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성하금융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지하 출입구 두 곳이 서로의 위치를 바꿨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처음에 내 휴대전화의 지도 앱이 또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우찬 당직자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계단을 내려가면 병원 주차장이 나옵니다. 올라오면 우리 금융센터 로비예요.” “사람이 있습니까?” “택배 기사 한 분이 내려가셨는데, 아직 위치 확인이 안 됩니다.”
도윤아, 퇴사하면 몸이 편할 거라고 네가 생각했지. 나는 마음속으로 어제의 나를 꾸짖었다. 실제로는 우리 팀이 먼저 출동했다. 문서윤이 소방 측에 건물 경계 이상 현상을 설명했고, 정우찬이 현장 인원 통계를 확인했다. 누구도 통합된 출입 기록의 ‘인출 완료’ 표시만 믿지 않았다. 우리는 복도 입구마다 실물 위치 표식을 달고, 거울처럼 보이는 벽을 무조건 통과하지 못하게 했다.
그날의 택배 기사는 고태진이었다. 삼십대 후반의 남자였고, 배송 상자 다섯 개와 함께 계단 중간에서 발견됐다. 그는 스스로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지만, 아래쪽에서 병원 응급실 표지판이 보이자 움직이지 못했다. “제가 여기로 내려오면 퇴사했다고 뜹니까?” “아닙니다. 회사 직원도 아니시잖아요.” “그런데 휴대전화에 회사 인사 알림이 와요.” 그는 화면을 보여 줬다. `[임시 물류 인력 / 귀환 미확인 / 인사 책임 대체 요청]`.
나는 그에게 알림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본인이 원하는 방향을 물었다. “밖으로요. 물건은 맡겨도 됩니다. 집에 가야 해요.” “그 방향을 확보하겠습니다.” 배 소장과 현장 대원은 물리적으로 이어진 계단 난간을 확인했다. 연결되지 않은 가상 복도를 먼저 차단하고, 한 계단씩 바깥 출구로 안내했다. 태진은 발이 평지에 닿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 택배 기사인데, 배송 과정이 공포영화에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전 퇴사자입니다. 퇴사 과정이 장편 소설이 됐고요.”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옛 교통안내소에서도 비상문이 바뀌었다. 금융센터의 계단 끝과 옛 안내소의 지하 통로가 짧은 시간 동안 겹쳤다. 이곳은 남아 있던 위험 현장 두 곳 중 하나였다. 이선경이 공공 시설 접근을 통제하고 김하린이 독립 신고선을 유지했다. 우리는 하나의 화면으로 두 곳을 동시에 보정하는 자동 복구 명령을 더 이상 실행하지 않았다. 원래 안전한 출구였던 방향을 두 장소의 '공통 회귀'로 고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럼 무슨 방법이 있어요?” 민재가 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실제로 안전한 길을 확인하는 거야.” “언제 끝나요?” “정답을 찾기 전까지는 위험한 구역을 열지 않는 거지.” 서윤은 내가 지나치게 담담한 척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작게 말했다. “잠도 좀 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계획은 있었다. 계획과 실행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오전 열 시쯤 이상한 장면이 벌어졌다. 금융센터에서 떨어진 벽의 금속 패널이 교통안내소 지하 카메라에도 같은 흠집으로 나타난 것이다. 화면 합성이라 생각했지만 두 현장 직원이 손전등을 비추자 실제 흠집의 방향이 같았다. 물리적인 공간 중첩은 단순 전산 기록 이상의 문제였다. 나는 019-S 분리판과 도원 코일 사이의 신호 중계 시간을 확인했다. 패널이 겹친 순간, 019-B-3 수신함은 `두 시간 비교 중`이라는 상태였다.
“시간을 비교한다고 벽이 움직이나?” 배 소장이 불신에 찬 얼굴로 물었다. “설명할 수 없어요. 아직은요. 그래도 같이 움직이는 조건을 찾았으니 피해는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장 방재 담당자와 상의해 자동 재현 시험을 중단했다. 실제 벽의 안전성과 피난 경로는 전문 인력이 따로 확인했다. 이 구분은 사람이 사는 건물에서는 아주 중요했다. 서버를 재부팅한다고 벽이 다시 튼튼해지지는 않으니까.
