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미라는 처음으로 항해일지를 펼치지 않았다.
그녀는 선실 창문 앞에 앉아 르카가 건네준 철판과 붉은 실의 매듭을 나란히 놓았다. 두 물건은 분명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철판에는 물이 오랫동안 스민 흔적이 있었고 실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색이 거의 바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미라가 말했다.
“저도요.”
“너는 항상 말이 많잖아.”
“그게 적절한 말을 안다는 뜻은 아니어서요.”
그녀가 짧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지도를 만지작거렸다.
우리가 조사할 곳은 북쪽 관측항의 기록 보관실이었다. 오래전 항로에 있던 첫 불빛을 확인하라는 문장이 그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르카의 난파선에서 보았던 검은 그림자가 실제 건물의 흔적인지는 아직 몰랐다. 먼저 새론과 아린에게 옛날 관측항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린은 두 항구가 한때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바다 위 선착장이 무너질 때 북쪽 관측항이 대신 귀항 확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북쪽 관측항의 발송물이 모두 푸른 유리 만으로 귀항한 것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두 항구는 실제로 다른 날짜에 존재했던 기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름을 하나로 만들면 서류는 편해지지요.” 헤론이 말했다.
“사람들은요?” 내가 물었다.
“그 질문은 대체로 예산표 밖에 있네.”
우리는 렌토의 안내를 받아 난파선 무덤을 가로지르는 짧은 경로를 택했다. 길의 절반은 어제 직접 확인했고, 나머지는 렌토가 오늘 아침 본 유리 여울을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확인한 곳에만 잉크를 그었다. 미라는 일부러 내 지도를 빼앗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나를 대신해 빨리 길을 찾아 나섰을 텐데, 오늘은 한 번씩 멈춰 내 기록을 기다렸다.
북쪽 관측항은 바닷물이 거의 닿지 않는 높은 바위 위에 있었다. 지붕은 부서졌지만 두꺼운 문은 잠겨 있었다. 문 위에 달린 등불 하나가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아린이 건네준 등대 그림과 위치가 맞았다. 헤론은 등불의 심지와 오래된 기름통을 조사했다. 불이 최근에도 계속 보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군가 여기 옵니다.” 내가 말했다.
미라가 한쪽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대신 안쪽에서 느릿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테온이 문을 억지로 부수려 했으나 미라가 그를 말렸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침입자가 될 수도 있었다.
“구조하러 왔습니다. 문을 여실 수 있습니까?” 미라가 소리쳤다.
잠시 뒤 문틈으로 지팡이 하나가 나왔다. 노인이 작은 걸쇠를 들어 올렸다. 그는 자신을 이솔이라고 소개했다. 관측항의 마지막 등불지기였다. 걸음이 불편해 직접 바다로 내려갈 수는 없다고 했다.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왔는데요.” 내가 말했다.
“그러면 제대로 온 셈이지.” 이솔이 답했다.
노인은 우리를 좁은 방으로 안내했다. 책장에는 날짜별 항로 기록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중간중간 빈 칸이 컸다. 보존 장부의 제목은 '귀항되지 않은 편지의 보관'이었다. 그중 한 칸에 아린이 건네준 매듭과 똑같은 모양의 얇은 종이띠가 끼워져 있었다.
미라는 종이를 바로 꺼내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낸 겁니까?”
이솔은 종이띠에 적힌 표식을 보았다. “이건 누가 보냈는지보다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가 적힌 종이야. 발송 기록이 함께 있어.”
그는 보존함을 열어 봉투 하나를 보여 주었다. 표면에는 특정 이름이 아니라 '세 번 감긴 매듭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손으로 쓴 글씨는 여러 번 물에 젖었다 말라 흐릿해져 있었다. 붉은 실의 매듭은 봉투 옆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미라는 한참 동안 봉투를 바라보았다. “제가 열어도 될까요?”
“받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건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이솔이 대답했다. “다만 봉투는 보존자가 지킨 것이니, 본래의 접수기록도 함께 읽어야 해.”
나는 보존 일지에서 봉투가 옮겨진 날짜를 읽었다. 첫 접수는 미라 동생이 실종됐다는 날짜보다 하루 앞섰다. 두 번째 이동은 무월항의 저층 부두가 잠긴 날, 세 번째는 북쪽 관측항이 폐쇄된 직후였다. 어느 것도 지금의 발송자가 생존해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미라가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는 짧은 편지가 있었다.
'누나가 이 매듭을 알아보면 내가 배운 길이 아직 남았다는 뜻일 거야. 무월항의 귀항종이 세 번 울리면 두 번 대답해.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죽었다고 쓰지는 말아 줘. 나는 푸른 유리 만의 북쪽 불빛을 확인하러 간다. 내가 못 돌아오면 기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나 대신 귀항했다고 적지는 말고.'
