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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06화
PAYLUA ORIGINAL · 제106화

세탁실에 숨은 오른쪽 판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693자

오프라인 책장
병원 세탁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 쓴 사직서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장을 떠올렸다. '당사는 직원의 퇴근을 방해할 수 없다.' 실제 사직서에는 그런 문장이 없었다. 앞으로 다시 쓰게 된다면 꼭 넣고 싶었다. 의료용 시트가 산더미처럼 쌓인 방을 보고 있자니, 회사 밖으로 나와도 일이 줄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세림종합병원 시설팀 박유라는 세탁실을 미리 비워 두었다. 실제 환자 이동 통로와는 분리돼 있었고, 정전 대비 조명도 정상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지난달부터 쓰지 않는 배전함 하나가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배전함 겉에는 옛 업체의 표식이 남아 있었다. `019-S`. 나는 괜히 신이 나서 달려들지 않았다. 전기 설비는 설렘으로 만지는 물건이 아니었다. 배만식 소장과 병원 담당자가 절연과 접지 상태부터 확인했다. 상자 안에는 빈 금속 받침대와 모서리가 깨진 분리판 한 장이 있었다. 판의 고유 번호는 정하경이 보내 준 오래된 사진과 일부 일치했다. 하지만 덧칠한 번호가 있어 실물 원본이라고 확정할 수 없었다. 김하린은 통신선을 바깥 독립 계측기와 분리해 측정했다. 판은 여전히 어떤 신호의 시간차를 보존하고 있었다. 두 신호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민재가 물었다. “이거 두 판을 다시 붙이면 길이 원래대로 돌아와요?” “그런 버튼이 있으면 벌써 눌렀겠지.” 나는 깨진 판 가장자리를 봤다. 힘으로 연결하면 금속이 떨어져 나갈 상태였다. 실제 통로도 마찬가지였다. 복도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복구 버튼부터 누르면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우리는 판을 뜯어내지 않고 촬영과 현장 보존 절차를 진행했다. 병원에는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있었다. 황규태가 와 있었다. 그는 얇은 파일 한 권을 들고 있었다. “제 서명이 들어간 외주 작업 승인표를 찾았습니다.” 나는 파일을 받아 읽었다. 당시 일자와 현장 담당자 표시는 있었지만 `이관 후 분리판 제거 승인`에는 서명이 없었다. 그 대신 포괄 승인 번호가 기계적으로 인쇄돼 있었다. “이게 본인 승인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승인한 건 파손 장치의 운반 점검까지예요.” “그러면 누가 그 뒤 작업을 했습니까?” “그걸 찾아야 합니다.” 그가 드물게 내 편을 들어 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거에 현장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원본이 확보된 자료만 공개했고, 이해관계자 증언을 따로 남기게 했다. “황 팀장님, 지금 하실 일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실제로 서명한 범위를 끝까지 확인하는 겁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 병원 벽의 안내 화면이 깜빡였다. `[세탁실 시설 책임자 지정: 차도윤]`. 민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형, 이제 병원 취직까지 하셨어요.” “퇴사하고 이틀 만에 이직 세 번이면 이력서에 적어야 하나?” 나는 표시를 지우지 않고 원본을 별도로 저장한 다음 무단 인사 연결을 격리했다. 병원 설비의 실제 관리자와 공공 안전 신고권을 바꾸지 않았다. 서윤이 독립 영상으로 확인한 결과, 019-S 판의 뒤쪽에서 아주 짧은 빛이 반복됐다. 세림 지하의 낡은 배관도와 대조하자 그 빛은 병원 세탁실이 아니라 오래전 이곳이 물류 창고였던 시절의 외부 반입 통로를 가리켰다. 도원으로 옮긴 장치를 잠시 보관하던 중간 장소였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분리판이 사고 후 몰래 옮겨진 것이 아니라 사고 이전부터 이곳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점검이 끝나 갈 무렵 새 인물이 찾아왔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신분증을 제시하며 자신을 미래기록관리협의회 감사실의 오재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 사진 촬영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대신 문서를 한 장 내밀었다. `[019-S 반환 지시 / 담당 외부 복구자 차도윤]`. 나는 문서를 읽다가 웃었다. “또 제 이름이네요. 설비는 날 퇴사시키지 않기로 단체협약이라도 했습니까?” 