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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31화
PAYLUA ORIGINAL · 제131화

화살표는 강을 가리키지 않았다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666자

오프라인 책장
강변으로 내려가기 전, 나는 안전모를 쓰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서른두 살 퇴사자는 여전히 월요일 아침 회의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생겼다. 회사가 던전이 된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머리카락은 정상적으로 자랐다. 재난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건 그런 사소한 일상일지도 몰랐다. 휴대전화에는 문서윤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현장에서는 지휘하지 마세요. 위치 확인과 기록만.` 그 아래 강민재의 답장. `형이 또 지휘하면 제가 인사팀에 신고할게요.` 인사팀보다 겁나는 괴물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019 강변 시설은 낮에는 우스울 만큼 평범했다. 자전거를 탄 시민이 지나가고, 강을 건너는 다리 위로 버스가 달렸다. 그러나 오래된 배수문 뒤의 회색 콘크리트에는 전날 원본 도면에서 보았던 화살표가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김하린이 구청 담당 이선경과 함께 외부 점검선 밖에서 자료를 펼쳤다. `제0 경계 뒤쪽 / 사람 없는 비상 방향 / 자동 복귀 금지.` 나는 강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배만식이 고개를 저었다. “이쪽이 물길이고 화살표 끝은 반대예요.” 실제로 종이 위의 화살표는 강물을 지나가지 않았다. 시설 바닥의 가장 마른 곳, 지금은 막힌 환기 덕트 아래를 가리켰다. 우리는 처음부터 길을 열지 않았다. 좁은 공간은 실물 구조 점검과 산소 농도 확인 없이는 들어갈 곳이 아니었다. 대신 외부 고정틀의 서로 다른 두 접점에 기록기를 대고 환기팬의 회전수를 비교했다. 한쪽에서 나온 신호는 반대쪽에서 4초 뒤 되돌아왔고, 다른 쪽은 4초 먼저 울렸다. 같은 회로에서 시간을 앞당겨 전기를 전달할 수는 없다. 배만식은 측정 장비의 시계를 세 번 확인했다. 민재가 말했다. “형, 이러면 시간을 빌려 쓰는 건가요?” “아니. 내가 퇴사 전에 초과근무한 시간부터 먼저 돌려받아야지.” 농담을 했지만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이선경은 옛 도면을 보여 주었다. 지금은 철거된 공중 안내소와 강변 낮은 길 사이에 `외부 우회 완충 구간`이라는 빈 표기가 있었다. 구조물이 있었던 흔적이 아니라, 어떤 구간도 건물의 내부로 편입해서는 안 된다는 표시였다. 한 장 더 뒤집자 같은 구간이 도원솔루션 이전 설계도에는 `경로 복귀 대기실`로 바뀌어 있었다. 서윤이 통신으로 물었다. “누가 승인했습니까?” 이선경이 대답했다. “서류상 도장 두 개는 확인됩니다. 다만 승인 대상이 달라요. 처음 건 비상용 통행 보전이고 두 번째 건 장치 반출이에요.” 비상 길을 지킬 허가와 길 자체를 가져갈 허가가 다른 건 당연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 둘을 같은 문서 번호에 넣었다. 점검선 밖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낡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과거 강변 안내소에서 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옛날에 저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많이 팔았어요. 요새도 누가 음식을 가지러 내려가나요?” 나는 그가 보는 방향을 따라갔다. 폐쇄된 배수문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늘 새벽 누군가 노란 우비를 입고 그 아래로 향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시설 담당자는 안전 카메라를 확인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실제 사람이 찍혔지만, 배수문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둑 위를 지나간 것으로 보였다. 사람의 기억을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영상에서 확인한 장소와 본인이 느낀 방향을 구별해 기록했다.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내가 못 본 게 있나 봐요. 하지만 사람이 사라진 줄 알고 무서웠어요.” 우리는 그 걱정을 현장 관리자의 신고 기록에 남겼다. 