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서윤이 가져온 것은 법적 의견서가 아니라 반쯤 찢어진 종이 봉투였다. 봉투 안에는 낡은 복사 기록의 열람 신청 결과가 들어 있었다. `OUT-019-0 보존 이의 / 원본 소재: 구 환승교 기록 분관 / 열람 가능: 외부 공개면.` 우리는 직접 볼 수 있는 부분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단순히 서류 번호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안의 항의가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기록 분관은 오래된 지하철 환승 시설을 개조한 작은 건물이었다. 이선경과 김하린이 정당한 접근 권한을 확인해 줬고, 서윤이 기록 보존 요청에 서명했다. 나는 열람용 장갑을 끼려다가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그건 원본 보존 처리 담당자가 착용합니다. 고객께서는 복제면만 보시면 됩니다.” 하마터면 한 장짜리 공문을 열람하러 왔다가 아르바이트까지 할 뻔했다.
문서의 맨 위에는 대문자 세 글자가 있었다. `OUT`. 그 아래 줄은 `외부 보존 구역 / 사람이 떠나더라도 기록을 끝내지 않을 것`이었다. 원문에서 0은 건물의 층수가 아니었다. 경계 번호였다. 도원에서 0층을 표시하던 기계가 오래된 경계 코드를 층수로 바꿨다는 의심이 더 강해졌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서명란이었다. `이의 신청자 성명`이라는 칸이 아닌 `이의 접수 기능 확인`이라는 칸에 기계식 숫자 각인이 찍혀 있었다. 후대 출력물에는 그 각인이 사람의 서명처럼 보이도록 필기체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 글씨를 가리켰다. “이게 누가 서명했다는 증거는 아니군요.” “네.” 기록 관리자가 답했다. “원본은 장치가 접수를 확인했다는 흔적입니다. 실제 신청자의 신원은 다른 자료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본문에는 누군가의 말이 남아 있었다. `안쪽 사람이 퇴근하지 못하면 바깥 사람까지 대기시켜서는 안 된다. 회신 실패는 사람에게 이관하지 말 것.` 나는 그 문장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어딘가 익숙했다. 우리가 17개 건물을 돌아다니며 막으려 했던 모든 일이 그 한 문장에 들어 있었다. 밖에 있던 사람이 안쪽 사람을 기다릴 수는 있다. 하지만 기계가 그 기다림을 의무 근무로 바꾸면 그건 다른 문제가 된다.
서윤은 본문 끝에 붙은 `제삼자 개입` 표시를 발견했다. `019-B-3 회신선 접속 종료 / 외부 이의 기능 작동.` 나는 곧바로 정하경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 기록의 ‘제삼자’가 사람인지 장치인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하린은 오래된 설비 목록에서 같은 명칭을 찾았다. `제삼자 단절기`: 기업 인사망이 공공 위험 신고를 관리자 출석으로 바꾸려고 할 때 자동 연결을 끊는 보호 회로였다. “그럼 사람이 일부러 끊었다는 사진 문구가 잘못됐을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장치를 누군가 조작했을 수도 있고요. 지금은 둘 다 열어 둬야죠.”
우리가 기록을 조사하는 동안 도원의 거짓 건물 신청은 한 단계 더 진행됐다. 신축 시설 안내판에 `출입구 관리인 지정 필요`라는 경고가 떴고, 병원 쪽의 오래된 비상문이 잠깐 파랗게 변했다. 나는 안내소 관제팀에 실제 문 상태를 확인했다. 실물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안내 표지판의 화살표가 도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환자 보호자들이 그 방향을 따라갔다면 병원 밖으로 나와 회사 골목에서 길을 잃을 뻔했다. 박유라와 시설팀은 표지판을 수동 안내로 바꾸고 실제 안전 통로에 직원들을 배치했다.
기록 분관 직원은 오래된 문서의 두 번째 장을 읽어 줬다. `등록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공공 안전 경계는 건축물 부속 면적으로 합산하지 않는다.` 뒤이어 손으로 붙인 부록이 있었다. `부속 면적으로 전환될 때 반드시 외부 이의 접수 기록을 조회할 것.` 이의 신청은 단순한 반대 의견이 아니라, 후대에 누구도 이 구역을 마음대로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남긴 안전핀 같은 기록이었다.
“그런데 그 안전핀이 지금 왜 안 작동합니까?” 민재가 물었다. 나는 첨부된 전자 이관표를 보여 줬다. 예전에는 이의 신청을 조회한 뒤 등록 허가를 심사해야 했지만, 새 프로그램은 등록 성공 후에야 이의 신청을 확인했다. 순서가 뒤집혀 있었다. 집을 먼저 지은 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의를 신청하라고 한 꼴이었다.
점심 무렵 협의회에서 조건부 면적 등록을 강행하겠다는 안내가 왔다. 오재현은 본인이 결재한 내용이 아니라며 별도 이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등록이 실제 행정 승인으로 확정되지 않더라도, 이미 민간 시설 제어 프로그램이 승인처럼 받아들여 현장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서윤은 기록 분관에서 확보한 공개 부분을 근거로 임시 제어 중지 요청을 작성했다.
나는 구 환승교 자료의 마지막 면을 봤다. 아주 작은 네모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하나는 안쪽 위험 신고를 위한 통로, 하나는 바깥쪽 사람의 자율 귀가를 위한 통로. 그 사이에는 문이 아니라 끊을 수 있는 점선이 있었다. `응답이 없다는 사실은 둘을 묶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끊어야 했던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둘을 강제로 묶는 시스템의 선이었다.
그날 기록 분관에서 가장 오래 걸린 일은 문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열람 범위를 정하는 일이었다. 공개면 아래에는 개인 이름이 들어갈 수 있는 접힌 칸이 있었고, 담당자는 당사자의 동의나 적법한 권한 없이는 펼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우리가 원문을 원한다고 해서 오래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삶까지 볼 권리는 없었다. 서윤은 공개면의 촬영 위치를 조정하고 비공개 부분이 찍히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했다.
복도에는 옛 환승교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형을 만든 사람은 손바닥만 한 공간을 일부러 비워 놓았다. 설명에는 `응답자 없을 때 장비를 기다리게 하는 자리`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모형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를 기다리게 한다. 말은 단순했지만 도원의 모든 회의실이 그 원칙을 잊고 있었다. 민재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장비도 야근 수당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장비는 교대할 수 있어. 사람은 퇴근할 수 있고.” 나는 대답했다.
이선경은 모형의 제작 시기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제작 시기가 후대라면 최초 설계의 증거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안전 기능을 설명하는 자료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나는 어떤 자료가 원본이고 어떤 자료가 후대 해석인지 구분해서 메모했다. 이번 사건은 후대 해석이 원본인 척하는 순간부터 커졌으니까.
기록 열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하린이 전화를 받았다. 강변 점검관의 옛 금속 덮개가 갑자기 움직였다는 것이다. 실제 작업자는 접근하지 않았고, 주변 지반의 안전 확인도 끝나지 않았다. 카메라 화면에는 둥근 쇠고리 하나가 덮개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 위에 찍힌 숫자 `019-B-3`은 우리가 방금 읽은 이의 신청서의 숫자와 같았다.
그런데 더 작은 글자가 옆에 있었다. `외부 단절기 / 수동 작동 허용.` 나는 화면을 보고 말했다. “누군가 정말 회신을 끊었다면, 그 사람이 망가뜨린 게 아니라 사람을 지키려고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찾아야 할 것은 범인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날 단절기를 눌러야 했던 이유였다.
기록의 공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제1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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