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14화
PAYLUA ORIGINAL · 제114화

오늘도 출근하는 건물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614자

오프라인 책장
도원의 거짓 0층 등록이 가장 먼저 바꾼 것은 사람의 출근 기록이 아니라 지하철 출구 안내판이었다. 출근도 하지 않은 회사가 도시 교통까지 관리하려 들다니.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환승교에서 도원 방향을 가리키는 파란 화살표가 켜졌다. 그 아래에는 `신규 건물 연결 통로 개통`이라는 글씨가 떠 있었다. 실제 지하철 운영사에는 그런 통로를 열었다는 기록이 없었다. 더구나 해당 방향은 우리가 아직 안전을 확인하지 못한 019 점검관 쪽이었다. 김하린이 즉시 지하철 관제와 연결했다. 운영사 직원들이 임시 안내 표지판을 세우고 보행자를 다른 출구로 돌렸다. 문서윤은 신규 등록이 공공 안전 시스템에 전파되는 경로를 찾았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의 출입 기록을 지키는 데 몰두했다. 그러나 ‘건물’이 하나 생겼다고 믿는 기계는 지도, 길 찾기, 화재 대피 경로까지 고치려고 했다. 회사를 퇴사할 때 복리후생만 챙길 줄 알았지, 지도에서 회사가 사라지지 않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다. 오전 아홉 시, 환승교 난간이 서서히 수축했다. 낡은 쇠기둥 사이로 회색 벽이 생겨나고, 바닥의 노란 안전선이 두 겹으로 갈라졌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라 위험했다. 소방 현장팀이 접근을 통제했고 배만식은 비어 있는 점검 구획에서 구조물의 하중 변화를 관측했다.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게 안전 구역을 확보한 뒤에야 설비를 건드렸다. 전원을 무턱대고 끊으면 실물 난간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지난 80화 동안 충분히 배웠다. “이건 도원에서 바깥쪽 통로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정라희가 말했다. 그녀는 옛 도면 위에 현재의 공간 변형 방향을 겹쳐 보였다. 019의 S-LEFT와 S-RIGHT가 분리해야 했던 두 방향이, 새 건물의 ‘정문’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장치를 실제로 이동시킨 사람은 아직 몰랐지만, 어떤 지시가 공간을 흔들고 있는지는 조금 선명해졌다. `외부 통행 공간을 본 건물에 귀속.` “그럼 이걸 취소하면 벽도 사라질까요?” 민재가 물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나는 대답했다. “실물 벽이 생겼다면 철거도 검증해야 해. 행정 프로그램에서 취소 버튼 하나 누른다고 바닥에 서 있던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어.” 하린은 공공 통행 안내를 수동으로 유지했고, 이선경은 시설등록 시험 서버에서 해당 경로의 자동 배포만 일시 중지하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공공 위험 신고 회선은 계속 열어 두었다. 점심을 앞두고 낯선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도원 새 출입구의 자동 안내원이었다. 화면 속에는 반듯한 정장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임현규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복사한 회사 홍보영상이었다. `[시설 사용권 확보 후 경보 종료 가능.]` 안내원은 같은 문장을 세 번 반복했다. “이건 사람도 아니고 회사 광고예요.” 민재가 말했다. “그럼 광고비부터 청구하죠.” 나는 기계에 대답하지 않고 출처 로그를 보존했다. 영상이 임현규의 실제 동의나 설명으로 처리되면 안 됐다. 양복 임현규는 잠깐 화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검은 셔츠 임현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각각 영상 출처에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두 대표가 동시에 자기 회사 광고를 부인하는 모습을 봤다. 대표이사에게 광고 속 본인 모습이 법적 대리인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도 아무도 자기 이름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오후에는 실제 지하철 청소 노동자가 현장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작업 구역이 신규 건물의 로비로 바뀌는 바람에 바닥 청소 장비가 문턱에 끼었다. 우리는 장비를 버리고 우선 사람을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안내했다. 