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첸은 아주 정중하게 우리를 협박했다.
그의 말투에는 나쁜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고객, 협조, 안전, 공동의 이익. 듣고 있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반성하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내민 계약서에는 더 기막힌 문장이 있었다.
'귀항일의 통일에 동의하지 않는 선박은 실종 위험에 관한 책임을 스스로 부담한다.'
“멋진 제안이군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동의하면 어떤 책임을 지십니까?”
“상회가 귀항을 보장합니다.”
“배가 실제로 돌아오지 않아도?”
마르첸의 미소가 조금 작아졌다. “계약상 귀항은 완료됩니다.”
“그럼 계약서는 배를 타고 돌아오고, 승객은 바다에 남는군요.”
미라가 내 등을 한 번 쳤다. 아주 드물게 내 말이 마음에 들었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 번 쳤다. 나는 아직 안전한 편이었다.
마르첸은 편지 일곱 통의 보관인인 라온에게 금화가 가득 든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라온은 봉투를 꼭 붙들고 고개를 저었다. 상인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들고 온 금색 측량판을 난간 위에 고정했다.
판 위에서 일곱 점이 번쩍였다. 그 순간 물 위에 우리 배의 그림자가 둘 생겼다. 하나는 진짜 돛대의 방향을 따라 움직였고, 다른 하나는 바람 반대쪽으로 미끄러졌다. 뒤쪽 그림자의 돛 끝에는 우리가 달지 않은 붉은 천이 매달려 있었다.
“보셨죠?” 마르첸이 말했다. “제가 선택한 귀항 기준에서는 벌써 배가 돌아왔습니다.”
“귀항 기준이 그렇게 자유롭다면 배도 마음대로 휴가 가겠군요.” 내가 말했다.
헤론은 마르첸의 판에 새겨진 눈금이 실제 천체 각도와 다르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냈다. 판은 달의 위치가 아니라 오래된 관측대의 발표 시각에 맞춰져 있었다. 다른 날짜에 존재했던 배의 그림자를 현재 수면 위에 겹쳐 보여 주는 장치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림자는 다른 때의 관측을 보여 주는가?” 테온이 물었다.
“아마도. 하지만 그림자가 보인다고 그 배가 오늘도 있다고 확정할 수는 없네.” 헤론이 말했다.
나는 금색 측량판 아래에서 작은 틈을 발견했다. 틈으로 은색 가루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낙성재였다. 별가루 지도와 비슷한 반응을 일으키지만 방향을 강제로 고정시키는 금색 틀이 덧대어져 있었다.
“대체 무엇을 하는 물건입니까?” 내가 물었다.
마르첸은 담담하게 말했다. “잃어버린 항로를 하나의 기준으로 돌려놓는 장치입니다. 여러 장의 지도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지요.”
“여러 날이 하나의 날이 되는 건가요?”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세금도 한 번만 내면 효율적일 텐데요. 그건 왜 네 번 받습니까?”
그는 처음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바로 그때 라온이 소리를 질렀다. 상회선에서 뻗어 온 가느다란 쇠갈고리가 보관 상자의 고리에 걸려 있었다. 선원 둘이 밧줄을 당기자 상자가 난간 위로 끌려갔다. 미라가 칼집을 뽑아 밧줄을 눌렀다. 테온은 쇠갈고리가 라온의 손을 찢지 않도록 상자 뒤쪽에 팔을 넣었다.
“이게 협조 요청입니까?” 내가 외쳤다.
“회수 절차입니다.” 마르첸이 말했다. “보관 위험물을 방치할 수는 없어서요.”
“편지는 사람을 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죠.”
마르첸은 직접 칼을 뽑지 않았다. 대신 금색 판의 손잡이를 세 번째 눈금으로 돌렸다. 바닷물이 검게 변하더니 우리 앞에 얇은 그림자 돛대가 나타났다. 선체가 없는 그림자의 끝이 배의 키를 훑고 지나갔다.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는데도 나침반의 바늘이 갑자기 돌아갔다. 미라가 키를 반대로 잡아 겨우 항로를 유지했다.