오재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협의회가 이전 작업에 관여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니 수거를 진행하겠습니다.” “이건 병원 시설 안에 있는 물건입니다. 원소유와 보관 권한부터 확인해야죠.” “계속 놔두면 위험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병원과 시설 담당자가 위험을 확인하고 안전하게 조치해야죠. 회수 요청이 곧 허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는 대놓고 다투기보다 그가 가져온 반환 지시서의 발행 번호를 확인했다. 날짜는 사고가 일어나기 삼 일 전이었다. 그런데 문서 제목에는 '사고 후 긴급 반환'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리 만든 서류네요.” 서윤이 말했다. 오재현은 잠깐 침묵했다. “정기 점검을 대비한 서식일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서식대로 실제 물건을 가져갈 권한이 있는지도 따로 확인해야겠군요.” 박유라가 곧바로 병원 법무·시설팀에 협조를 요청했다. 감정적으로 추궁할수록 실체가 흐려졌다. 우리는 반출을 중지하고 안전한 현장 보존을 택했다. 점심 뒤 오재현은 조용히 돌아갔다. 그가 최종 결정권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서류의 한 구석에 `사용자 동의 없음: 자동 보완 가능`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 문구를 보자 온몸이 굳었다. 도원에 있던 강제 출근 승인과 같은 방식이었다. 기술의 목표가 안전이었어도 누군가 그것을 편의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날 밤 지완이 우리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출근 예정 날짜가 지났지만 그는 실제 계약 절차를 스스로 확인하고 있었고, 무단 대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거 보세요.” 그가 화면을 보여 줬다. 미래 출근부에서 그의 이름 옆에 작은 표시가 생겼다. `[019-S 동기화 대역]`. 그림자가 여전히 반대 방향으로 드리워진다는 그의 말은 아직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제 이름으로 장비 점검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건 저희도 압니다.” 내가 답했다. “그런데 시스템이 당신을 대역으로 보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죠.” 오재현이 떠나자 박유라는 병원 직원들이 추가 출입 지시를 받을 수 있다며 안내문을 만들었다. 기계 화면의 '반출 완료'를 믿고 문을 열지 말 것, 이상한 벽이 보이면 실제 대피 안내자의 지시를 따를 것, 환자 정보를 회사 전산에 입력하지 말 것. 나는 그 안내문을 보며 병원 시설팀이 왜 신뢰받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거창한 시스템보다 침대 하나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먼저 확인했다. 내가 도원에서 배웠어야 했던 실무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림의 실물 분리판은 병원 담당자의 안전 관리 아래 보존됐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현장 출입 기록을 확인하며 맨 마지막에 적힌 작은 번호를 읽었다. `반출 수령처: 제0 경계 019-B-3`. 세탁실의 판은 원래 함에 들어가야 할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함의 실물이 어디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다. 오재현이 돌아간 뒤 남긴 명함 뒷면에는 연필로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두 장을 다시 겹치지 마십시오. 세 번째 것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곧 범죄의 증거는 아니지만, 적어도 처음 보는 물건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다. 나는 명함을 봉투에 넣었다.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제삼의 장치를 보았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 순간 병원 분리판의 계측 화면에 작은 파형이 찍혔다. 원래 신호가 돌아오는 곳이 아니라 바깥에서 새로운 신호가 들어왔다. 기록에는 생소한 단어가 떠올랐다. `[019-B-3 / 최초 전달 실패 신호 재생 요청 / 요청자: 없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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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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