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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1화
PAYLUA ORIGINAL · 제11화

말하지 말라는 0층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891자

오프라인 책장
휴대전화 화면에 황규태 팀장의 이름이 떴다. [차도윤. 네가 본 그 0층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 내가 그 문장을 세 번 읽는 사이, 옥상 아래에서 경보가 울렸다. 누군가 0층이라는 말을 전파하기만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문자에 답장을 쓰려다 손가락을 멈췄다. 황 팀장 말에 순순히 따르는 모양새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확인'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사람이 사직 처리되고, '수신'을 누를 때마다 비상구가 좁아졌다. 문자창의 작은 전송 버튼도 의심하는 편이 정상인 상황이었다. “누구예요?” 문서윤이 물었다. “우리 팀장님. 평소에도 보고하지 말라는 데에는 탁월하셨는데, 오늘은 세상의 비밀까지 담당하시나 봅니다.” 서지완이 어두운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말하지 말라는 대상이 사람인지, 건물인지 구분해야 해요.” “밖에 있는 사람들, 이라고 썼습니다.” “그럼 그걸 누가 듣죠?” 그의 질문을 이해한 건 난간 너머 빌딩 전광판이 번쩍인 순간이었다. 병원 외벽 광고가 갑자기 문서 양식으로 바뀌었다. [0층 확산 사실 전달 대기] [발신 후보: 차도윤] [예상 수신 건물: 17]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발신 후보에 이름이 올라갔다. 모니터링 시스템이 이미 대화의 주제를 듣고 있었다. 세상에는 듣기 좋은 말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내 퇴사 얘기만 이렇게 열심히 듣는 걸까. “입으로 말하면 접수되는 겁니까?” “접수 여부는 모르지만, 저쪽은 준비하고 있네요.” 서지완이 대답했다. 나는 아이에게 무릎을 굽혔다. “너도 저런 글자가 보여?” 회색 후드티 아이는 난간을 내려다보지 않고 종이비행기만 쓰다듬었다. “소리가 먼저 와요. 누구한테 들려줄지 고르는 소리.” “그건 무슨 소리인데?” “프린터가 종이를 물어 가는 소리요.” 옥상 출입문 안쪽에서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서윤이 아이를 물탱크 반대편 안전한 계단 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문틈에 손전등을 비췄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대신 출입문 아래로 작은 출력물 한 장이 밀려 나왔다. [사전 공지문] [외부 복구팀 배정자 차도윤] [확산 통지 책임 승인 예정] “승인 예정이면 아직 승인 안 된 거죠.”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 회계팀에서 흔히 쓰는 문구가 있었다. ‘이의 제기하지 않을 경우 사전 동의 간주.’ 서윤이 이를 악물었다. “또 가만있으면 동의했다는 식이네요.” 우리는 이 기괴한 회사가 허용하는 침묵의 종류를 구분해야 했다. 강요받은 선택지에 답하지 않는 것과 위험을 보고하지 않는 것은 달랐다. 사람들을 살리는 데 필요한 정보까지 감추면 황 팀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주는 셈이었다. “전달 방법을 바꾸죠.” 내가 말했다. “자동 공지망 말고, 실제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채널을 찾읍시다.” 배만식 소장에게 무전을 연결했다. 그는 설비실 수동 방송과 건물 옛 소방 수신기를 여전히 관리하고 있었다. 디지털 화면이 거짓말하는 밤에 가장 믿음직한 것은 아무리 눌러도 인터넷에 로그인하지 않는 구형 무전기였다. “소장님, 우리 옥상에서 바깥 병원에 이상 징후가 보입니다. 외부에 화재나 대피 위험 신고를 직접 전달할 방법 있어요?” “소방 전용선이 하나 있지. 근데 지금 그 회선이 이상해. 수신 확인 소리가 두 번 나.” “한 번만 확인해 주세요. 실제 사람 목소리인지.” 배 소장은 잠시 말이 없더니, 멀리서 책상 서랍을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옛날 유선 무전기를 꺼내 볼게. 그건 기록 서버를 안 지나가.” 나는 눈앞의 푸른 화살표를 봤다. 그것은 맞은편 병원으로 향했다. 경로 아래에 새로운 임무 표가 뜨고 있었다. [수색 대상 12명] [1차 위치: 세림종합병원 부속동] [실행 조건: 외부 복구팀 발령 동의] “동의하지 않았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 나는 표의 구석을 눌렀다. ‘동의’ 버튼 옆에 작은 글씨로 ‘임무 세부 확인’이 있었다. 내 손가락이 닿자 열두 줄이 펼쳐졌다. 