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까지 문 하나를 닫으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무엇을 닫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두 시가 되기 전까지 아무 문도 함부로 닫지 않기로 했다. 일상적인 직장 생활에서는 이게 게으름의 증거였겠지만, 현재 우리 회사에서 무턱대고 문을 닫는 건 구조대가 가장 싫어하는 취미였다.
구 역사 분실물 창구에서 받은 금속판은 길이 십칠 센티미터, 두께 이 밀리미터에 불과했다. 소재는 기이하게도 절반이 알루미늄, 절반이 녹슨 철이었다. 두 재료가 붙은 경계에는 접착제나 용접 흔적이 없었다. 배만식 소장이 비파괴 검사를 하다가 말했다. “누군가 서로 다른 두 물건을 하나로 기억시키면 이런 결과가 나오나.”
“소장님, 그건 소설 같은 소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 사는지 잊었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두 재료의 온도를 측정했다. 강변 무늬 쪽은 차갑고, 도원 무늬 쪽은 실내 온도에 가까웠다. 금속판을 같은 장소에 둔 지 십 분이 넘었는데도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계측기 오류를 피하기 위해 다른 장비 두 대로 다시 측정했다. 결과는 같았다. 사람이 한 발로 두 계절을 밟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김하린은 `13:10 분실물 반환`을 최초 신고자가 정해 둔 약속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역사 측 보관기록을 확인하니 창구는 세 달 전부터 폐쇄돼 있었고, 안내판 시계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가 보고 온 시각은 어디에서 표시된 것인가. 역사 관리인은 직원들이 쓰지 않는 창구라며 잠긴 문의 상태를 직접 보여 줬다. 바로 그때 유리 안쪽에 우리가 사용하지 않은 번호표가 보였다. `019-대면-보류`. 번호표 아래에는 신선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서윤이 종이로 번호표를 덮었다. “지금 이걸 증인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원본 장치가 우리에게 사람인 척 응답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나타난 물건을 화면 오류라고 우길 수도 없고.”
서윤은 역사 바깥에 실제 긴급 출구가 있는지 확인했고, 김하린은 공공 설비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 무전기로 상태를 보고했다. 금속판을 들고 곧장 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누군가 우리 이동 경로를 따라 복도를 생성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더 긴 길을 선물할 수는 없었다.
도원에서는 강민재가 연락했다. “선배, 지하 화물용 승강기 안에 예전 강변 철제 계단이 나타났어요. 근데 올라가는 방향이 반대예요.” 나는 화를 낼 뻔했다. 이번 주에만 계단이 네 번이나 장소를 바꿨다. 근무표였으면 인사팀에서 진작 면담을 요청했을 것이다. 실제 계단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난간을 잡으면 손끝에 소금기가 묻었다. 도원에서 바다 냄새가 날 이유는 없었다. 강변의 물 냄새와도 달랐다.
배 소장은 화물 승강기의 전원을 차단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 통로를 막고, 독립된 옆 비상계단을 개방했다. 그 뒤 우리는 금속판에 새겨진 두 무늬와 계단의 무늬가 같은 배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 금속판을 옮긴 순간, 도원 안쪽에서 같은 배열을 가진 곳에 길이 나타난 셈이었다. 단정할 수 없었지만, 관계를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기록 서버에는 `외부 확인자 잔여 경로`라는 항목이 새로 생겼다. 수신자는 두 시의 증인을 찾는 팀이 아니라, 오래된 회수 자동화 계정이었다. `잔여 경로의 실체화 승인` 버튼은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오재현 감사 담당자는 시점과 권한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결재 로그에는 임현규 대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토큰이 발행된 시각은 대표 두 분이 모두 감사실에서 진술하던 때예요.”
“대역이 결재했다는 겁니까?”
“그 말도 증거 없이는 못 합니다. 결재된 사실 자체가 원본이 아닐 수 있어요. 누가 시스템에게 대표가 승인했다고 믿게 만들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마침 양복 차림 임현규가 화를 내며 전화했다. “내가 회사 건물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한 적 없소!” 검은 셔츠 차림의 임현규는 더 짧게 답했다. “난 그 버튼을 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어느 쪽이 진짜 대표인지 고를 수 없다는 데 안도해야 할지, 둘 다 자신이 안 했다는 결재가 남았다는 데 절망해야 할지 몰랐다.
오후 한 시 오십 분, 폐쇄된 역사에서 연락이 다시 왔다. 역사 관리인이 출구 옆 바닥에 젖은 계단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한 계단씩 내려가는 흔적인데 발자국은 위쪽을 향하고 있었다. 실제 공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의 발이 어떻게 위를 향할 수 있을까. 그는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도 그 자리에 접근하지 않았다. 잘한 일이었다. 우리는 출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기록상의 층번호를 믿지 말고 실제 난간과 바닥을 확인하라고 재차 안내했다.
하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두 시 전에 제가 도원 안의 문 하나를 확인해도 될까요? 제 얼굴이 그 문에 붙어 있어요.` 나는 바로 통화를 연결했다. “어느 문인데?”
“0층 기록보관실 옆이에요. 제 이름이 아니라 당신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 속에는 제가 먼저 그 문을 지나간 걸로 되어 있어요.”
나는 잠깐 말이 없었다. 하진은 스스로 이름을 정한 뒤에도 도윤의 얼굴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었다. 도윤이라는 인사 기록이 그를 다시 끌어당기면, 무슨 일이 생길까. “문 손잡이는 잡지 마. 네가 원한다면 직접 가지 않아도 돼.”
“아뇨. 제 이야기가 걸려 있으면 제가 보고 싶어요.”
“그럼 서윤이랑 같이, 안전한 거리에서 보자.”
오후 한 시 오십팔 분, 우리는 도원으로 돌아왔다. 문에는 `외부 확인자 차도윤 대리 입실`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다. 하진이 멀찍이 서 있는 동안 나는 표식의 변경 이력을 확인했다. 원래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그 빈칸이 열아홉 번째 의자의 위치와 이어지자 시스템이 현재 가장 가까운 퇴사자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또 빌렸네요.” 하진이 말했다.
“그건 내 얼굴이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당신도 빌려 쓴 거죠.”
정말 얄미운 사람이다. 내 얼굴로 이렇게 태연한 말을 하다니.
오후 두 시 정각, 표식이 바뀌었다. `대리 입실 거절됨.` 누구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하진과 나 모두 거절 의사를 말했고, 서윤은 그것을 자동 승인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독립 기록에 남겼을 뿐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손잡이 위에 작은 원형 화면이 켜졌다.
`바깥의 증언을 시작합니다.`
그다음 들린 음성은 기계가 합성한 목소리처럼 매끈하지 않았다. 숨을 고르는 소리, 입술이 마른 소리까지 담겨 있었다.
“제 이름은 아직 말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확인할 게 있어요. 여러분이 들어가려고 하는 그 문은 원래 출입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아래의 낡은 도면에는 `제0 경계 관측면`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문이 아니라 밖에서 안쪽을 확인하기 위한 관측 장치. 그러니 우리가 그 문을 출입구로 바꾸는 순간, 실제로는 없던 길이 생겨 버릴 수도 있었다.
음성이 다시 말했다. “누가 나를 기다렸는지 묻지 마세요. 누가 이 관측면을 문으로 등록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화면이 꺼졌다. 잠긴 문 뒤에서는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안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발자국은 분명히 한 사람 몫이었다.
제14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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