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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89화
PAYLUA ORIGINAL · 제89화

제89화 - 그림자가 닻을 내리는 곳

별가루 지도 제작자 · 4,304자

오프라인 책장
돛대의 그림자는 대개 바람과 햇빛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푸른 유리 만의 서쪽 끝에서는 그림자가 먼저 움직였다. 배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림자가 바다 밑으로 길게 뻗고, 뒤늦게 배가 그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이것이 운명이라는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 무조건 돛을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했다. 항해는 시에 맡기면 안 된다. 미라가 편지에 적힌 '그림자가 닻을 내리는 곳'을 확인하겠다고 했을 때, 렌토는 손사래를 쳤다. “거긴 깊이를 잴 수가 없어. 바닥이 두 개인데 어느 쪽이 지금 것인지 몰라.” “그럼 일단 측정할 수 있는 가장자리까지 가죠.” 내가 대답했다. “그 안에서 금색 판을 쓴 놈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도 있어.” “그 말을 들으니 더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해야겠네요.” 렌토는 결국 구조선을 빌려주었다. 미라는 '어제의 파도'를 얕은 물에 묶어 두고 작은 보트를 택했다. 아린과 이솔은 관측항에 남아 등불을 지키기로 했다. 테온, 헤론, 키오가 우리와 함께 탔다. 사나는 채석장에서 가져온 유리 가루의 성질을 설명해 주었다. 가루가 일정 각도의 빛을 받으면 과거에 반사했던 색을 다시 나타내는 현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저 그림자는 단순한 마법이 아닐 수도 있네요.” 내가 말했다. “마법이라고 부르면 편하겠지요. 그래도 배를 좌초시키는 데 필요한 건 물과 돌이에요.” 사나가 답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좋아했다. 세상이 기묘하다고 배 밑의 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납추를 네 방향에 던져 각각의 길이를 적었다. 왼쪽은 깊었고 오른쪽은 얕았다. 그런데 보트 아래에서 늘어나는 검은 그림자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의 얕은 곳으로 향했다. 방향이 맞지 않았다. 헤론은 납추의 실제 무게가 달라지는지까지 확인했다. 빛의 그림자와 수심은 서로 다른 현상일 수 있었다. “그림자가 닻을 내리는 곳이라는 말이 실제 배의 닻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 헤론이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관측의 기준점.” 그 말이 끝나자 수면 위에 둥근 검은 부분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구름 그림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하늘에는 구름이 없었다. 검은 원 안으로 작은 돌조각을 던져 보니 물이 튀었다. 검은 원도 실제 수면 위에 있었다. 다만 빛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였다. 나는 지도를 펼쳤다. 빈 원과 같은 크기의 과거 항로 표식이 지도 아래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현재의 길이 아니라 열두 해 전 실제로 관측됐던 기준점의 흔적이었다. 미라가 조심스럽게 노를 저었다. “저기 가까이 가 볼게.” “바닥부터 보세요.” “그래서 너한테 계속 재라고 하는 거야.” 우리는 원을 따라 천천히 돌았다. 절반을 지나자 보트가 가볍게 튀었다. 물 아래 돌턱이 있었다. 긴 장대를 내리자 돌턱 위로 낡은 쇠고리가 드러났다. 고리에는 배의 닻이 아니라 작은 관측추를 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헤론이 두꺼운 줄을 풀어 납추 하나를 걸어 보았다. 줄이 팽팽해지자 검은 원의 가장자리에 일곱 개의 점이 나타났다. “정말 일곱이네.” 키오가 말했다. “그 일곱이 사람인지 관측값인지는 아직 몰라.” 나는 대답했다. 그때 바다 건너편에서 금색 불꽃이 솟았다. 우리가 지나온 항구 입구에 새로운 부선이 나타났다. 마르첸은 아니었지만 같은 상회 깃발을 달고 있었다. 부선의 난간에는 커다란 금색 판이 고정돼 있었다. 우리가 난파선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컸다. “무월항 때보다 큰 장치를 가져왔군.” 테온이 말했다. “돈이 많으면 문제의 크기도 키울 수 있나 봅니다.” 내가 중얼거렸다. 부선에서 확성관을 든 남자가 외쳤다. 자신은 백동상회의 새 현장대리인 베르크라고 했다. 바닷길은 이미 공인된 귀항일로 정리돼 있으니 우리의 독립 측량을 중단하라는 명령이었다. “어느 날의 귀항입니까?” 내가 되물었다. “제일 오래된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그 기록을 누가 직접 확인했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금색 판을 돌렸다. 검은 원 주변의 일곱 점이 동시에 밝아졌다. 바다 밑에서 숨은 물결이 솟더니 우리 보트가 오른쪽으로 밀렸다. 렌토가 소리쳤다. “저쪽은 돌턱이야!” 미라는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젓고 테온은 고리를 풀려 했지만 장대가 돌 사이에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헤론의 관측추까지 같이 당겨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지도를 펼쳐 안전한 길을 그리려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 아무 선도 없었다. 