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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23화
PAYLUA ORIGINAL · 제123화

반환되지 않은 수선비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553자

오프라인 책장
수선집 뒤에서 발견한 금속판은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였다. 양쪽 끝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가운데에는 손으로 돌리는 작은 회색 다이얼이 붙어 있었다. 배만식 소장은 사진만 보고도 말했다. “저거 회선 분리 확인판 같은데. 요즘은 저렇게 안 만들죠.” 나는 그에게 던전 전용 전기기술자 자격증이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현장에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쓸데없는 농담을 하면 밤샘이 길어진다. 우리는 수선집 주인의 동의를 얻고 공공 시설 담당 이선경을 불렀다. 실물을 움직이기 전에 설치된 위치, 연결된 선, 주변 시설의 전압을 확인했다. 분리판과 같은 번호가 새겨져 있다고 해서 원본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래된 장비는 수리할 때 시험용 부품을 여럿 남기기도 한다. 이선경은 “옛 기록을 추적하는 게 좋아도 시장 전체를 실험실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즉시 동의했다. 시험 실패로 떡볶이집 천장이 금융센터 금고로 바뀌면 배상할 방법부터 막막하다. 처음 문제를 알아챈 것은 민재였다. 금속판을 수리용 카메라로 비추자 구형 감지기가 정반대 값을 표시했다. 왼쪽 회선의 소리는 들렸지만 완료 표시가 없었고, 오른쪽 회선은 완료 표시가 켜졌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분리판을 둘로 써야 할 위치에서 하나로 처리해 버린 결과였다. 종이에 적힌 '오른쪽 문을 닫으면 왼쪽 사람은 나가지 못함'이라는 경고가 갑자기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반대편이 조용하다는 이유로 복귀 완료를 선언하면, 아직 걷고 있는 사람이 벽 안에 갇힐 수 있었다. 그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웃지도 못할 장면을 보았다. 가게 앞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세우던 청년의 안전모 화면에 `[귀가 확인 완료: 차도윤]`이라는 글씨가 떴다. 그는 헬멧을 벗으면서 “저 차도윤 아닌데요”라고 말했다.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내가 답했다. 장치에는 낯선 사람의 출입을 등록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고정 계정을 쓰는 기능이 있었다. 하필 그 계정이 퇴사한 내 이름이었다. 내 이름으로 주문한 적 없는 배달이 매일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때 시장 지붕 아래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모든 외부 대기자께 알립니다. 미확인 귀가는 시설 귀가로 일괄 처리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광고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늙은 상인이 새로 생긴 통로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 손수레 앞바퀴가 푸른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 계단은 몇 초 전까지 없었다. 나는 손수레를 붙잡았고 민재는 뒤에서 바퀴를 고정했다. 푸른 계단 아래에는 실제 지하 배수로가 드러나 있었다. 우리는 상인을 인도 안쪽으로 안내한 뒤 사고 위험 구역을 통제했다. “이게 그 등록 문제랑 무슨 상관이죠?” 상인이 묻자 나는 최대한 일상적인 말로 설명했다. “건물이 아닌 길을 건물 출입구라고 표시해 놓아서 그래요. 지금은 그 표시를 믿고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왜 귀가 어쩌고 하지?” 옳은 말이었다. 시스템은 오래된 규정을 열 줄씩 설명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안내는 딱 한 줄이었다. 여기 바닥이 위험하니 들어가지 마세요. 윤상미 씨는 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지인을 소개해 주었다. 최도경. 한때 공공시설 전산 이관 외주 업무를 했던 기술자였고 지금은 소형 수리점을 운영한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손을 들었다. “저는 도원 직원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을 먼저 해 두고 싶네요.” “왜 그렇게 먼저 말씀하십니까?” 