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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28화
PAYLUA ORIGINAL · 제128화

버린 의자가 회사에 나타난 이유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626자

오프라인 책장
깨진 찻잔의 조각은 물증이 됐다. 나는 그것을 만지지 않고 감식 담당자에게 맡겼다. 불가능한 물건이라도 바닥에 있으면 누군가 밟을 수 있다. 그날 도원의 사내 공지에는 새로운 안내가 실렸다. `반납 불가 물품 발견 시 시설팀에 제출.` 원래라면 분실물 안내였겠지만, 지금 회사에서 반납 불가 물품이란 없던 복도에서 날아오는 찻잔을 뜻했다. 퇴사 전에 이런 사내 복지가 있었다면 나는 진작 사직서를 썼을 것이다. 감식 결과는 이상하게도 평범했다. 조각은 실제 도자기였고 잔 표면에는 오래된 물때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신소림의 기억 속에서 폐기된 벤치와 함께 놓여 있던 찻잔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모양만으로 동일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원이 어디선가 가져온 것은 기록의 문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원래 코일의 배선을 살핀 이유는 신호가 어떤 길을 따라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사물이 어떻게 돌아오는지까지 알아야 했다. 나는 문서윤과 함께 외부 보관실 019의 원래 위치를 다시 찾았다. 시설 담당 이선경이 입회했고, 구청 보관 자료를 볼 수 있는 허가 범위를 확인했다. 낡은 강변 안내소 자리에 남은 콘크리트 기둥에는 손가락 두 개 너비의 홈이 있었다. S-LEFT와 S-RIGHT를 끼웠던 구멍처럼 보였다. 배만식은 홈의 길이를 측정했다. “이쪽은 판이 아니라 고정틀이네요.” 나는 그가 가리킨 아래쪽을 보았다. 금속판은 빠져 있었지만 '밖의 사람'이라고 적힌 작은 글씨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닥의 물길이 홈으로 모이자 옛 안내소 자리에서 낮은 진동음이 들렸다. 안쪽으로 향하는 소리와 바깥으로 향하는 소리가 미묘하게 달랐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노트북을 꺼내려다가 서윤의 시선을 받고 다시 넣었다. 비 오는 날 강변 콘크리트 위에서 장비를 켜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측정기를 방수 상태로 확인한 뒤 시설 관리자의 승인 아래 수동 기록만 남겼다. 내 귀에 들어온 진동은 음악처럼 들렸지만, 값으로 확인된 것은 저주파 소리 두 종류였다. 원래 도면에서는 이 홈이 장비 보호용 빈자리로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도원에서 만든 자산 목록은 그 빈자리를 `물품 보관소 019-B`라고 불렀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공간을 창고로 등록하면, 시스템은 창고에 있어야 할 물건을 계속 요구하게 된다. 그것이 물리적 공간까지 불러오는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설명은 충분히 섬뜩했다. “없는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빈 곳을 채우려는 거군.” 서윤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다만 실제로 어떻게 그런 현상이 가능한지는 아직 모릅니다.” 공공 기록에서 또 다른 자료가 나왔다. 분리판 이전 전에 작성한 시험용 배송 지시서였다. `코일 본체 1 / 보호 고정틀 1 / 외부 확인판 2 / 빈 경계는 현장 유지.` 도원으로 옮겨야 했던 것은 장치뿐이고, 경계 자체는 강변에 남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그 마지막 항목을 `운송 대기 1`로 바꿨다면 기계는 빈 경계까지 가져와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원 회의실에서는 열아홉 번째 빈 의자가 나타나고, 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던 계단이 생겼다. 나는 우연이라고 치부하기가 어려웠다. 신소림 씨에게 공개 가능한 도면을 보여 주자 그는 곧바로 홈의 위치를 알아봤다. “여기는 장치를 가져가면 안 되는 곳이 아니라, 가져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어요. 사람이 안전하게 서 있을 자리는 기계가 없어도 남아 있어야 했거든요.”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옮겼다. 기술자의 설명보다 현장에서 사람을 안내하던 근로자의 말이 더 정확한 때가 있다. 그는 자기 목소리를 녹취로 남기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얼굴을 공개하길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뜻을 따랐다. 