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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15화
PAYLUA ORIGINAL · 제115화

세림병원의 오른쪽 판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517자

오프라인 책장
오전부터 세림병원 세탁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철제 세탁 카트가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와 달리 금속판끼리 부딪치는 짧은 종소리였다. 지난번 발견한 S-RIGHT 후보가 놓인 구획이었다. 병원 시설팀은 환자 동선과 떨어진 점검실을 통제했고, 우리는 정식 입회가 끝난 뒤 제한된 공개면을 확인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환자의 산소 공급이나 전원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박유라가 우리를 맞았다. “또 병원에 오셨네요.” “건강검진은 아닙니다.” 내가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저도 오늘은 환자 명단에 퇴사자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웃다가 곧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지난 밤 병원 자동 화재 대피 안내에는 낯선 문구가 섞여 있었다. `0층 기숙사로 이동하여 점호.` 환자가 안전 구역으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 존재하지 않는 시설에서 점호를 받으라는 지시였다. 우리는 그 안내를 즉시 격리하고 병원 정식 대피 경로만 사용하도록 했다. 다음에는 도원에서 가져온 자료와 병원의 금속판 후보를 대조했다. S-RIGHT의 표면에는 `수신 확인`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뒤쪽에 붙은 새 스티커에는 `수령인 인사 등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의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신고가 도착했다는 사실과 누군가를 직원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같지 않았다. 정라희가 스티커 가장자리를 확대하자 두 겹의 흔적이 보였다. 맨 아래에는 오래된 구청 시설 번호가 남아 있었고, 중간에는 도원 물류 입고 스탬프, 맨 위에는 협의회 시범 운영 표찰이 붙어 있었다. 세 단계의 반출과 이관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원래 금속판을 이동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물품 인수증이 한 장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도원에서 병원으로 가져간 겁니까?” 민재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원래 병원에 있던 후보를 도원 서식으로 다시 붙였을 수도 있지.” 나는 답했다. “분리판의 일련번호를 보자.” 번호의 뒷부분은 019-S와 맞았지만 앞자리 두 개가 달랐다. 원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대신 우리가 확보한 것은 누군가 분리판의 기능을 재분류해 온 구체적인 흔적이었다. 세탁실 벽에는 옛 시설 보수 수첩이 있었다. 종이 위에 공공 보관실에서 내려온 자재 목록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오른쪽 판 1, 왼쪽 판 없음, 수신 대기 보관 기능 점검 필요.` 그 옆에는 날짜를 둘러싼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각을 하나로 맞추는 작업은 하지 말 것.` 누군가 안전 수칙을 분명히 남겼고, 누군가는 그 말을 읽지 않았거나 무시했다. 잠시 뒤 세탁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물은 실제 배관 누수였다. 그런데 바닥에 닿을 때마다 도원 0층 회의실의 의자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배만식이 배관 밸브 위치와 중첩 반응을 따로 측정했다. 누수 자체가 초자연 현상을 만든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중첩이 실재하는 공간에서 물기와 전선이 만난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시설팀은 해당 구역의 전기 안전을 확인하고 작업자를 모두 밖으로 이동시켰다. 우리는 통제된 시험 회로에서 S-RIGHT 판의 일부 수신 확인 패턴만 관측했다. 장치 전체를 다시 구동하지 않았다. 신호를 보내자 화면에는 `수신 시각 미확인`이라는 정상적인 공란이 나타났다. 도원에서는 바로 이 공란을 견디지 못하고 사람의 이름을 채워 넣었다. 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이 시스템이 제일 싫어하는 게 공란인가 봐요.” “회사 생활에서는 공란을 싫어하면 야근이 시작되지.” 나는 대답했다. “공란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란을 두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 오재현이 제출한 반출 명령의 부속 서류도 도착했다. 발행 시각은 사고 전으로 소급되어 있었지만 실제 파일 생성 로그는 며칠 뒤였다. 또 다른 자동 보정이었다. 문서 아래에는 작은 도장이 하나 있었다. `시설 안전검수 확인`이 아니라 `사업 자산 인수 확인`. 설비를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확인했다는 기록을 누군가 소유권 이전으로 재해석한 듯했다. 우리는 병원 판을 그대로 두고 외부 기록에 사진과 측정 결과만 연결했다. 현장 책임자의 허가 없이 회수해 갈 물건이 아니었다. 특히 병원의 실제 안전 설비에 아직 쓰이는 부품일 수도 있었다. 박유라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오늘은 뭘 알아낸 겁니까?” 나는 말했다. “누군가 작은 확인 도장을 아주 큰 소유권 도장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병원에서도 흔한 병이네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녁에 정하경으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왔다. 그녀는 우리가 발견한 수첩의 날짜를 보고 기억 하나를 전했다. `019 분리판은 둘 중 하나만 반환할 수 없습니다. 신고를 보낸 사람과 확인을 기다린 사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두 방향으로 갈라진 대피 길을 떠올렸다. 하나를 회수하면 나머지를 지킨 사람이 기록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세탁실의 옛 수첩에는 작은 물건들의 목록도 있었다. `파란 고무줄 2개, 도시락통 보관 1, 확인표 미발행.` 파란 고무줄은 019 사진 속 보존 책임자가 들고 있던 물건과 닮았다. 하지만 같은 물건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사진을 확대하자 민재가 물었다. “도시락통 안에 분리판이 있었던 걸까요?” “기술적으로는 너무 작아.” 나는 대답했다. “단순히 같은 시기에 쓰던 물건이었을 수도 있어.” 서둘러 단서를 하나로 묶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겪었다. 병원 직원들이 교대하던 시간이었다. 밤새 일한 시설 기사가 내게 뜬금없이 물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왜 사람이 퇴근하면 고장 납니까?” 나는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사람이 없어도 돌아가야 할 경보를, 누가 남아서 책임지는지 확인하는 출석표에 붙여 버렸거든요.”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사람이 교대하려고 장비를 만드는 건데.” “저희도 원래 그랬을 겁니다.” 그 말이 나오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도 도원에서 7년 동안 누군가의 야근 덕분에 넘어간 장애가 얼마나 많은지 뒤늦게 떠올렸다. 문서윤은 해당 수첩이 병원 수리팀의 구내 기록일 뿐 공공 보존실의 공식 인수증이 아니라는 사실도 적었다.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도장을 찍었다고 소유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일상을 지킨 작은 기록들을 잘못 해석하는 순간 그것들이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 판의 뒷면에서 희미한 숫자 세 개를 읽었다. `17:56`. 그 옆에는 붉은 화살표가 있었다. 도원에서 최초 사고라고 적힌 17:57보다 1분 앞선 시각이었다. `첫 수신 대기 상태 기록`. 누군가가 이미 위험을 알고 있었거나, 사고 전의 시험 경고가 따로 존재했다는 뜻일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범인 발견'이라는 문구를 쓰지 않았다. 대신 서윤에게 보냈다. `최초 사고 전 원본 상태의 증빙 확보. 신호 발신자 및 실제 수신 여부 계속 미확인.` 사람들이 조금씩 퇴근하고 있는 밤에 장치는 다시 낮은 금속음을 냈다. 그 소리의 주인이 사람인지 기계인지 아직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중 누구도 병원의 청소 노동자를 그 소리의 새 주인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기록의 공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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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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