내가 묻자 그가 피식 웃었다. “요 며칠 사이 제 가게 앞에 직원용 사원증 발급기가 세 번 나타났거든요.” 도경 씨가 가져온 것은 사진이 아닌 실패한 전송 기록이었다. 공공시설 분리 확인판을 시설 자산으로 옮길 때 작성한 시범 서식이었다. `신고 상태 이전: 허용 / 신고자 신원 이관: 금지.` 그 아래 붉은 글씨로 `후대 자산등록 프로그램이 자동 변환하지 않도록 분리키 유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생성된 REG-ZERO-019 항목에는 분리키가 빠져 있었다. 빠진 자리는 `거주자 일괄 확인`이라는 기능으로 채워졌다. 불법인지, 실수인지 아직 감사가 필요했다. 다만 위험은 이미 눈앞의 배수로에 있었다. 나는 문태수에게 문서를 보냈다. 그는 영상통화로 접속하자마자 인상을 썼다. “현장 안전 조치는 저희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귀속 주체를 정하는 일입니다.” “그 주체를 정하려고 사람을 구멍에 빠뜨릴 뻔한 겁니다.” “절차가 있어야 수리비가 지급됩니다.” 나는 눈앞의 금속판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수리비는 실제 설비 담당에게 지급하면 됩니다. 아직 누가 고용주인지 모르는 사람을 직원으로 등록하지 말고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원본 계약 담당자의 서명을 보내겠다고 했다. 회의가 잠시 멈췄을 때 서윤은 오래된 전송 실패 서류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수신 실패 시 발신자에게 회신을 시도할 것.` 아래에 손으로 삽입된 수정 사항은 `발신자의 소속 확인을 기다리지 말 것`이었다. 처음 장치를 만든 사람들이 굳이 그 말을 적어 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신고를 하면 그 사람의 고용 상태나 주민번호부터 확인하는 사이에 실제 구조 시간이 지나갈 수 있다. 당시에는 그것을 알았는데 왜 오늘의 시스템은 정반대로 행동했을까. 나는 그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최도경은 문태수와 통화가 끝난 뒤 내 옆으로 와서 작게 말했다. “저는 그때 하도급으로 부품만 만졌어요. 그런데 회사들은 부품을 옮기는 서명을 시설 전체를 넘기는 서명처럼 쓰더군요.” 그는 낡은 수리함 안에서 자신이 보관한 공구를 하나 꺼내 보여 줬다. 손잡이에 날짜를 새긴 드라이버였다. “이건 제가 고쳤다는 뜻이지 제 물건이 됐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나는 드라이버를 받아 들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법률 용어보다 공구 하나가 더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통화를 끊고 12분 뒤 전자문서 하나가 도착했다. 제목은 `분리키 예외 적용 승인서`. 승인자 칸에는 임현규 대표이사의 이름이 있었지만, 두 임현규 모두 현재 버전의 결재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문서에 인감 대신 사무용 숫자 스탬프의 인쇄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정문 도장과 똑같이 생겼지만 번호는 `AH-07`이었다. 서윤은 승인서가 위조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실물 도장과 인쇄 흔적을 대조하고, 어느 시스템에서 문서가 생성됐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그날 밤 시장 수선점의 금속판을 원위치 보존하고 위험 표시를 붙였다. 도경 씨는 자신의 오래된 수리 수첩을 펼쳤다. 마지막 줄에 적힌 이름을 보며 한참 말을 잃더니 내게 말했다. “아, 이 사람. 퇴사한 줄 알았는데 회사에선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으로 처리했군요.” 나는 그의 어깨 너머를 들여다봤다. 이름 자체는 손때와 빗물에 번져 완전히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첩 옆에는 분명한 시간과 물품이 적혀 있었다. `긴급 수선 / 외부 경보등 / 파란 고무줄 도시락 두 개 / 수선비 미지급.` 그리고 맨 아래에는 `담당자가 돌아오면 직접 환불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멀리 도원 0층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퇴사 전 마지막 야근 때 듣던, 오래된 내부 전화벨과 똑같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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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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