그때 도원 서버에서 긴급 알림이 도착했다. `[회수 실패한 보존 대상: 강변 빈 경계 / 대체 장소 생성 준비.]` 세림병원과 성하금융센터의 남은 공간 중첩 구역이 다시 깜박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복구 모듈이 빈 경계를 실제 창고라고 판단합니다. 이 기능을 누가 켰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은 오늘 어떤 복구 작업도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사람이 승인하지 않아도 오래된 일정표가 작업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다. 우리는 외부 신고 회선을 유지한 채 자산 회수 대상에서 `빈 경계` 항목을 수동 보류하고, 실제 현장 대피 경로를 따로 점검했다. 화면에서는 사라진 의자와 비슷한 그림이 점점 흐려졌다. 하지만 강변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서윤은 그 소리가 코일이 아닌 강변 고정틀 아래에서 난다고 했다. 원본을 옮겼어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바닥을 뜯지 않았다. 비가 오고 있었고, 근거 없이 파헤치면 실제 통행 안전부터 무너질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윤상미 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신소림 씨가 직접 자기 근무 종료를 확인했는데, 남은 문서는 왜 이렇게 많죠?” 내가 묻자 상미 씨가 웃었다. “사람은 퇴근하면 집에 가요. 문서는 퇴근을 안 하잖아요.” 정말 좋은 설명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에게는 서류를 맡아 온 사람의 세월이 있었고, 내게는 프로그램을 맡아 온 일곱 해가 있었다. 둘 다 종이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오후에 도원 시설실에서 진동 시험 결과가 도착했다. 강변 고정틀의 진동 패턴과 도원 B-0 보존 코일의 전류 변화 사이에 닮은 점은 있었지만 일대일로 맞지는 않았다. 사람이 밖에서 기다렸다는 상태를 전자적으로 복원하려는 회로와, 실제 공간이 움직이는 현상을 연결할 수 있는 증거는 부족했다. 나는 보고서 맨 앞에 '유사성 관측, 인과 미확정'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민재가 물었다. “형, 미확정이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써도 보고서가 되나요?” “되겠지. 확정도 안 된 걸 확정이라고 써 놓으면 나중에 출근부가 또 생길 테니까.” 민재는 펜을 내려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배만식 소장은 강변 현장에서 가져온 조그만 녹슨 나사를 보존용 봉투에 담아 보여 주었다. “이거 도원 설비하고 규격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장비를 옮기면서 전부 그대로 복제한 건 아니에요.” 그 말은 중요했다. 0층이 옛 시설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변한다고 해서 실제 옛 건물 전체가 이동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우리는 시험 영상과 실물 부품, 사람의 증언을 별개로 다루기로 했다. 막연한 공포를 키우는 대신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늘려 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강변 고정틀 근처에 임시 안전 안내판을 추가했다. 호기심에 장비 홈을 만지려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래된 시설 주변은 비 때문에 미끄러웠다. 나는 사진을 찍은 뒤 안전선을 다시 확인했다. 미스터리를 풀겠다고 현장에 새 위험을 만드는 일만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밤에 도원 0층 감시 화면을 보던 민재가 소리를 질렀다. “형, 저기 컵받침 보이죠?” 찻잔이 떨어졌던 벤치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글자가 화면에 보일 만큼 선명했다. `[019 원본 보존: 반환 대상 아님.]` 그 아래에는 누군가 붉은 연필로 덧쓴 문장이 있었다. `이건 이사 온 게 아니다. 누군가 밖에 나갈 자리를 안으로 끌고 갔다.` 나는 컵받침만 보고도 오래된 0층의 위험을 실감했다. 우리는 사람을 건물 밖으로 내보내려 했는데, 건물은 바깥의 공간을 자기 안으로 들여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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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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