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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3화
PAYLUA ORIGINAL · 제13화

열두 명이 아니라 열두 건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689자

오프라인 책장
일지 첫 장에는 동그라미 열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명주가 적어 놓은 글씨를 따라 읽었다. '반환 대기 열두 건. 사람일 수도, 업무일 수도 있다. 직접 확인 전에는 묶지 말 것.' 친숙한 문장이었다. 누가 썼든 서버 운영을 해 본 사람이다. 장애가 나면 회사는 늘 원인을 하나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같은 오류 메시지 아래 서로 다른 사건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한테는 퇴사자 열두 명을 찾으라고 하던데요.” 이명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회수 대기 목록입니다. 회수할 사람이 열두 명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첫 장엔 업무, 둘째 장엔 사람, 셋째 장엔 기록이 뒤섞여 있어요.” 그가 손가락으로 두 번째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옆에는 병원에서 쓰는 조그만 밴드 그림이 있었다. “이건 내 후임이 남긴 응급 연락 절차예요. 후임은 오래전에 이 병원을 그만뒀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아세요?” “직접 연락한 지 오래됐죠. 그런데 시스템은 아직도 그를 당직자로 불러요.” 서윤이 일지를 사진으로 남겼다. 모든 이름을 촬영하지는 않았다. 연락처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가렸다. 이명주는 그것을 보고 손끝에 힘을 풀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이름이 파일에 붙어 있는 이유만으로 강제 소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 필요했을 것이다. 병원 0층 입구에는 임시 환자 대기구역이 있었다. 커튼 네 개가 어긋난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빈 침대에 산소 마스크가 붙어 있었다. 이명주는 그곳으로 가기 전에 우리를 멈춰 세웠다. “한 가지 확인할게요. 지금 실제로 위험한 사람부터 도울 거죠?” “그게 맞습니다.” 서윤이 대답했다. “그럼 일단 이름 목록보다 여기 커튼 뒤부터 봐야 해요.” 커튼 안에는 환자가 아니라 병원 청소 노동자가 앉아 있었다. 손가락 관절을 다친 노년의 여성이었다. 자신의 직원증이 '사용자 없음'으로 바뀌는 순간 복도 문이 닫혀 버렸다고 했다. 이름은 고선희. 손에 작은 먼지떨이를 쥐고 있었다. “그걸 놓으시면 안 됩니까?” 내가 물었다. “놓으면 청소가 끝난 걸로 나온대요. 그러면 내가 여기서 사라진다잖아요.” “누가 그랬어요?” “천장이.” 천장에는 반짝이는 안내 문자가 흘렀다. [업무 도구 분리 시 계약 종료] 나는 노트북에서 옛 도원솔루션 출입 관리 규칙을 불러왔다. 도구 반납 확인을 퇴직 처리와 연결하는 규칙이 있었다. 원래는 회사 장비를 돌려받기 위한 절차였다. 그런데 병원에 파견된 사람의 손에 들린 개인 물건까지 '회사 자산'으로 판정하는 바람에 사람이 물건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됐다. “고선희 씨, 저건 개인 물건이세요?” “내 돈 주고 산 거야. 손잡이가 편해서.” 나는 그녀의 동의를 구하고 먼지떨이 손잡이를 사진으로 찍었다. 뒤에 손글씨로 적힌 이름과 영수증 날짜가 있었다. 서윤은 고선희에게 부상 부위부터 쉬도록 했다. 이명주가 여분의 붕대를 찾아 왔다. “시스템에는 반납 확인을 누르지 마세요.” 나는 말했다. “이 물건은 본인 소유라는 기록을 따로 남길 겁니다.” 휴대전화의 낡은 카메라로 영수증을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병원 조명은 깜빡이고, 내 손은 떨렸다. 하지만 화면의 글씨가 바뀌었다. [회사 자산 후보 해제] [대상 근로자 식별 불가] 고선희의 손에서 먼지떨이가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그저 평범한 플라스틱이었다. 여성은 한참이나 그것을 쳐다봤다. 특별한 마법을 쓰지 않았는데도 세상이 잠시 고요해졌다. “일 마치셨으면 이제 쉬셔도 돼요.” 서윤이 말했다. 고선희는 침대에 등을 기대며 울었다. 내가 보기엔 그건 퇴근을 인정받는 사람의 눈물이었다. 머리 위의 숫자가 꺼지자, 접수대에서 이름표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회수 대상 정정] [12건 중 사람 4 / 업무 5 / 원본 확인 3] 나는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열두 명이 아니라 열두 건이었다. 