지금 우리가 직접 확인한 길은 검은 원의 바깥쪽뿐이었다. “왼편으로 돌아요!” 내가 외쳤다. “우리가 조금 전 지나온 길만 있습니다!” 미라가 노를 꺾었다. 렌토가 구조선에서 안전줄을 던졌고 테온은 고리에 걸린 납추를 포기했다. 우리는 확인된 수로를 거슬러 나왔다. 보트 밑이 한 번 돌에 부딪혀 균열이 생겼지만 당장 가라앉지는 않았다. 베르크는 다시 금색 판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부선의 앞쪽에서 먼저 비명이 났다. 판이 만들어 낸 밝은 점을 따라 움직이던 상회의 작은 운반선이 돌턱에 걸린 것이다. 선원 둘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구해야 해!” 미라가 소리쳤다. “저들이 우리를 밀어 넣었는데요!” 키오가 외쳤다. “그래서? 물이 계약서를 읽어 주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미라는 이미 구조선을 그쪽으로 몰고 있었다. 우리가 확인한 왼쪽 수로는 운반선의 뱃머리 가까이 이어져 있었다. 렌토가 부표를 던지고 테온이 물에 빠진 선원을 끌어올렸다. 두 번째 선원은 판에서 나온 빛을 손으로 쫓다가 더 깊이 밀려났다. 미라가 그에게 갈고리를 던져 붙잡았다. 베르크는 여전히 판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기계를 멈추면 상회가 자신의 모든 책임을 물을 거라고 외쳤다. 미라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이 기계가 책임을 줄여 주는 것 같습니까? 지금 선원 둘이 빠졌는데요!” 그가 잠시 망설였다. 바로 그 틈에 헤론이 판의 뒤쪽 축을 가리켰다. 네 갈래 눈금이 달린 톱니 하나가 빠지면 푸른 빛의 방향이 풀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계를 망가뜨리는 순간 돌턱의 실제 위치가 가려질 위험도 있었다. “그럼 끄는 순서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상회 부선에 직접 올라가 두 개의 조절 레버를 찾아냈다. 첫 레버는 빛을 돌리는 장치, 둘째는 바닷물을 강제로 움직이는 펌프와 연결돼 있었다. 나는 판의 빛만 먼저 약하게 하고, 렌토가 실제 수위를 확인할 때까지 펌프를 천천히 줄이도록 했다. 어느 단계에서도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베르크는 입술을 깨물며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선원들이 안전해진 뒤 그는 내게 말했다. “당신들이 상회의 계약을 무너뜨렸소.” “계약이 물 위에 떠 있었다면 가라앉을 수도 있겠죠.” “상회가 가만있지 않을 거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구조선도 함께 보내 달라고 전해 주세요.” 미라는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 이번 항해의 위험 수당을 조금 기대했다. 물론 아무도 그런 돈을 줄 생각이 없었다. 빛이 사라지자 검은 원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물 아래 돌의 윤곽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낡은 고리에 '첫 손'을 뜻하는 오래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세 개의 작은 빈 홈이 있었고, 채석장에서 본 세 판의 눈금과 크기가 같았다. “세 판을 가져와 맞춰야 하나 봅니다.” 키오가 말했다. “원본을 훔쳐 오자는 뜻이라면 안 돼.” 미라가 말했다. “모사본으로 먼저 치수를 확인합시다.” 내가 답했다. 헤론은 돌턱의 형태를 자세히 그렸다. 거기에는 지도의 시작을 표시하는 삼각형도, 최초 제작자의 이름도 없었다. 대신 오래된 글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첫 손은 길을 만든 손이 아니라, 길이 없음을 확인한 손이다.' 나는 그 문장이 참혹하고도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느꼈다. 아직 누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쓰는 손. 없는 길을 있다고 속이지 않는 손. 그게 어쩌면 이 세상 첫 지도 제작자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지 몰랐다. 해가 질 무렵 바닷물이 잠잠해졌다. 우리는 검은 원의 정확한 위치를 두 개의 부표와 육지의 등불로 대조했다. 오늘 확인된 위치만 그렸다. 지도 끝에는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빛이 하나 생겼다. 그 빛은 만의 가장 깊은 곳이 아니라 북쪽, 별이 떨어진다고 예고된 하늘의 금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게 마지막 별의 그림자일까요?” 키오가 물었다. “그림자의 흔적 중 하나일 수는 있겠지.” 헤론이 말했다. 미라는 손목의 매듭을 꽉 묶었다. “그럼 내일 그 흔적을 더 확인하자.” 나는 네 갈래 눈금이 달린 작은 쇳조각을 지도 옆에 놓았다. 아직 완전히 연결할 수 없는 사실들이 조금씩 같은 장소에 모이고 있었다. 그것은 답이 가까워진다는 뜻일 수도, 더 큰 질문에 도착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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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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