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림이 연락했을 때 나는 먼저 아이가 무사한지 물었다. “네. 밥도 먹고 쉬고 있어요. 그런데 스스로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대요.”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한서림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아이를 도원에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회사의 비상 회의실에는 이미 의자가 한 개 너무 많았다. 이 아이까지 그 의자에 앉힐 이유는 없었다.
작은 도서관 구석 자리에서 아이는 파란 비닐 지도 한 장을 펼쳐 놓았다. 열일곱 개 문과 떨어진 검은 점, 그리고 밖으로 뻗은 파란 선이 그려진 지도였다. “아저씨, 이거는 제가 그린 게 아니에요.”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길을 보여 주려고 접은 거예요.”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왜 보여 주고 싶었어?” “아저씨들이 문 하나를 못 찾는다며요.” 나는 놀랐다. 아이는 한서림이 들려준 간단한 안전 상황만 알고 있었다. 그 이상을 캐묻지 않았다.
아이는 그림을 뒤집었다. 거기에는 작은 세모가 세 개 있었다. “여기는 쉬는 곳, 여기는 나가는 곳, 여기는 전화가 안 되면 종이를 넣는 곳이래요.” “누가 그렇게 말했어?” “엄마요.”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나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 이 아이가 어머니의 실명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 장소에 관해 알려 준 말이 도움이 되는지, 실제 도면과 비교하면 됐다.
한서림은 아이가 지도를 다시 가져갈 수도 있다고 미리 말했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아이는 그 중 세모 세 개와 파란 선만 찍어도 된다고 했다. 사람 이름이나 뒷면 낙서는 보여 주지 않겠다고 했다. “좋아. 네가 허락한 부분만 볼게.” 그 말을 하자 아이는 비닐을 똑바로 펴 주었다. 아기처럼 취급하지도 어른의 책임을 얹지도 않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전 직장의 회의에서는 어른들이 서로에게 그걸 매일 실패했었다.
세모의 순서는 옛 019 구조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019의 안쪽 기록함, 바깥쪽 확인함, 그리고 우리가 찾지 못한 제삼의 보존함. 다만 그림의 위치와 실제 도면이 일치하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아이가 직접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원 설계자가 아이의 어머니라고 결론낼 수도 없었다. 파란 비닐은 다른 사람이 전달했을 수도 있었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검은 점을 눌렀다. “여기엔 사람이 없었대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문을 못 찾으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 일하라는 건 아니래요.” 나는 대답 대신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기다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달라야 한다는 원칙. 이 도시는 그걸 잊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그 점을 지도에 사람이 앉는 자리로 표시하지 않는 것.
도서관을 나오는 길에 아이가 나를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는 퇴사했어요?” “응. 아주 크게 했지.” “그럼 이제 집에 가도 되겠네요.”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내가 업무 중인지 아닌지 묻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래야지. 오늘 일 끝나면 갈 거야.” “진짜요?” “가능하면.”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가능하면 말고요.” 나는 웃었다. “그래. 진짜로.” 약속이 입 밖으로 나오자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오후에는 서윤과 함께 아이가 공개를 허락한 세모 부분을 도면에 옮겼다. 배 소장은 세 번째 세모의 위치가 옛 환승교 아래 빈 점검관과 가깝다고 했다. “철거 당시 사람이 못 들어가게 막은 구역이야.” “그 안에 장비가 있을까요?” “모르지. 그래서 시설 담당자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선경이 점검 도면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받지 않았다. 아이가 해 줄 일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 도원 서버에서는 아이의 그림을 탐욕스럽게 해석했다. `[외부 관찰자 000 / 위치 정보 제공 / 019-B-3 회신 권한 승인]`. 공개한 지도가 곧 설비 수령 동의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자동 연동을 중단했고 한서림과 아이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다. 아이가 찍도록 허락한 지도 일부가 회의 참석이나 장비 수령 승인으로 바뀌지 않도록 자료 접근 범위를 바로잡았다.
저녁, 정라희가 강변 옛 점검관 부근을 확인한 뒤 연락했다. 그녀는 18번 외부 출구에서 구조됐던 설비 점검자였다. 예전에 쓰던 작업용 수첩에 점검관 앞의 작은 철문이 그려져 있었다. 철문에는 원래 '출입 금지'가 아니라 '신고 회신 점검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외부인이 위험을 알린 뒤 그 신고가 안쪽에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장소였다. 아이가 보여 준 세 번째 세모와 방향이 맞아떨어졌다.
“그럼 그 안에 마지막 신고가 있어요?” 민재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다만 거기 확인하지 않은 공간이 있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녜요?” “옛 지하 점검관입니다. 지반 확인도 없이 들어갈 수는 없지.” 서윤은 소방과 공공시설 담당자를 연결했다. 작업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게 옳았다.
내가 아이에게서 얻은 건 그 아이의 정체가 아니라 도면에서 빠진 작은 표시 세 개였다. 서윤은 그 세 표시를 빨간 경고 표시로 바꾸지 않았다. 지금은 실제 의미를 확인하는 중이었으니까. 그 대신 시설 담당자들에게 '미확인 경로, 임의 개방 금지'라는 간단한 정보만 보냈다. 아이가 허락하지 않은 뒷면 글씨는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않았다. 민재가 무심코 “이 정도면 아이가 공로상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가 내 눈치를 봤다. “아이한테는 그런 상보다 잠깐 놀 시간이 더 필요할 거야.” 그날 저녁 한서림은 아이가 친구와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고 알려 줬다. 나는 처음으로 조사에서 아무것도 더 캐묻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밤에는 경로 보조가 도원 주변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닮았지만 나와 같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내가 물었다. “일단 지하철을 타 보고 싶습니다. 내가 나가도 복구선이 꺼지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건 우리 쪽에서 확인할 일입니다. 당신은 그냥 지하철이 궁금하면 타 보세요.” 그는 웃었다. 내가 퇴사했는데도 대역이 생긴 일 자체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대역을 또 다른 회사 자산으로 만들지는 않을 수 있었다.
자정 직전 선경이 공공 지도에서 그 점검관의 옛 이름을 찾았다. `19번 회신 위치`. 019 보관함의 번호가 아니라, 공공 신고가 회사 경계 밖으로 전달됐는지 확인하는 열아홉 번째 위치였다. 열아홉 번째 의자가 이 점검관의 영상 표시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확인용 위치와 특정 사람의 출석 자리는 여전히 달랐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도서관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능하면 말고요.' 아이는 사건을 해결하라고 부탁한 게 아니었다. 내가 집에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부탁을 지키는 게, 오늘 우리가 마지막 신고를 찾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현장 모니터에서 19번 점검관의 표시가 바뀌었다. `[비어 있는 자리: 통로 정상]`이었던 글자가 `[비어 있는 자리: 누군가 수신 확인을 대신할 것]`으로 바뀌었다. 단말 000이 아닌 다른 이름 하나가 자동으로 적혔다. 내 이름도, 서지완의 이름도 아니었다.
**`임현규 — 복수 출석 확인`.**
대표가 두 명인 회사가 이번에는 두 명을 한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었다.
제10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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