이름은 대부분 검은 띠로 가려졌지만 맨 앞의 한 줄만 읽을 수 있었다. [이명주 / 퇴사 3년 경과 / 상태: 출근 중] 퇴사한 지 삼 년이 지난 사람이 지금 출근 중이라고? 그것도 다른 병원에서? 서지완은 표를 보고 굳었다. “저 이름, 내일 출근부에도 있어요.” “내일 병원 직원이라는 겁니까?” “아니요. 우리 회사 명부에요. 그 사람은 도원솔루션 소속으로 내일 출근해요.” 나는 입 안에서 욕설을 삼켰다. 본인 허락도 없이 퇴사자를 재입사시키는 회사라니. 고용보험 담당자가 이 화면을 보면 기절하겠다. 물론 이쪽은 기절하는 것조차 결근 처리할 것 같았다. “우선 사람부터 확인합니다.” 내가 말했다. “이름 하나 보고 누굴 끌어오지 않아요.” 서윤이 옥상 철문을 잠그지 않은 채 안전장치를 걸었다. “아이는 여기 두고 갈 수 없어요. 조정실이 더 안전한지도 다시 봐야 해요.” 아이의 눈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저도 갈래요.” “병원으로?” “거긴 엄마가 한번 갔던 데예요.” 우리는 처음 듣는 정보에 잠시 침묵했다. 아이는 손목의 붉은 팔찌를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억지로 더 캐물으면 아이가 입을 다물 거라는 걸 모두 알았다. “어디든 네 의사를 먼저 들을게.” 서윤이 말했다. “지금은 배 소장님 곁에 있을래, 우리랑 같이 움직일래?”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배 소장 곁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대신 비행기 한 대를 내 손에 쥐여 줬다. 날개 안쪽에는 크레파스로 파란 네모가 그려져 있었다. “저쪽엔 문이 하나 더 있어요. 사람들이 못 보는 문.” “아저씨는 퇴사자라서 보일 수도 있겠네.” “아니요.”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는 사람들이 안 보려고 하는 문도 보잖아요.” 잠깐 바람이 잦아들자 옥상 아래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대강당에 있던 직원들이 쉬는 시간을 맞아 교대로 옥상 바로 아래 층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한 사람은 가족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창틀을 붙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휴대전화 배터리를 서로 나눠 주고 있었다. 회사는 그들을 '316명'으로 불렀지만 각자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이 달랐다. 나는 갑자기 내 수첩에 적힌 이름들이 떠올랐다. 같은 시간에 살아 있다는 것조차 이렇게 여러 사정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우리가 병원으로 가는 동안 저 사람들 상황이 바뀌면요?” 내가 물었다. 서윤은 배 소장과 연결된 무전기를 확인했다. “민재 씨가 교대조 명단을 맡고 있어요. 부상자 있는 방과 쉬는 방을 분리했고, 실제 비상계단은 현장 안내판에 표시했습니다. 누가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면 붙잡지 말고 안전한 출입구가 확인될 때까지 같이 방법을 찾으라고 했어요.” 서지완이 조용히 말했다. “내일 기록에는 오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안 나옵니다. 누가 복사한 출근표에도 그런 건 없어요.” 나는 그 말이 조금 무서웠다. 내일의 시스템이 사람들의 대답을 기록에서 지워 버리면, 오늘을 증명할 건 우리의 허술한 수첩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직원들의 안전 상태를 무전으로 확인하고, 남아 있는 의료 지원과 물 공급을 점검한 다음에야 계단으로 향했다. 구조한다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두는 일은 없어야 했다. 옥상에서 내려가던 중 휴대전화가 다시 떨렸다. 황 팀장의 후속 문자는 아니었다. 방금 내가 펼친 열두 명의 명단이 자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명주 / 출근 확인 진행] [대체 출근자: 차도윤] 나는 즉시 화면을 닫았다. 출근할 사람을 찾아달라더니, 못 찾으면 나를 대신 출근시키겠다는 모양이다. 퇴사한 지 두 시간도 안 된 사람이 대체 근무까지 해야 하다니, 이건 환생해도 못 벗어날 지옥이었다. 그러나 그 문장 뒤에 더 작은 경고가 달려 있었다. [실제 인물 확인 전 회수 시 원본 소실 가능] 이건 꼭 기억해야 했다. 우리의 첫 임무는 누군가를 끌고 오는 게 아니라, 누구를 사람으로 취급해야 하는지부터 배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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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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