미라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편지를 한 번 읽고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첫 문장의 '누나'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매듭보다 훨씬 직접적인 증거였다. 그래도 필체와 발송 경로가 맞는지는 대조해야 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우리가 대신 확인해 줄 수 있었지만, 편지를 읽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이 글씨는…” 미라가 말했다.
아린이 내 곁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미라는 나를 바라봤다.
“내가 알던 글씨야. 어린애처럼 'ㄴ'을 거꾸로 기울여 쓰는 버릇까지.”
나는 그 말을 일지에 기록했다. '미라의 필체 대조 진술. 직접 확인한 편지 원본 존재.' 그것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솔은 이 편지가 북쪽 관측항으로 온 뒤 다른 물건과 함께 보관됐다고 했다. 작은 쇠상자였다. 상자에는 루메르 선박들이 사용하던 오래된 비상신호 장치가 들어 있었다. 테온이 장치를 살펴보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루메르의 해상 경계대에서 쓰던 음향판이오.”
“누르면 소리가 나나요?” 키오가 물었다.
“정해진 음을 보내긴 하지. 하지만 기록을 재생하는 장치는 아니네.”
장치의 옆면에는 다섯 개의 홈이 있었다. 세 번 짧은 울림과 두 번 긴 응답을 만드는 형태였다. 미라가 어릴 때 동생과 썼던 비밀 신호가 사실은 여러 항해사가 공유하던 구조 신호였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 애가 혼자 만든 게 아니었네요.” 미라가 말했다.
“같이 배운 걸 자기 식으로 쓴 거겠지.” 이솔이 답했다. “신호는 혼자만 알아들을 수 있으면 쓸모가 없으니까.”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지도도 비슷했다. 그린 사람만 알아볼 수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그 말 때문에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솔의 허락을 받아 봉투와 음향판을 관측실의 큰 탁자 위에 놓고 모사했다.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등대의 오래된 배터리가 과열되며 유리관 하나가 터진 것이다. 이솔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지만 다리가 불편해 넘어졌다.
“불부터 끄세요!” 미라가 외쳤다.
테온이 이솔을 부축해 문밖으로 옮겼다. 나는 기름통이 불꽃에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식은땀이 났다. 헤론은 물을 붓지 말고 모래주머니를 쓰라고 소리쳤다. 푸른 가루와 물이 닿으면 열이 더 올라갈 수 있었다. 키오와 나는 모래자루를 옮겨 유리관의 불꽃을 덮었다. 미라는 창문을 열어 연기를 빼냈다.
불이 꺼진 뒤 확인하니 봉투는 안전했지만 낡은 배터리는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북쪽 관측항의 마지막 불빛이 꺼질 상황이었다. 이솔은 조용히 빈 등잔을 만졌다.
“이 불이 꺼지면 바깥의 배들은 관측항이 사라진 줄 알겠지.”
나는 원래의 장치를 억지로 살리자고 하지 않았다. 미라는 렌토에게 작은 등잔과 여분의 기름을 가져오게 했다. 우리는 현재 사람이 지키는 등불을 하나 더 켜고, 고장 난 기계의 옛 신호와 구분할 수 있도록 불빛 높이를 바꿨다. 이솔은 그 차이를 항구 사무소에 알리는 짧은 보고서를 썼다.
해 질 무렵 미라는 혼자 부두 끝에 서 있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다가 그녀가 먼저 손짓했을 때 다가갔다.
“찾은 게 있네.” 그녀가 말했다.
“네.”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니고.”
“그렇죠.”
“그래도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왜 돌아온 척해 주길 바라지 않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
나는 대답 대신 바다를 바라봤다. 잔잔한 푸른 물 아래에는 오래된 배들의 그림자가 서로 겹쳐 있었다.
미라는 편지의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원래는 번져서 알아볼 수 없던 글씨가 등잔의 옆빛을 받자 조금 더 선명해졌다.
'첫 손의 자리를 찾으려면 돛이 아닌 그림자가 닻을 내리는 곳으로.'
그 문장은 무월항 지도통의 예언과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헤론이 멀리 선박 무덤 너머를 가리켰다. 해가 저무는데도 파란 물속 한 곳에는 검은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어떤 돛대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가 그림자의 닻자리일 수 있겠군.” 헤론이 말했다.
나는 그 지점을 지도에 빈 동그라미로만 표시했다. 이번에는 미라가 그 위에 작은 글씨를 적었다.
'직접 확인할 것.'
그 글씨는 동생의 편지와 달랐지만,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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