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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91화
PAYLUA ORIGINAL · 제91화

제91화 - 흰 별 계단의 첫 번째 발자국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729자

오프라인 책장
세상에는 내려갈수록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푸른 유리 만의 북쪽 관측항에서 처음 배웠다. 누군가 이런 설명을 들려주면 대개는 술집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시는 헤론이었다는 점이다. “계단의 높이와 관측자의 높이가 다른 날짜에 속하면 이런 현상이 생길 수 있네.” “좀 더 이해하기 쉽게요.” “발을 헛디디면 죽을 수 있다는 뜻이네.” “처음부터 그 말만 하셨어도 됐잖아요.” 미라는 갑판에서 밧줄을 감았다. ‘어제의 파도’는 북쪽 관측항의 오래된 방파제에 정박해 있었다. 도겸이 전해 준 조수표에는 오늘 아침부터 북쪽 바다에 두 번째 물길이 생긴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현지의 어부들은 두 번째 물길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수면 아래 흰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리는 모습뿐이었다. 그 기둥이 흰 별 계단의 시작이었다. 사나가 세 장의 오래된 판을 가죽끈으로 묶어 내게 건넸다. 첫 판에는 밟은 땅, 둘째 판에는 돌아온 날, 셋째 판에는 돌아오지 못한 자리를 비워 둘 것. 나는 이미 수십 번 읽었지만 마지막 문장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원본은 채석장에 남겨 두고 모사본만 가져가겠다고 약속했죠.” 사나가 말했다. “압니다. 여기 있는 건 사나 씨가 직접 허락한 탁본뿐입니다.” “계단을 찾더라도 모든 길을 공개하지 마세요. 누군가 그 길을 아직 사용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를 판다는 행위와 길을 알려 준다는 행위가 언제나 같은 뜻인 것은 아니었다. 아린은 육지에 남기로 했다. 무월항에서 건너온 편지 일곱 통의 수신처를 계속 조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라가 그녀와 세 번 짧게, 두 번 길게 종을 울리며 인사했다. 그 소리가 끝날 즈음 북쪽 절벽에서 정확히 같은 박자가 돌아왔다. “동생일 수도 있나요?” 키오가 속삭였다. 미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신호를 아는 사람이란 뜻이지. 그 이상은 아직 몰라.” 우리는 작은 보트로 흰 기둥 가까이 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수면에 비친 기둥이 아니라 실제 돌계단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첫 단에는 낡은 신발자국 하나가 깊게 패여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최근에 생긴 칼자국 같은 흠집이 있었다. 나는 자로 발자국의 길이를 재고 헤론은 돌에 쌓인 소금층을 살폈다. 테온은 검을 뽑으려다 손을 멈췄다. 누군가 쓰던 길의 입구에서 먼저 검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계단은 모두 몇 개인가요?” 키오가 물었다. “일단 보이는 건 열두 단.” “그럼 열세 번째는요?”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열두 번째 단 다음에는 하얀 허공이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닿자 그 빈 공간에 물기가 앉으며 발자국 모양이 잠깐 떠올랐다. 미라가 먼저 건너려 하자 나는 팔을 뻗어 말렸다. “직접 밟은 사람이 돌아왔다는 기록이 필요해요. 허공에 발자국이 보인다고 바닥이 있는 건 아닙니다.” “네가 말을 잘해서 좋을 때도 있네.” “방금 칭찬하신 건가요?” “계속 그 말만 해.” 그때 계단 꼭대기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아래로 희고 긴 머리끈이 날아왔다. 머리끈 끝에는 구리표가 매달려 있었다. 표에는 ‘흰 별 계단 관측원, 귀환 대조 2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는 오늘 날짜가 아니라 사흘 뒤의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구리표를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가지고 온 방수판 위에 놓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스케치를 했다. 테온이 표를 만져 보고 싶어 했지만, 손끝이 닿기 전에 미라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혹시 표를 만지면 출입한 것으로 기록되는 거 아냐?” 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네.” 그전에 바닷가의 작은 창고에서 계단 통행자의 기록을 확인했다. 