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열린 복도는 도원솔루션의 벽을 뚫고 강변으로 이어졌다. 적어도 화면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직접 몸을 밀어 넣고 확인하려는 생각을 버렸다. 회사에서 위험한 일을 맡을 때마다 ‘딱 한 발만 들어가 보자’는 말이 나왔는데, 그 한 발 때문에 야근이 세 시간 늘어난 적이 수두룩했다. 이번에는 야근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행방이 달려 있었다.
배만식 소장은 바닥에 굵은 분필선을 그었다. 실제 건물의 콘크리트는 왼쪽으로 이어졌고, 화면 속 복도는 오른쪽으로 구부러졌다. 분필선은 가짜 복도 쪽으로 한 뼘을 넘어갔다가 뚝 끊겼다. 끊긴 끝에는 분필 가루가 허공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분필을 회수하지 않았다. 손을 내미는 순간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허공에 보관된 분필이라. 나중에 월말 자산 목록에 들어가겠군요.” 내가 말했다.
배 소장은 헛기침했다. “그런 소리 하기 전에 사람부터 빼.”
우리는 도원 0층에 남아 있던 시설 인력 여섯 명을 실물 계단 쪽으로 이동시켰다. 하진도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그를 대역용 경로 확인 장치로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입구 바깥에서 안전 지도를 읽어 주고, 사람들이 실제로 어느 계단을 내려왔는지 확인했다. 자기 얼굴이 붙은 출입문을 지나가지 않고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서지완은 전산 담당으로 자원했다. 그는 실제 입사 계약과 별개로 한정된 점검 업무만 맡기로 했고, 복도 쪽 출입 승인에는 접근하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그가 화면을 가리켰다. “사람이 이동한 기록보다 복도 생성 기록이 먼저 찍혔습니다. 누가 통과해서 길이 생긴 게 아니라, 누군가 길을 만든 다음 사람을 집어넣으려 했어요.”
오재현이 로그를 대조했다. 서지완의 말은 맞았다. `제2 경계 개방 예약`이 유선영의 증언 접수보다 열한 분 빨랐다. 오승필의 업체가 우리 작업이 성공할 것을 예상하고 계약 트리거를 설정한 것이다. 사람의 대피는 시설 이용률을 채우기 위한 조건처럼 취급됐다.
오승필은 이번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법무팀을 통해 공문을 보냈다. `공공 경계 내 새 통로의 재산상 사용권 보존 요청.` 아직 실제 통로가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보존을 청구하는 문서였다. 나는 안전 담당자인 서윤에게 말해 당장 현장 이용 금지 상태를 유지해 달라고 했다. 법적인 문제는 오재현과 공공 관리기관이 다루도록 했다.
강변에서는 상황이 더 나빴다. 낮은 다리 옆 공공 계단이 도원 0층의 복도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선경은 시민 통행을 우회시키고, 김하린은 독립 회신함이 멈추지 않도록 전원을 확인했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 계단 가장자리에서 물이 흘렀다. 현장의 실제 계측기는 정상인데 바닥이 미끄러웠다. 누군가는 데이터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젖은 계단을 밟는 사람에게 정상 수치는 아무 위로도 되지 않는다.
오후 네 시, 강변 공공 계단 앞에서 한 노인이 길을 잃었다. 원래는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면 되는 낮은 길이었는데, 눈앞에 도원 사무실의 흰 복도가 나타난 것이다.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구조 요원이 별도의 실제 우회로로 안내했다. 노인은 손을 떨며 말했다. “회사 다닌 지 오래됐는데, 퇴근하고도 회사가 저를 쫓아오는군요.”
