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경계의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오전 열한 시 십삼 분이었다. 발신자 정보는 공란이고 위치만 도원솔루션 뒤편 보행로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신고가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 외부 경고는 이름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회사 회의로 변질될 수 있었다. 김하린이 공공 회선에서 수신 번호와 시간을 따로 보존했고, 문서윤은 현장 관제에 보행로 출입 상태를 물었다.
“건물이 하나 늘었습니다.” 관제 직원의 첫마디였다. “늘었다고요?” “원래 골목 벽이 있어야 할 곳에 작은 출입구가 나타났어요. 관리 화면에는 건축물번호가 붙어 있고요.” 나는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옛 18번 경계와 비슷한 회색 문이 골목 끝에 떠 있었다. 문 옆에는 인쇄한 지 십 분도 안 된 듯한 표찰이 붙어 있었다. `도원솔루션 부속 시설 / 지상 0층 / 시설 상태: 준공 대기.` 건물의 층수를 세다가 0을 세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회사는 안 세어도 되는 걸 세다가 서울을 망가뜨릴 기세였다.
이선경이 도면을 받아 들고 바로 제동을 걸었다. “이건 공식 건축물대장 발급본이 아닙니다. 민간 시설관리 프로그램에서 만든 대장 연동 신청 화면이에요.” 그녀는 화면의 작은 워터마크를 보여 줬다. `사전 검토 / 실물 현황 미확인.` 그 글자를 지운 복사본이 현장 출입 시스템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직 관청에서 승인한 건물이 아닌데, 안내 로봇과 자동 방화문은 이미 건물 하나가 생긴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문이 열릴 때마다 반대편 골목의 비상 통로가 한 뼘씩 좁아진다는 점이었다. 정라희가 가져온 거리 측정기를 배만식이 확인했다. 철제 문틀이 밀려드는 것은 단순한 화면 효과가 아니었다. 벽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출입구 앞에 사람을 세우지 않았다. 소방 현장팀이 골목을 통제하고 정식 계단 쪽의 보행자를 우회시켰다. 나는 도원 방재 화면의 경고를 확인했다. `[신규 시설의 최초 입주자 필요 / 미등록 현장 책임자 대기.]`
“그 이름을 누가 적습니까?” 민재가 물었다. “우리가 안 적으면 자동으로 내 이름이겠지.” 나는 헛웃음을 쳤다. 실제로 대기 이름은 차도윤이었다. 퇴사한 지 하루가 넘었는데 신축 건물의 초대 관리인까지 맡을 판이었다. 서윤은 즉시 ‘본인 미동의, 권한 없음’ 이의를 기록했다. 기록을 남기자 화면이 차분해질 줄 알았지만, 작은 문 위에 붉은 불빛이 켜졌다. `관리자 미정 / 출입구 폐쇄 전환.`
관제 화면에는 문밖에 서 있던 배달 기사의 위치도 찍혔다. 실제 사람은 안전 통제선 밖에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이 신규 시설의 첫 출입으로 계산되고 있었다. “잠깐, 저 사람을 나가게 놔둬야 해.” 나는 서윤에게 말했다. “안전을 위해 통제선 뒤로 이동하도록 현장팀이 안내하고 있어요.”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사람의 발이 아니라 그 발걸음을 근무 기록으로 바꾸는 연동이었다. 하린은 공공 보행로 안전 신고를 유지하고 민간 시설 출입 토큰만 격리했다. 배만식은 현장 수동 방화문 상태를 확인해 문틀에 과도한 힘이 걸리지 않게 고정했다.
점심때쯤 민간 신청서의 접수 경로가 확인됐다. 신청인은 `미래기록관리협의회 / 제0 경계 시설전환 실증사업`. 승인 권한자는 여전히 공란인데, 첨부 자료에는 낡은 019 보관실 도면이 붙어 있었다. 도면의 바깥쪽 공용 통로가 색칠되어 있었다. 원래 `긴급 통행 확보`라고 적힌 칸은 `임대 가능 면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단어 두 개가 바뀌는 사이 길 하나가 사유지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협의회가 도면을 수정한 겁니까?” 내가 물었다. 이선경은 고개를 저었다. “신청서 제출자와 실제 편집자는 따로 확인해야 해요. 기록 이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검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제출했든 지금의 위험은 실제였다. 방화문에 손을 넣으면 사람이 다칠 수 있었고, 안전 대기 공간을 사유 출입구로 바꾸면 다음 대피 때 사람들이 갈 곳을 잃었다.
