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4화
PAYLUA ORIGINAL · 제14화

환자를 퇴사시키는 병원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724자

오프라인 책장
병원에서 '전원 퇴원'이라고 하면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동시에 퇴원한다면 그건 대개 기쁜 소식이 아니다. 특히 응급실에 산소 마스크를 쓰고 누운 사람이 있고, 야간 당직 간호사가 아직 약품을 준비 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림종합병원 부속동에서 울린 안내 방송은 환자 하나하나의 상태를 전혀 묻지 않았다. [대기 환자 일괄 퇴원까지 00:09:48] 서윤은 나를 보자마자 분명하게 지시했다. “의료 판단은 의료진이 합니다. 우리는 출구와 전력만 확보해요.” “그게 제 전문분야입니다.” “그런 말 하면서 지난번엔 복사기랑 싸웠잖아요.” “복사기는 사람보다 말을 안 듣습니다.” 우리는 병동 출입문으로 뛰어갔다. 문 옆 환자 관리 화면에는 이름이 아니라 사원번호 형태의 코드가 떠 있었다. 해당 코드와 실제 침상 번호는 맞지 않았다. 서윤은 의료진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번호도 종료하지 말자고 했다. 멋대로 퇴원 처리를 누르면 환자의 치료가 중단될 수 있었다. 간호사 박유라는 중앙 스테이션에서 손으로 차트를 쓰고 있었다. 전자 차트가 환자를 모두 '퇴원 후' 상태로 바꿔 버린 탓에 약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손전등을 건넸다. “3번 침상은 이동이 어렵고, 5번은 산소가 필요해요. 여기 환자들은 문을 막아 놓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문을 억지로 열어 끌고 나가지 마세요.” “의료진 지시에 따라 돕겠습니다.” 서윤이 말했다. 나는 전원반을 확인했다. 병동의 산소 공급 장치는 정상 가동되고 있었지만 전자 출입문만 잠기는 주기가 이상했다. 환자 퇴원 완료 시 자동으로 병상 전원을 차단하는 시험 기능이 오래된 전산 장비에 연결되어 있었다. 정상 병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실사용하면 큰일 날 일이었다. “이거 누가 설치했습니까?” 박유라는 나를 노려봤다. “지금 설치자 찾을 때예요?” “아뇨. 똑같은 실수 안 하려고요. 우선 전원과 출입을 분리하겠습니다.” 나는 배 소장에게 구형 분전함 회로도를 요청했다. 그는 도원솔루션 설비실에서 종이 도면을 찾아 사진으로 보내 왔다. 이상하게도 다른 건물의 환자 관리 장치와 도원솔루션 출퇴근 서버가 같은 제어 코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비상 전원이라는 물리적 기능을 업무 종료 코드가 잡아먹은 셈이었다. “서윤 씨, 병실 문 비상 개방 손잡이가 어디죠?” “3번 침상 반대편. 제가 붙어서 확인할게요.” 박유라는 후배 간호사에게 산소 공급과 환자 상태를 맡기고, 나에게 스테이션 안쪽 수동 스위치를 보여 주었다. 스위치 위에는 '점검 시에만'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전기 설비 자격도 없이 함부로 조작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배 소장에게 회로 연결을 설명하고, 현장 시설 당직자가 오기까지 위험한 자동 명령만 차단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병원 시설팀 당직자가 달려왔다. 그는 자신의 직원증을 찍었지만 화면에는 이렇게 떴다. [현재 근무자가 아닙니다] 당직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지금 여기 서 있는데 누가 근무자가 아니래요?” “바로 그 말씀입니다.” 내가 말했다. “전산이 현장보다 먼저 결론 내리고 있어요.” 우리는 당직자의 확인을 받아 수동 운전으로 전환했다. 삑삑거리던 경보음이 끊기는 대신, 환자 모니터 소리가 선명해졌다. 의료진은 누워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필요한 처치를 계속했다. [대기 환자 일괄 퇴원까지 00:04:20] 그러나 화면의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았다. 중앙 서버에서 건물의 모든 문을 일괄 잠그는 명령이 내려오는 중이었다. 환자에게 생명 유지 장치를 갖춰 놓았다고 해도 출입문이 잠기면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못한다. “우리가 막아야 할 건 퇴원 기록이 아니라 방화문 자동 잠금이네요.” 