헤론이 외쳤다. “저 장치가 우리 배 위치를 바꾼 게 아닐 수도 있어! 보이는 기준선을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 지금 눈이 속으면 바위에 부딪힌다는 거죠?” 미라가 되물었다.
“그렇지!”
“그럼 네가 쓸데없는 걸 만들었다고 해도 되겠네!”
우리 배는 조금씩 등대 쪽의 얕은 암초에 가까워졌다. 키오는 바닷속의 바위 위치를 재며 큰 소리로 숫자를 외쳤다. 나는 어젯밤 실제로 밟았던 부두 기둥과 돛대에서 내려뜨린 납추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별가루 지도는 지금 우리가 확인한 선만 희미하게 밝혔다. 그림자 돛대는 그 선 위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미라! 왼쪽 세 걸음, 그다음 밧줄 길이만큼 뒤로!”
“확인했어!”
마르첸이 다시 장치를 돌렸다. 갑판이 순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갈매기가 한 마리 날아오르며 고함을 질렀다. 녀석이 유네의 갈매기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 분노에 깊이 동의했다. 테온은 밧줄을 잡은 선원에게 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고, 그가 계속 당기자 칼끝으로 갈고리의 연결고리를 잘랐다. 상자는 갑판에 남았지만 라온의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생겼다.
“저 사람은 우리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테온이 말했다.
“그럼 바다를 보게 해 줘야지.” 미라가 답했다.
미라는 우리 선미에 묶어 둔 오래된 등대 부표를 풀었다. 부표는 오늘 실제로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서쪽으로 움직였다. 금색 판의 그림자는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두 움직임을 동시에 보았고, 헤론이 그 차이를 큰 소리로 읽었다. 금색 판에 표시된 '안전 항로'는 실제 부표가 떠내려가는 곳과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마르첸의 부선장이 먼저 눈치를 챘다. 그들의 선박도 금색 판을 따라 항해하다가 여울에 걸려 있었다. 눈앞의 그림자를 믿은 선원들이 거꾸로 닻줄을 당기고 있었다. 나는 해도 위에 확인된 수심을 크게 그려 그들 쪽으로 내밀었다.
“저쪽 아닙니다! 닻줄을 풀고 바깥쪽으로 도세요!”
부선장은 잠시 마르첸을 보았다. 마르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원은 결국 우리 쪽 지도를 보고 닻을 풀었다. 선체가 조금씩 깊은 물로 빠져나왔다.
마르첸은 금색 판을 껐지만 눈빛만은 차가웠다. “당신들 덕분에 항로의 소유권이 엉망이 되겠군요.”
“그건 좋네요.” 내가 말했다. “소유권이 아니라 길을 확인하러 왔거든요.”
“길을 확인하는 사람을 고용할 돈도 없는 주제에.”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합니다.”
마르첸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상회선은 깊은 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금색 측량판에서 조그만 쇳조각 하나가 떨어져 우리 갑판으로 굴러왔다. 손톱만 한 삼각형이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집어 빛에 비춰 봤다. 세 갈래가 아니라 네 갈래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헤론의 표정이 변했다. “이건 관측대를 만든 시기보다 오래된 눈금이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옛 루메르 지도에서 본 적 있어. 네 번째 자리는 지도에 그리지 않는 기준점이었어.”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검은 수면에서 두 번째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돛대가 아니라 긴 부두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물 위를 가로질러 저 멀리 어두운 수평선으로 뻗어 갔다. 그 끝에서 불빛이 세 번 깜박였다.
라온이 손목을 감싸 쥔 채 말했다. “무월항으로 편지를 보내던 옛 부두 신호예요.”
나는 새 지도를 펼쳤다. 그림자의 끝에는 아무 선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우리의 배가 안전하게 지나온 길 위에는 희미하게 은빛 눈금이 새겨졌다. 금색 판은 존재하지 않는 귀항을 완료 처리할 수 있었다. 별가루 지도는 우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남겼다.
나는 그 차이가 마음에 들었다. 미완료라는 말이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가장 정확한 기록이었다.
제7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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