우리가 서 있는 둑 위에서 작은 사고가 났다. 자전거를 끌던 노인이 눈앞에서 사라진 노란 안전선에 발을 헛디뎠다. 몸이 떨어진 게 아니라, 선 안쪽에서 한 발 물러났는데 발끝이 보이지 않는 문턱에 닿은 것이다. 김하린이 현장 통제를 요청했고, 근처 시설 직원이 이동식 안전판을 가져와 위험 구간을 막았다. 나는 노인의 팔을 잡으려다가 그의 허락을 먼저 구했다. 그는 멀쩡한 길에 갑자기 턱이 생겼다고 증언했다. 잠시 후 위험선 안에는 정체 모를 대리석 바닥 조각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도원 0층 회의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무늬였다. 민재는 휴대전화로 그 바닥을 찍고 확대했다. 구형 설비 영상의 화질과 달리 햇빛에 비친 흠집 하나까지 선명했다. “형, 이미지가 아니에요. 아저씨 신발 밑창에 먼지가 묻었어요.” 나는 현장 기록용 봉투를 꺼내 들었다. 도원에서 이상한 물체가 나타날 때마다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한 전산 오류라고 부르려 했다. 하지만 신발에 붙은 먼지는 로그 파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먼저 노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 먼지를 채취할 권한이 있는 시설 조사 담당자에게 자료를 넘겼다. 현장의 안전선은 더 멀리 옮겼다. 서윤은 강변의 모든 자료를 도원 서버에 올리지 말라고 했다. 단순한 보안 조치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원본 보존 장치가 파일 안의 위치값을 실제 경계 지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관측값만 익명화된 별도 표로 작성하고, 시설 사진의 좌표는 공공 관리자가 별도 보관했다. 민재가 말했다. “사진 하나 올리기도 이렇게 까다로우면 대체 클라우드가 무슨 소용이에요?” “오늘은 구름보다 땅이 중요하잖아.” 나는 대답했다. 그는 뜻밖에 고개를 끄덕였다. 발밑의 길이 사라지는 일을 겪고 나면 개발자도 잠깐 철학자가 되는 모양이었다. 낮 열두 시쯤 1758 경고 장치가 두 번 깜빡였다. 첫 번째는 강변 접점, 두 번째는 도원 서버실 B에서 확인된 경보였다. 두 신호를 합치자 모니터에는 `복귀 성공`이라는 글씨가 떴다. 나는 그 자리에 빨간 펜으로 `두 곳 모두 안전한지는 별개`라고 썼다. 성공한 게 있다면 두 장치가 서로를 감지한 것뿐이었다. 그 순간 오래된 환기 덕트의 바깥면에서 네모난 붉은 불빛이 켜졌다. 기계가 아니라 문패처럼 보였다. `미사용 경계 1개 보존 중.` 오후에는 도원에 있는 배만식과 연결해 낡은 강변 사진의 그림자 방향을 비교했다. 서로 다른 연도의 사진 네 장에서 같은 기둥의 그림자가 제각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촬영 시간이 달랐으니까. 그런데 문제의 바닥 조각이 도원에 나타난 시각과 가장 오래된 사진의 태양 방향이 일치했다. 민재는 이 사실을 보고 들떴다가 금세 스스로를 말렸다. “그림자 하나로 날짜를 확정할 순 없죠.” “그래. 그래도 어떤 사진을 불러오는지 찾을 수는 있겠지.”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물체에 대해 사람 이름 대신 사진 번호를 기준으로 기록했다. 누가 귀가했는지 적는 칸을 치우자 예상과 달리 관측값이 더 또렷해졌다. 나는 보고서에 사진 원본 위치와 현장 시각을 각각 적고, 두 값의 관계를 단정하지 않았다. 사람을 잘못 탓하지 않고도 문제를 좁혀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우리는 안쪽을 보지 못했다. 대신 고정틀 아래에 붙은 진짜 금속 번호판을 확인했다. 녹을 닦아 내자 `019-OUT` 뒤로 작은 글자가 드러났다. `여기는 돌아오는 길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는 방향을 남겨 두는 곳이다.` 도원으로 향하는 전송선을 차단한 상태에서도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화살표가 출구의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을 만들 때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할 빈 방향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원래 자리의 사진을 찍는 순간, 도원의 0층 화면에서 경보가 울렸다. `외부 완충 구간 소유자 등록 실패. 경계가 직접 복귀를 시도합니다.` 건물이 아니라 빈 방향이 돌아오려 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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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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