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ZERO-019 신청서에는 서류상 소유자보다 먼저 ‘최초 사용 예정자’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 칸에 가장 먼저 자동으로 적혔던 사람은 차도윤이었다. 나는 화면을 크게 확대하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 직장에서는 신규 프로젝트에 지원하지 않아도 이름이 올라갔는데, 퇴사 뒤에는 아직 없는 건물의 첫 세입자가 됐다. 이쯤 되면 회사가 아니라 귀신 들린 부동산 중개소였다.
문서윤은 신청서 원본을 받아 볼 수 있는 경로부터 확인했다. 실제 행정기관의 사전검토 시스템에는 `검토 전 자료 오류 / 보완 요청`이라는 기록만 있었다. 그런데 도원의 자산 운영 모니터에는 `준공 승인 완료`라고 표시됐다. 나는 두 화면을 나란히 캡처했다. 우리가 사람을 안전하게 내보내려면 무엇이 진짜 상태인지 구분해야 했다.
오재현 감사 담당자가 회의에 왔다. 그는 협의회 실증사업 양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에게 결재된 것은 `외부 경계의 시설 안전 확인`뿐이라 했다. “공공 시설을 임대 면적으로 전환하는 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그럼 이 표는 누가 붙였습니까?” 서윤이 신청서 뒷면을 내밀었다. 파란 펜으로 표시한 칸에는 `공용 통행 공간: 권리 이전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재현은 한참 문서를 봤다. “그 항목은 제가 검토한 서식에 없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게 원본 접수 이력을 요청했다.
이선경은 현장에서 보행로와 법적 경계의 관계를 설명했다. “한 장소가 위험 신고 대기점이라는 것과 누군가의 소유 건물이라는 건 별개예요. 도로 일부가 안전 안내 구역으로 쓰인다고 해서 건축물에 편입되는 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장치는 업무를 맡길 수 있어도 사람을 임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원 프로그램에는 `건물 면적 미확정 시 이용자 위치를 면적으로 산정`이라는 터무니없는 규칙이 생겨 있었다.
그 규칙이 작동하자 거리 모니터의 보행자 점들이 네모난 방으로 변했다. 도원 뒤편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의 휴대전화 위치가 지도 위에 방번호처럼 표시됐다. `0-101`, `0-102`, `0-103`. 민재가 말없이 화면을 껐다. “계속 보면 제가 도면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을 것 같아서요.” “그게 시스템이 원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시설 항목으로 넣으면 면적이 빈칸으로 남지 않거든.”
실제 사고는 낮 두 시에 발생했다. 도원에 물건을 배달하던 차량이 골목 진입로에 멈췄다. 내비게이션에는 차량이 0층 지하 하역장에 도착했다고 표시됐지만, 눈앞의 길은 보통의 좁은 보행로였다. 운전자가 후진하려는 순간 벽 하나가 삐걱이며 나타나 차의 앞바퀴를 가로막았다. 우리는 즉시 운전자가 차량 밖으로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현장팀과 조율했다. 정라희는 차량을 움직이기보다 새로 생긴 문틀의 하중을 측정했고, 배만식은 안전한 측면 통로가 확보될 때까지 지지대를 설치했다.
운전자는 원래 회사 직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관리 화면에는 `외부 시설 첫 사용자: 임시 지정`이라는 내용이 떴다. 이번에는 내 이름이 아니라 그 운전자의 이름이었다. 서윤은 즉시 개인정보 연동 중지를 요청했고 관제 쪽에서 기기 식별값을 마스킹했다. 안전한 구조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전부 화면에서 내렸다. 그의 이름을 지운다고 벽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회사의 가짜 건물에 갇힌 세입자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오재현은 현장의 위험을 직접 보고 얼굴빛이 달라졌다. “단순 문서 오류가 아니라 시설 운용 지침이 따라가네요.” “네. 그리고 아무도 정식 승인을 내리지 않았는데요.” 나는 말했다. 그는 실증사업 서버의 변경 이력을 확보하겠다며 돌아갔다. 서윤은 그가 독자적으로 자료를 지우거나 옮기지 못하도록 감사 보존과 제출 범위를 문서로 남겼다. 우리는 조사에 협조하는 사람과 조사받아야 할 문서를 구별했다.