나는 그 말이 웃기지 않았다. 건물의 출구가 사람을 찾아다니는 세상이라면, 집에 돌아간 사람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두 장소의 관계를 확인했다. 강변의 실물 계단에 작은 번호표를 붙이고, 도원의 안전한 관측구역에서 그 번호가 같은 방향으로 표시되는지 보았다. 처음에는 같은 방향이었다. 그런데 019 수신함에 시험 신호를 보내자 두 번호가 반대로 뒤집혔다. 관측 장치가 공간을 반사면처럼 취급하면서 실제 통행 방향과 화면의 방향을 혼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윤이 즉시 시험을 중단했다. “이걸 더 하면 누군가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기록 오류인지 공간 변화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장 사람은 위험해지죠.”
우리는 두 장소의 사진을 별도 보존하고 신호 연결만 제한했다. 안전 신고 수신 자체를 끊지 않기 위해 김하린의 독립 경보 회선을 그대로 남겨 뒀다. 그러자 도원의 가짜 복도 끝이 조금씩 흐려졌다. 반면 강변의 젖은 계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떤 현상은 신호를 멈춰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문태수가 도원으로 들어왔다. 그는 FM-TRANSFER 계정을 통해 옛 시설 운영에 관여했다고 이미 일부 인정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변호사도, 사업 제안서도 없었다. 낡은 노트북을 든 채 말했다. “오승필 씨가 뭘 하려고 하는지 제가 알 것 같습니다.”
“왜 지금 와서 말합니까?” 나는 물었다.
“등록이 끝나면 시설 유지비가 내려갈 거라고 들었습니다. 안전 경계가 재산이 되면 기업이 맡아서 관리한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지금은 경계를 통과한 사람이 직원이 되고 있잖습니까.”
“그걸 지금 아셨다는 겁니까?”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뇨. 이전에도 징후를 봤습니다. 무시했습니다.”
그 답이 더 나았다. 최소한 이제는 과거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문태수는 그가 접근할 수 있는 오래된 업무 대기열을 보여 줬다. `공공 완충 공간을 유상 통행 구획으로 전환 / 신규 실사용자 확인 시 매각 승인.` 그 아래에는 날짜가 지워진 첨부 파일이 있었다. 파일 제목은 `전환 실패 대비 복도 보존`. 이게 정상적인 안전 계획인가, 아니면 실패하더라도 생긴 복도를 유지해 자산으로 만들겠다는 뜻인가.
오재현은 원본 제출을 요청했다. 문태수는 파일을 복사하지 않고 감사 시스템에 직접 넘겼다. 그의 손이 떨렸다. “제가 지금 이걸 내면 제 책임도 드러나겠죠.”
“그렇겠죠.” 내가 답했다. “그래도 현장 사람부터 살리는 게 먼저입니다.”
그 사이 강변의 젖은 계단 옆에 또 하나의 물건이 나타났다. 낡은 사무실 출입카드 리더기였다.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리더기에 초록 불빛이 켜졌고, 화면에는 `다음 사용자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사람을 들여보내기만 하면 새로운 통로를 거래할 수 있다는 듯이.
나는 그 리더기 앞에 서지 않았다. 대신 구조대가 설치한 실제 우회로 안내판을 점검했다.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장치보다, 지나가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는 손잡이 하나가 더 중요했다.
밤이 되자 가짜 복도의 벽이 절반쯤 투명해졌다. 그 너머로 오래전 019 대기실의 문이 보였다. 문 앞에는 마른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의자 아래의 그림자가 현재 조명과 반대 방향으로 늘어졌다. 그리고 그림자 끝에서 아주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복구 대상: 통행로가 아닌 관측자의 자리.`
서윤이 숨을 삼켰다. “누가 지금까지 복도를 복구한다고 믿었던 거죠? 애초에 거기엔 사람이 들어가는 통로가 없었는데.”
“그럼 우리가 계속 불러온 건…”
나는 문장 끝을 완성하지 못했다. 복도가 아니라 그 복도를 **보았던 시점**을 계속 현재로 불러오고 있었을지 몰랐다. 그것이 왜 실제 벽과 바닥을 바꾸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다음에 어디를 조사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원본 관측자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제14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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