청소 노동자는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긴 길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오늘 서류 한 장 때문에 건물이 된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그런데 저 벽은 진짜잖아요.” 그 말에는 대답을 못 했다. 서류 오류가 물리적 위험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019 공공 회신망에서 낯선 메시지가 왔다. `회신 실패 보존 중 / 외부 안전 구역 귀속 요청을 거절함.` 시스템이 스스로 거절했다는 뜻일까. 김하린은 원본 기록을 살폈다. 같은 문구가 옛 제삼자 단절기에 입력되어 있었다. 단절기의 목적은 누군가를 회사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위험 신고를 건물 소유권 아래 묶으려는 요청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전 기능이 지금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미확인이었다. 우리는 제한된 시험 회로에서 단절기와 같은 규칙을 적용했다. 공공 통행로와 신고 대기점을 민간 부속 시설로 계산하지 않도록 막는 규칙이었다. 모니터에서는 신규 건물의 면적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산정 가능 면적: 0`. 그 숫자는 이번에는 좋은 소식이었다. 외부 대피로는 애초에 계산할 건축 면적이 아니었다. 실제 현장 벽이 즉시 없어지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확장은 멈췄다. 저녁에 오재현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협의회 자산전환팀이 시험용 시설 식별자를 실제 운영망에 배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승인자 이름은요?” “아직 확인 중입니다. 다만 배포 명령을 만든 컴퓨터와 운영실에서 최종 전파한 컴퓨터가 다릅니다.” 나는 문서를 받되 결론을 서두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한 사람이 모든 걸 했다는 이야기는 편했다. 현실은 대개 여러 사람이 각자 작은 편의를 위해 넘긴 책임이 더 무서웠다. 보행로를 우회하던 시민 한 명이 관제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문이 생겼는데 왜 못 들어가요?” 직원은 임시 통제 구역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공공 안전을 위해 잠시 출입을 제한하는 일과 누군가 마음대로 소유권을 주장해 출입을 막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달았다. 지금 우리는 위험한 문을 열지 않으려고 통제하고 있었다. 협의회는 그 문을 소유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닫으려고 했다. 민재는 원래 보행로의 사람 이동 패턴을 복원한 그림을 보여 줬다. 안내판이 오류를 일으키기 전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지나가던 화살표가, 등록 직후 도원 정문에 몰리고 있었다. 원본 사진과 실제 목격을 바탕으로 만든 안전 비교도였다. 그는 말끝을 흐렸다. “이게 제가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 만든 좋은 출근부일지도 몰라요.” “출근부가 아니야.” 내가 웃었다. “퇴근부지.” 민재는 그제야 소리 내 웃었다. 이 공포 같은 현장에서도 우리가 아직 농담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날 밤 민재는 자기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며 사진을 보내 왔다. 집 앞 계단은 평범했고, 모르는 사무실 문은 없었다. 나는 답장했다. `오늘은 그대로 들어가서 자. 새로운 0층 발견하면 관리실이 아니라 119부터.` 그는 `형은 진짜 퇴사자 맞아요?`라고 보냈다. 나도 이제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도원 골목의 0층 문이 다시 반짝였다. 이번에는 `건축물` 대신 `기숙사`라는 글자가 표시됐다. `[미귀가자 임시 수용 시설 지정 준비]`. 누군가 건물 등록이 막히자 용도를 바꿔 버린 것이다. 나는 화면을 보고 중얼거렸다. “회사가 숙식까지 책임져 주겠다는 말을 이렇게 무섭게 할 줄은 몰랐네.” 더 놀라운 건 시설 정원이었다. `[정원: 미귀가자 전원]`. 이름을 지우고 숫자를 남겨 둔 채 사람을 모아 넣으려는 또 다른 시도였다. 내가 퇴사한 회사는 이제 도시 사람들에게 영원히 야근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1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1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