사람이 넷 있다는 것도 아직 확정할 수 없었다. 네 건이 사람으로 분류됐을 뿐이다. 이 차이를 놓치면 그날부터 누군가의 서류를 찾아다니며 생존자를 놓칠 것이다. “고선희 씨를 데려가면 사람 회수 하나 완료로 뜨나요?” 강민재가 무전으로 물었다. 그는 도원솔루션 쪽에서 기록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건 회수가 아니라 구조야. 말 바꾸지 마.” “네. 제가 오염된 용어를 그대로 읽었네요.” “그런 데 익숙해지는 게 제일 무서운 거야.” 고선희 씨는 붕대를 감은 손으로 휴대전화에 짧은 메시지를 썼다. 집에 기다리는 남편에게 오늘 늦는다고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자를 보내자 화면에는 '근무자 통지 완료'라는 문장이 떴다. 고선희는 전송을 취소하려다 나를 바라봤다. “내 남편한테 보내는 건데 회사가 왜 확인하죠?” 나는 그의 휴대전화를 받아 들지 않았다. 대신 원래 보낸 문자의 수신 번호가 맞는지 본인이 확인하게 하고, 자동 공지 화면의 이름이 회사 관리 앱에서 나오는지 함께 살폈다. 그는 개인 문자 앱을 이용해 다시 직접 연락했다. 이번에는 답장이 왔다. '천천히 와. 저녁 데워 놓을게.' 그 짧은 문장에 고선희의 어깨가 내려갔다. “나를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 이명주가 그 말에 잠시 웃지 못했다. 그는 삼 년 동안 고향집에 연락할 때마다 '현재 근무 중'이라는 안내를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가 어디에 갇혔는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지금 당장 연락을 해 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연락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 그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필요하면 안전한 전화를 찾는 일을 돕겠다고 했다. 이명주는 일지의 첫 페이지를 접으며 말했다. “그 약속, 잊지 마세요.” 이명주는 우리를 병원 0층 깊숙한 서류보관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진열장 열두 개가 있었다. 각각 다른 건물의 관리 문서를 꽂아 둔 캐비닛이었다. 나는 중앙 캐비닛에서 도원솔루션과 같은 로고를 찾았다. 그런데 로고 아래에는 낯선 표기가 있었다. [공동 운영사: 미래기록관리협의회] “이 회사 처음 들어보는데요.” 내가 말했다. “나도요.” 이명주가 답했다. “난 저 도장 찍힌 회사에 근무한 적이 없어요.” 서윤은 다른 캐비닛을 열었다. 병원 환자 명부, 금융센터 야간 근무표, 아파트 관리소의 입주민 출입부가 한 파일 안에서 차례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곳의 사람들이 같은 직원 번호를 부여받고 있었다. “기록이 연결되면 편리한 점이 많죠.” 내가 말했다. “같은 사람이 여러 곳을 이용할 때 확인하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연결한 쪽이 출입과 퇴직을 같은 행동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물에서도 사람이 사라질 수 있겠네요.” 서윤이 끝맺었다. 이명주가 캐비닛 맨 아래에서 붉은 장부를 꺼냈다. 장부 첫 장의 날짜는 삼 년 전, 그가 퇴사한 날이었다. 맨 위에는 서명 대신 장비 코드가 찍혀 있었다. [1758 경고 발생] [외부 기록 검토 미완료] “나도 처음엔 숫자가 시간인 줄 알았어요.” 이명주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회선 번호였어요. 문제는 그 장비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바로 그때 병원에서 두 번째 경보가 울렸다. 이번에는 출입증 괴물 소리가 아니었다. 실제 응급실에서 들을 법한 심장 모니터 소리였다. [대기 환자 일괄 퇴원 예정] [퇴원까지 00:09:59] 서윤이 장부를 덮었다. “사람을 구할 시간이네요.” 나는 부속동 엘리베이터를 바라봤다. 0층의 모든 출구가 동시에 빨갛게 바뀌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병원 안에 있었다. 회사의 기괴한 출근부가 이번에는 환자의 퇴원을 처리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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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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