나는 말했다. 박유라가 도면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방화문이 닫히면 피난 동선이 달라져요. 임의로 고정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수동 개폐 기능을 살리려는 겁니다. 화재가 나면 정상적으로 닫히고, 사람이 나가야 할 땐 열 수 있게.” 서윤이 경로를 표시한 뒤 시설팀과 함께 환자 주변의 안전 구역을 유지했다. 나는 작은 스위치 패널의 연결 상태를 시험했다. 패널이 밝아지면서 이상한 화면이 나타났다. [대기 환자 24명] [업무 종료 대상 24명] 이 환자들이 왜 회사 업무의 일부로 계산되는지 알 수 없었다. 박유라는 환자 수를 보고 말했다. “스물네 명 아닙니다. 여기에 스물세 명 있어요. 한 사람은 검사를 받으러 본관으로 갔어요.” 또 한 번의 인원 불일치였다. 이번에는 그 불일치를 방어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까. 나는 치료 중이 아닌 환자의 상태를 임의로 바꾸지 않고, 시설팀과 의료진이 동의한 현실 확인 자료만 안전 기록으로 분리했다. [현장 인원 확인 요청] 박유라는 담당 간호사들의 응답을 받았다. 환자가 직접 대답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의료진이 치료상태만 표시했다. 본인의 선택이나 퇴원 의사를 대신 작성하지 않았다. 화면에는 ‘자동 일괄 종료 중지 사유: 환자 상태 확인 불일치’가 떠올랐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은 의료진의 이동 동선이었다. 서윤은 3번 침상의 커튼을 함부로 열지 않고 간호사에게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유라는 예비 산소통 위치와 운반 보조 인력을 알려 주었고, 시설 당직자는 화재 시 사용할 실제 출입문 방향을 다시 설명했다. 이 짧은 확인 덕분에 간호사 한 명이 먼 복도를 돌아오지 않고도 필요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전기 회로 표를 가리켰다. 자동 퇴원 명령이 또 내려오더라도 환자 모니터와 출입문이 같은 스위치로 끊어지지 않는지 확인하자고 했다. 임시 조치의 책임자는 병원 시설팀이었다. 내 노트에는 점검 시간과 입회자만 적었다. 누군가 다시 시스템을 원래대로 돌리려 해도, 현장의 실제 위험을 설명할 근거가 남아야 했다. [00:00:19] 접수대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검은 정장 차림의 누군가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휠체어 손잡이에 도원솔루션의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다. “차도윤 씨.” 그가 말했다. “병원 업무에 간섭하시면 규정 위반입니다.” “제 이름 알고 계신데 누구시죠?” “외부 복구팀의 업무 감시자입니다.” “그럼 팀장님이 주신 복지 포인트는 어디서 받습니까?” 그는 웃지 않았다. 나는 좀 서운했다. “퇴원 명령을 중단하지 않으면 이 구역의 직원부터 회수됩니다.” “그럼 이미 멈췄습니다. 현장 의료진이 환자 상태 확인을 마쳤거든요.” “그 정보는 우리 시스템과 다릅니다.” “그게 문제라고요.” 카운트다운이 0에 닿았다. 하지만 문은 잠기지 않았다. 박유라가 현장 지도를 들고 실제 환자 곁에 서 있었고, 시설 당직자는 수동 운전 장치를 지키고 있었다. [일괄 퇴원 불가] [사유: 의료 판단과 업무 종료 코드의 불일치] 나는 겨우 숨을 돌렸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빈 휠체어를 세게 밀었다. 휠체어는 저절로 뒤로 굴러갔다. 남자는 그 움직임을 보고 처음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명령보다 늦게 오는 사람이 있군.” “의료진 말씀이시라면, 이분들은 제일 먼저 와 계셨습니다.” 그는 엘리베이터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안쪽 벽에 낯선 로고가 보였다. [공동 운영사: 미래기록관리협의회] 서윤이 말했다. “명칭을 확인했네요. 이제 도망가는 명령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할 수 있겠어요.” 박유라는 환자에게 다시 돌아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살아 있는 사람이 먼저예요.” 나는 그 말을 노트 첫 장에 적었다. 다섯 번의 장애 보고서보다 유용한 문장이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