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온은 왕자다. 적어도 그가 말하고 우리가 확인한 루메르의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흰 별 계단의 관리 문 앞에서는 왕자도 일반 방문객이었다. 문지기는 그의 검보다 내 가죽 주머니에 든 통행증을 더 오래 살폈다. 우리는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세상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왕실 문장이 있는 기록은 특별 열람 대상입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그럼 왕자가 직접 와도 안 됩니까?” 키오가 물었다.
“왕자가 기록의 소유자라는 증거가 없으니까요.”
테온이 내게 속삭였다. “여기선 네가 나보다 왕족 같군.”
“제가 특권을 얻는 순간부터 세상이 더 나빠질 겁니다.”
문 앞에는 회색 외투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관측원의 장부를 관리했다며 자신을 검증 책임자 벨로크라고 소개했다. 장갑의 손등에는 네 갈래 눈금이 수놓아져 있었다. 마르첸의 금색 측량판에서 떨어진 부품과 비슷한 무늬였다.
“에르안의 귀환 기록을 다시 확인하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벨로크가 말했다. “하지만 그 기록은 이미 완료됐습니다. 완료된 조사를 다시 열면 이곳으로 통행하는 모든 사람의 자격이 흔들릴 수 있어요.”
나는 손가락으로 어제 탁본한 비어 있는 귀환 칸을 가리켰다.
“이미 끝났다는 기록과 실제로 돌아온 사람은 다릅니다. 두 개가 일치하는지 확인하자는 겁니다.”
벨로크는 나보다 테온을 바라봤다. “왕실의 협조가 있으면 간단합니다. 마지막 관측과 귀환 여부를 왕실 승인으로 대체하면 됩니다.”
테온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래전 루메르의 항로를 왕국의 소유로 다시 돌려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오자 그는 잠깐 침묵했다. 나는 그 침묵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잃은 나라를 생각하면 그런 유혹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동의하면 무엇을 얻습니까?” 테온이 물었다.
“루메르 북쪽 관측항을 왕실 관리 구역으로 인정받으실 겁니다. 왕국의 귀환 절차도 정상화할 수 있죠.”
“그 대가로는요?”
“미확인 자료를 하나의 완료 건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테온은 서류를 받아 들었다. 나는 그가 첫 장의 빈 동그라미와 세 번째 장의 서명란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이 서류에는 귀환하지 않은 사람도 포함됩니까?”
벨로크가 대답을 미뤘다. “행정상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왕실의 대표 권한으로….”
테온은 서류를 돌려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표가 될 자격이 없겠군요. 내가 지킬 왕국은 아무나 대신 완료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벨로크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우리가 문을 통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설은 관측원 규정집을 꺼내 들었다. 규정집에는 ‘기록 검증을 위한 안전 접근은 완료 여부와 별개로 허용한다’는 오래된 조항이 있었다. 벨로크는 최근 개정 규칙을 꺼내 그 조항이 삭제됐다고 말했다.
나는 두 문서의 날짜를 나란히 적었다. 신기하게도 개정 규칙의 작성일은 원래 규정이 발효되기 전이었다. 과거의 시간을 미래의 장부에서 가져다 붙인 셈이었다.
“이상하군요.” 내가 말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새 규칙이 옛 규칙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혹시 그 사이에 생일잔치라도 했습니까?”
미라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벨로크는 웃지 않았다. 그는 경비들에게 문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위쪽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무작정 문을 부수지 않았다. 대신 이설이 알려 준 공개 관측 데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계단을 직접 걸어 돌아온 사람들의 작은 석패가 줄지어 있었다. 각 석패에는 날짜와 동행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에르안의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데크 끝에는 노후한 천막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천막 아래의 돌판이 떨렸다. 키오가 천막에서 떨어진 작은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 아래에 기름 먹은 끈과 젖은 장부가 보였다. 누군가 사람들의 실제 귀환 표를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숨겨 놓은 듯했다.
미라는 장부를 들어 올리기 전에 이설에게 보여 주었다. 소유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으므로 현장 기록을 남기자는 뜻이었다. 장부 첫 장에는 ‘왕실 승인 없이도 돌아온 사람을 확인한다’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아래에는 오래된 목수들의 이름이 있었다. 그들은 계단의 기둥을 고치고, 직접 지나간 길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준 사람들이었다.
천막 아래 장부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메모가 가득했다. 목수 다섯 명이 새긴 수리 날짜, 바닷물이 계단에 닿았던 높이, 겨울에 얼음이 생기는 단의 번호. 어느 페이지에도 왕실의 허가를 받았다는 말은 없었다. 그들은 그냥 자신이 밟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테온이 한 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루메르에서 온 사람들이 북쪽 관측항에 피난해 처음 지낸 밤이 적혀 있었다. 왕실의 배가 아니라 낡은 어선으로 도착했다고 했다. 테온은 그런 일은 왕실 연대기에 없었다고 중얼거렸다.
“왕국은 왕궁만 기록했을 수도 있겠죠.” 내가 말했다.
“그때 우리는 모두를 구했다고 배웠네.”
미라가 짧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누가 그 말에 빠졌는지 찾아보면 돼.”
테온은 눈을 감았다. 한 왕국의 마지막 왕자로 살아가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날 장부를 접으며 남긴 표정은 알 것 같았다. 잃어버린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나라의 기록에 없던 사람들의 이름도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이설은 안전 표찰을 추가할 때 왕실 문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문장을 붙이면 누군가는 다시 왕실이 길을 소유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대신 목수들의 실명과 실제 수리 날짜를 적은 표찰을 만드는 데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그때 산허리에서 종이 두 번 울렸다. 우리에게 앞서 내려간 사람이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였다. 천막을 걷고 계단 아래를 바라보니 견습생 연두와 달온이 수리용 목재를 옮기던 중 돌바닥이 꺼졌다. 벨로크가 지키라고 명령한 문 위쪽에서 위험한 흰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테온이 먼저 줄을 묶었다. 미라는 아래쪽 안전계단으로 내려가 목재를 치웠다. 나는 어제 확인했던 일곱 단의 위치를 손바닥만 한 종이에 옮겨 경비병에게 건넸다.
“문을 지키고 싶으면 이 길부터 지키세요. 진짜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경비병 둘이 머뭇거리다가 우리를 도왔다. 연두는 무사히 올라왔고 달온은 발목을 다쳤지만 의식이 있었다. 벨로크가 돌아왔을 때 그는 우리의 행동을 무단 출입이라고 주장했다.
테온이 대답했다. “문은 당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돌이 무너지는 동안 기다릴 권리까지 당신에게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고를 정식으로 보고했다. 현장을 떠나려던 경비병 하나가 내게 몰래 작은 쪽지를 건넸다. 벨로크가 출입문을 닫는 날마다 위층 관측 기록에 ‘왕실 입회 완료’라는 도장이 찍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왕실에서 온 사람은 없었다.
그날 밤 테온은 자신의 왕관을 꺼내 오래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왜 여전히 왕관을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언젠가 이것을 돌려놓을 곳을 찾고 싶어서.”
“그곳이 왕궁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그는 왕관을 상자에 넣었다. 별가루 지도에 오늘 구조한 두 사람의 이동 경로가 선명해졌다. 완료된 왕실 기록은 여전히 검게 남아 있었다. 문이 닫혀도 우리가 실제로 다녀온 길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일은 문을 열기 위한 허가증보다, 그 문 안에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사람의 증언을 찾아야 했다.
제9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