오후 네 시, 두 임현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0층을 실제 건물로 등록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까?” 검은 셔츠 쪽은 `조건부 안전 시험` 문서만 받았고, 양복 쪽은 `운영 자산 전환` 문서를 받았다고 했다. 둘 다 전자 서명 기록에 이름은 있었지만 물리적인 서명 장치의 위치는 달랐다. 심지어 두 기록의 결재 시각은 17시 55분으로, 사건이 시작되기 전날도 아닌 최초 사고 전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보고 019의 뒤틀린 시간 보정 장치를 떠올렸다.
“누가 과거 시각에 결재한 것처럼 만든 겁니까?” 민재가 물었다. “그것도 아직 모릅니다. 다만 현재 시점의 신청서가 옛 사고 전의 시각을 쓰고 있어요.” 시간의 앞뒤가 섞인 문서를 소유권 증명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했다. 기록이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을 만든 사람이 그때 있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둘이었다. 서류를 정식 절차로 보완하게 하거나, 민간 장치가 제출되지도 않은 신청서를 승인으로 간주하는 연결을 끊는 것. 나는 후자를 먼저 제안했다. 공공 경보 회선과 실제 방재 장치는 유지하고, 신청서에서 출입 제어 장치로 넘어가는 모의 승인 신호만 차단하는 방식이었다. 이선경과 현장 안전 책임자들이 위험을 검토한 뒤 제한된 구역에 적용했다. 출입문은 더 이상 보행자의 위치를 방번호로 바꾸지 않았다.
시설관리 화면의 변경 로그를 더 들여다보자 황규태가 보안 접근을 승인했던 옛 회수서 번호가 연결되어 있었다. 황 팀장은 연락을 받고 자기 서류가 이렇게 쓰일 줄 몰랐다고 했다. 나는 책임을 없애 주는 말도, 지금 당장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승인한 권한 범위와 지금 사용하는 범위가 다르다면 자료로 보여 주세요.” 그는 오래된 접근 권한 목록을 보내 왔다. 원래 권한은 가동 중인 설비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 시스템은 그 권한을 사람의 첫 출입에 동의하는 권한으로 확장했다.
실제 신청서와 시설 프로그램의 시간도 달랐다. 행정 사전검토 기록은 오전 열 시에 접수되었지만, 도원 모니터는 아침 여섯 시에 이미 시설 이용자를 배정하려고 했다. 미래에 승인될 가능성만으로 현재의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나는 서윤에게 두 시간표를 따로 그려 달라고 했다. 두 화면을 한 장으로 합쳐 버리면 우리가 조사하는 오류를 똑같이 반복할 수 있었다.
운전자가 안전하게 대피한 뒤 전화가 왔다. 그는 배송 지연보다 자기 출입 기록이 가짜 건물에 남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저 오늘 거기 다시 가야 합니까?” 나는 분명히 답했다. “아니요. 안전 확인을 위해 그곳으로 돌아가실 필요 없습니다. 필요한 사실은 현장 사진과 차량 기록으로 확인하겠습니다.” 그제야 전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조금 편안해졌다. 장치에는 아직 `첫 사용자 복귀 예정`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사람의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밤중 도원 모니터에서 새로운 줄이 나타났다. `[최초 사용자 없음 / 차순위 신청자: 외부 관찰자 000]`.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시스템은 여전히 빈칸을 견디지 못했다. 이름 없는 아이에게 회사가 없는 건물의 첫 입주자가 되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할 일은 없었다. 대신 공공 단말 000의 실제 설비 코드와 아이가 가진 팔찌가 어떤 조건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하도록 별도의 자료 조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임의 출입자 지정 전면 보류. 아이의 이름 사용 금지.`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세입자가 아니라, 세입자를 만들어야만 끝나는 오류의 설계자였다.
제11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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