하림이 구조된 뒤 처음으로 직접 조사에 의견을 냈다. “저 안에서 문이 두 개로 보인 적이 있어요. 하나는 도시락을 가져오는 곳, 다른 하나는 제가 나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우리는 증언을 녹음할지 물었고, 그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대신 짧은 메모를 직접 써 주었다. '문이 겹치기 전에는 소리가 달랐음.' 소리라. 서윤은 17시 56분의 녹음 원본을 다시 확인했다. 도시락 뚜껑 소리 뒤에 서로 다른 두 종이 울리는 간격이 있었다. 하나는 안쪽, 하나는 바깥쪽 신호로 보였다.
그날 오후 두 곳의 통로는 임시 차단을 유지한 채, 바깥 출입구만 안전하게 개방됐다. 실제로 고립된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인사 시스템은 고태진이 '구조를 거부하고 내부 근무로 전환'했다고 표시했다. 나는 구조대의 실제 대피 확인과 당사자가 고른 귀가 방향을 확인해 정정 요청을 제출했다. 태진은 직접 휴대전화로 회신했다. '집에 갑니다. 제 근무지는 던전이 아닙니다.' 그 문장을 본 민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선경은 오래된 019 철거 사진에서 별도의 금속판 번호를 찾았다. `S-LEFT`와 `S-RIGHT`. 이전에는 공간 두 방향을 구분하는 판이라 여겼다. 그런데 뒷면에서 발견된 글씨는 `시간차 보존용`이었다. 하나는 신고를 발신한 순간을, 하나는 받아 들었음을 확인한 순간을 보존했다. 그 둘을 한 시각으로 맞추면서 두 방향의 중첩이 시작됐다면, 우리가 고장 낸 것은 주소록뿐 아니라 현실을 기록하던 장치의 순서일지도 몰랐다.
“말이 됩니까?” 민재가 물었다. “논문 심사라면 떨어질 겁니다.” 내가 답했다. “하지만 벽이 움직이는 걸 봤으니 증거를 외면할 수도 없죠.” 우리 직업이 이상할수록 기록을 정확히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도원으로 돌아온 저녁, 저장 서버는 임시 조치를 실패라고 평가했다. `[공동 귀환 효율: 0%]`. 하지만 실제로 집에 돌아간 사람 수는 세 명 늘었고, 물리적인 고립자는 없었다. 나는 효율 그래프 위에 '사람은 효율 수치가 아니다'라고 적지는 않았다. 그 대신 사실만 썼다. '고태진 귀가 확인. 금융센터·안내소 위험 구간 현장 제한. 독립 신고선 정상. 자동 중첩 재현 기능 중지.'
태진은 구조대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배송 회사에도 연락했다. 물건을 제시간에 보내지 못했다고 혼날까 걱정된다고 했다. 정우찬은 실제 위험 구역의 출입 제한 기록을 보관해 주었다. “이런 일로 벌점이 생기면 어쩌죠?” 태진이 물었다. 나는 그의 회사 인사권자가 아니어서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대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 확인서가 필요하면 현장 기록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후 그가 말했다. “그럼 오늘은 늦게 들어가도 아이한테 거짓말 안 해도 되겠네요.”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시스템이 놓친 것은 대피 완료 시각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저녁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정하경에게서 허가된 범위의 새 자료가 도착했다. 오래된 도면 오른쪽 위에 짧은 경고가 적혀 있었다. `[019 실물 보존 장치의 두 판은 같은 순간에 작동시키지 말 것]`. 그 아래에는 개발자가 남긴 낙서 같은 문장이 있었다. '한쪽은 이미 일어난 일, 다른 한쪽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일.'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오래도록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가 마주한 괴상한 복도는 두 건물을 하나로 합친 것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미 끝난 대피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대피를 같은 순간이라고 우긴 결과.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명령은 문을 여는 명령도 닫는 명령도 아닐 것이다.
`[미확인 귀환을 완료로 보정]`.
그 버튼이 아직 도원 서버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제10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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