겠어요.” 나는 그 말을 웃어넘기지 못했다. 대피 경로를 상품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도망치는 일조차 빚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오재현은 현재 비용 지출 책임과 향후 민사상 청구 여부를 분리해 감사에 넘겼다. 누군가 실제로 지출한 안전 비용은 처리해야 했다. 다만 그 비용이 사람의 이동권이나 미확인 신고의 소유권을 사는 증표가 될 수는 없었다. 오후에는 B-0에서 나온 하림이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바깥 벤치에 앉아 한참 물을 마셨다. “저 안에서는 분명히 누군가 ‘안쪽에서 밖을 보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을 본 기억은 없어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뇨, 하나는 정확해요.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바닥에 네모난 빛이 생겼어요. 제가 문을 찾으려 하면 그 빛이 문처럼 보였고요. 근데 빛이 없어질 때마다 문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의 진술을 현재 관측영상과 비교했다. 오래된 17:54 사진에는 관측자 자리가 비어 있는데 네모난 빛이 남아 있었다. 마치 시스템이 사람 대신 빛나는 자리 하나를 기준 삼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누가 관측했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관측해야 했는지가 남은 건가.” 내가 중얼거렸다. 서윤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실제 벽이 생기는 원인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죠.” 퇴근 시간 무렵, 최도경이 수신함 덮개의 구형 릴 사진에서 오래된 손글씨를 찾아냈다. `수신 확인과 구조 완료는 절대 함께 찍지 말 것.` 그 글씨 바로 아래에는 다른 잉크로 작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원문이 발신되지 않을 때에는 먼저 안쪽을 들을 것.` 나는 그 화살표를 따라 카메라를 이동시켰다. 안내 그림에서는 왼쪽으로 가야 했지만 실제 복도의 왼쪽은 벽이었다. 하진이 바닥을 보고 말했다. “이 방향은 벽이 아니에요. 원래는 안쪽에서 소리가 나가는 자리였어요. 제가 그걸 봤다는 뜻이 아니라… 발밑이 그렇게 느껴져요.” 우리는 그의 체감과 실제 센서 값을 분리해 기록했다. 그리고 방호벽 바깥의 진동 센서를 그쪽에 하나 더 붙였다. 이번에는 분명한 신호가 잡혔다. 17시 53분 표식이 찍힌 곳과 같은 위치였다. 센서 화면에 한 줄이 떠올랐다. `IN-000 발신함 위치: 도원솔루션 하부가 아님.` `실제 원본 위치: 019 외부 경계 안쪽.` 나는 오래전 지도를 펼쳤다. 그곳은 도원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강변 시설의 비어 있는 사각형이었다. 우리가 도원 아래에서 들었던 신고는 여기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장소가 하나의 복도처럼 연결되면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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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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