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이미 퇴근했어.” 나는 화면에 나타난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또 미래의 내가 보낸 메일일까. 지금까지는 발신자가 '내일의 차도윤'으로 표시됐지만 실제 미래의 나라는 증거는 없었다. 이번 메시지는 발신인조차 없었다. 서윤은 먼저 표시 경로를 확인했다. 정식 알림이 아니라 옛 보존 장치의 상태 설명이 회의실 모니터에 노출된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말한 게 아니라, 과거 누군가 남긴 문장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잠시 기뻤다가 스스로를 말렸다. 이미 퇴근했다면 안전 담당자 한 명은 무사히 집으로 갔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장 하나로 생존과 귀가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회사 장부에서 삭제된 사람에게 남긴 기록을 읽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름과 얼굴을 찾아 공개하는 대신 공식 보존 기록의 근무 종료 절차부터 확인했다.
윤상미 씨가 이날 아침 수선집에서 전화를 해 왔다. 옛 교환기 옆에 있던 철제 서랍에서 납작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봉투 바깥에는 `AH-07 / 임금 미지급 정산자료`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개인 급여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열지 말고 당사자 또는 적법한 담당자에게 전달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봉투 옆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시설 점검표가 붙어 있었다. `마지막 근무 교대: 손으로 확인 / 경보 수신: 별도 지속 / 물품 반환: 완료.`
손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현장에서 일한 사람이 직접 끝냈다는 기록이었다. 도원 시스템이 `근무 종료 미확인`이라고 표시한 이유는 그 수동 기록을 읽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나와 민재, 서윤은 점검표의 연도와 당시 담당 시설의 명칭을 확인했다. 이것은 2026년 10월 31일 사고 당일 기록이 아니었다. 더 오래전 강변 시설에서 남긴 업무 인계표였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오히려 수수께끼가 조금 정돈되었다. 오래전 업무 종료와 지금의 17시 57분 사고를 한 사건으로 묶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전 열 시, 황규태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더 이상 회사 휴대전화가 아니라 개인 전화로 걸었다. “차도윤 씨, 예전 장비 인수인계 때 제가 본 서류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바로 반문했다. “팀장님이 무슨 서류를 봤습니까?” “안전 경계 단말을 들여올 때 담당자 출입 명부에 이름이 하나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개인정보 비공개 처리라고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본 결재 담당자는 아니었고 후대 인사 연동 승인만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설명을 기록했다. 책임이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건 조사로 정해질 일이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분 성함은 아십니까?” 내가 묻자 황규태가 한참 침묵했다. “기억나는 건 이름이 아니라 도시락통이에요. 파란 고무줄로 두 개 묶었더군요.” 나는 창밖을 봤다. 같은 단서가 너무 자주 나타나면 운명의 징표라기보다 우리가 좁은 복도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그분 도시락이었는지는 확인하셨습니까?” “아니요. 나르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내 질문보다 먼저 조심스러워졌다.
그가 보낸 사진에는 사물함이 하나 있었다. `019-B-0 이관 물품 / 소속 미확정.` 나는 사진 안에서 내 얼굴을 찾지 않았다. 대신 벽면에 적힌 작은 문구를 읽었다. `근로 관계 종료 확인과 안전 설비 인계 확인을 합치지 말 것.` 원래 장치에는 이런 경고가 수없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신형 프로그램은 경고를 읽는 대신 없애는 데 능숙했다. 민재는 “레거시 코드에 주석이 많으면 미래의 사람들이 안 읽는 이유가 있네요”라고 했다. “그럼 읽으라고 주석을 쓰는 거지, 없애라고 쓰는 게 아니잖아.”
오후에는 수선집의 오래된 위치로 가는 골목이 두 겹으로 보였다. 우리 발 아래 실물 보도블록 위로 회색 격자무늬 바닥이 하나 더 나타났다. 문서윤은 처음부터 안전 거리 바깥에 사람을 세웠다. 실제 도로의 배수 뚜껑 위치와 가상 계단 끝이 달랐기 때문이다. 019의 원래 경계가 어디에 있었는지 도면으로 찾는 동안, 공간은 자기 기억에 맞춰 길을 다시 그리는 것 같았다. 그 현상이 서버 신호에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원을 내리면 해결될 거라는 쉬운 가정은 이미 틀렸다는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구청 시설팀과 함께 격자 바닥이 나타난 구역의 수직 하중과 출입 가능 여부를 따로 점검했다. 임시 난간을 세우고 실제 노란 경고선을 유지하자 거짓 바닥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러자 회색 격자 한가운데에서 실물 같은 작은 발자국이 나타났다. 운동화 밑창의 평행선. 그 흔적은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나는 아침에 윤상미 씨의 오른쪽 신발끈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흔적만으로 사람을 연결할 이유는 없었다.
그날 저녁 오재현이 법률 보존 절차를 통해 옛 인사 장부의 공용 공개 항목을 확인했다. `AH-07 근무자: 소속 미표시 / 직무: 시설 안전 경보 유지 / 근무 관계 종료는 계약 별도 확인.` 인사 장부에서 사라진 것이 사람이 아니라 업무 코드였다는 설명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실제 그 일을 맡았던 한 명의 종료 기록도 여전히 온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문제를 따로 풀어야 했다.
나는 퇴근하려다가 경로 보조에게 연락했다. 그에게 도원 근처에서 내 얼굴을 한 세 번째 영상이 나왔다고 알려 주고, 혹시 안전상 우려가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잠깐 생각한 뒤 “그 사람을 만나도 제가 누구인지 말해 줄 필요가 없어요”라고 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같은 얼굴이라고 해서 모두 내 사생활을 알려 주고 싶진 않았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화면의 유사성일 뿐, 친척도 원본도 아니었다.
오후 늦게 황규태의 옛 메일을 더 확인하던 중, 0층 설비 인수 때 작성한 교육 자료가 발견됐다. 첫 장에는 `미응답도 경보 상태의 일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교육 시험지의 답안에는 `미응답 시 현재 근무자 자동 인수`가 정답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황규태는 그 답안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이걸 보고 제가 잘못 외웠군요.” 내가 말없이 기다리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날부터 직원이 안 보이면 다른 직원으로 채우는 게 위험을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윤은 그 진술을 기록했고, 그가 수강한 자료와 실제 지시문의 차이를 별도로 보존했다.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비난하는 것보다 우선 무엇이 잘못 전달됐는지 알아야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사무실 밖 자동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내가 퇴사할 때 이 문은 아무 일 없이 열렸다. 하지만 문 건너에서 누가 위험에 빠졌는지 모른다면 열리는 문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사람을 대신해 내가 안에 남는 것이 정답도 아니었다. 서윤이 옆에 와서 물었다. “또 들어갈 생각이에요?” “아뇨. 오늘은 정말 집에 가려고요.” “그럼 가요. 필요한 일은 전화로 해도 됩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오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밤중 나는 황규태에게서 마지막 사진을 받았다. 파란 고무줄 도시락이 놓인 사물함 뒤편에 회색 고무 도장이 비쳐 있었다. `정리 담당 코드: AH-07 / 수령 서명: 별도 봉함.` 그 아래 손으로 쓴 메모는 뜻밖이었다. `그날 퇴근한 사람은 직원 명부에 없지만, 출근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찾는 것이 유령이 아니라 기록에서 누락된 한 사람의 아주 평범한 하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1758 공공 회선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직접 증빙 제출자: 재방문 요청 / 이번에는 당사자와 동행 가능.]`
제12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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