그날 오후 도원 0층의 검은 셔츠 임현규가 연락했다. “부속 시설로 등록하면 실물 검사가 쉬워진다는 제안이 왔습니다.” “누가 제안했습니까?” “재단과 협의회 사이의 실증 담당자가요.” “공공 통로를 건물로 먼저 만들어서 안전하게 검사한다는 말은, 사람을 일단 직원으로 등록해야 퇴근시킬 수 있다는 말하고 똑같습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양복 임현규 쪽에서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둘에게 도착한 신청서는 문장만 같고 첨부 표가 달랐다. 하나에는 `임시 대피 전용`, 다른 하나에는 `장기 이용권 부여`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두 서류를 서로 섞지 않고 따로 보관했다. 일치하는 것은 신청 번호 `REG-ZERO-019`뿐이었다. 처음에는 수상한 등록 사기처럼 보였지만, 회신 실패 장치를 건축물에 억지로 귀속시키려는 의도라면 더 큰 일이었다. 건물이 하나 생기면 그 건물의 관리자를 정해야 한다. 관리자를 정해야 회신 실패가 끝난다. 이 오래된 오류는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질 무렵 서윤이 OUT-019-0의 복제 사진을 펼쳤다. 접수번호의 첫 글자 `OUT` 옆에,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 작은 부호가 있었다. 건축 도면에서 흔히 보는 ‘대지 경계’ 표시가 아니라, 옛 공공 안전 도면에서 쓰던 ‘외부에 남겨 둘 공간’ 표시였다. 지금 신청서에서는 그 부호가 지워져 있었다.
서윤은 접수 서류의 하단에 있는 작은 동의 문구도 찾아냈다. `임시 시설 등록 시 기존 인원 기록의 장기 보존에 동의함.` 누가 동의했는지는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문구를 읽다가 하림이 자기 이름을 스스로 고르겠다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동의 없이 장기 보존된 기록은 한 사람에게 평생 출근을 요구하는 족쇄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그 빈칸마저 사업 승인의 일부로 취급했다.
현장 안전팀에게서 새 사진이 왔다. 원래 골목의 벽에는 작은 피난 안내 그림이 있었는데 회색 문틀이 그 그림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그림에 화살표가 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하나는 건물 안 사람이 나오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방향이었다. 민간 신청서에는 그 화살표가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나는 민재에게 말했다. “저걸 시각적으로만 고치면 안 돼. 실제로 서로 다른 길이라는 걸 장치에도 알려 줘야 해.” 민재는 현장 원본 사진과 변형 영상을 따로 보존했다. 우리 눈이 보는 길과 기계가 믿는 길을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잠깐 쉬는 동안 휴대전화에 옛 동료의 퇴사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날짜는 어제였다. 다른 사람이 내 퇴사를 축하하는 사이 회사는 내가 신축 시설 관리자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답장으로 `고맙습니다. 아직 회사가 보내 주질 않네요`라고 썼다가 지웠다. 지금도 실제로 출근해야 하는 동료들에게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누군가 그 자리를 건물 안으로 집어넣고 있어.” 내가 말했다. 민재가 작게 물었다. “그럼 진짜 건물이 되는 겁니까?” 나는 현장 카메라를 다시 봤다. 좁아지는 골목, 움직이는 문틀, 그 앞에서 사람들을 다른 길로 안내하는 소방대원들. 실제로는 건물이 생긴 게 아니라, 건물이라는 거짓말을 현실이 따라 하려는 중이었다.
그때 안내 화면 한쪽에 작은 숫자가 생겼다. `[실증 시설 첫 사용 예정: 오늘 18:01]`. 내 사직서가 승인된 시간이었다. 누가 그 시각을 선택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할 생각이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신청서가 어디서 왔는지 찾아야 했다.
제11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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