창고지기는 젊은 어부 하온이었다. 그는 분명 어젯밤 이 계단을 따라 내려온 사람을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사람 전체가 아니라 무릎 아래의 부츠와 바닥에 떨어진 젖은 종이뿐이었다. 나는 ‘사람 목격’이라는 말 대신 ‘부츠와 종이 목격’이라고 고쳐 적었다. 하온은 처음엔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사람이 두 발로 걸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이름은 모르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손님은 지도에 뭘 그릴 수 있는데요?” “그 부츠가 찍은 자국이 남은 돌바닥이요. 사람은 나중에 만나서 물어보죠.” 하온은 낡은 방수천을 꺼내 우리가 가져온 지도에 덮어 주었다. 해협의 조수는 종소리가 들린 뒤 갑자기 바뀌곤 한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 현상을 ‘별의 숨’이라 불렀지만, 하온은 그냥 ‘계산을 어렵게 만드는 물’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그 편이 훨씬 실용적인 이름이라 생각했다. 하온과 함께 계단 가장자리의 흔적을 재는 동안 반대쪽 바위에서 물새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아래에는 옛 측량표를 박아 두었던 구멍이 있었다. 누군가 금속판을 최근에 빼내 간 흔적이었다. 헤론은 도구 자국의 방향을 그려 놓았다. 이설을 만나면 이 구멍의 용도를 물어보기로 했다. 확인한 것과 아직 물어야 할 것이 점점 늘어났다. 지도 제작자의 주머니가 무거워지는 이유는 돌멩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돌계단 아래쪽에 밧줄을 묶었다. 키오는 안전한 땅에 남아 어부들과 신호를 주고받았고, 나는 미라와 테온, 헤론을 따라 첫 단에 발을 디뎠다. 돌은 차가웠다. 다음 단도 그랬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발밑에 돌이 있었다. 일곱 번째 단에서 바람이 뒤집혔다. 발밑의 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메마른 산골짜기가 나타났다. 바위에는 별 모양의 흰 꽃들이 피어 있었고, 꽃잎마다 얇은 얼음이 맺혀 있었다. 나는 계단을 되돌아봤다. 아래에는 여전히 북쪽 관측항이 보였다. 다만 항구의 등대 지붕은 붉은색이었다. 우리가 출발할 때는 푸른색이었는데. “누가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까?” 목소리는 위에서 들려왔다. 남색 외투를 입은 여자가 열한 번째 단 뒤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바늘 없는 나침반, 다른 손에는 작은 흰색 깃발을 들고 있었다. “지도 제작자 레이븐입니다.” “그건 이름이지, 내가 물은 답이 아닙니다. 지금 누구의 발자국을 따라오고 있죠?”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첫 단의 신발자국, 사흘 뒤 날짜가 새겨진 구리표, 갑자기 달라진 등대의 색깔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아직 모릅니다. 우리가 직접 밟은 일곱 단만 확인했습니다.” 여자가 깃발을 내렸다. “그럼 들어올 수 있어요. 다만 처음부터 완성된 길을 요구하는 사람이라면 돌아가세요.” 그녀의 이름은 이설이었다. 북쪽 관측원의 계단지기라고 했다. 이설은 열두 번째 단 위의 허공을 가리켰다. 우리가 아까 발견한 머리끈과 똑같은 흰 끈이 돌 난간에 매여 있었다. “지난밤 첫 관측자 이름으로 귀환증이 발급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돌아온 적이 없어요.” “얼마나 오래 전에 사라졌는데요?” “첫 낙성일이 정해지기도 전부터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지도통 속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별가루 지도에 새로운 잉크가 번졌다. [흰 별 계단 — 첫 관측자의 귀환 경로 재검증 필요] 그 밑의 줄은 하얀 채로 남았다. 나는 빈칸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를 썼다. ‘현재 확인한 발걸음: 일곱. 그보다 위는 미확인.’ 이설은 그 문장을 보고 처음으로 웃었다. “좋아요. 여기선 그런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녀가 서 있던 열한 번째 단 위에서 물방울 한 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다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서 멈춘 뒤, 발자국 모양으로 퍼졌다. 마치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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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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