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월항의 첫 번째 표지판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방식으로. 맑은 물속에 돌기둥 하나가 서 있었고, 돌기둥에 매달린 화살표는 위를 가리켰다. 뱃머리에서 내려다보면 화살표를 따라 가야 할 길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위로 항해할 수 있나요?” 키오가 물었다.
“저는 지도를 그리지 배를 날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라가 키를 잡으며 말했다. “그것도 아직 못 믿어. 네 지도에 날개 달린 배가 나타나면?”
“그때는 퇴직하겠습니다.”
“네가 퇴직하는 날엔 세상이 멀쩡해질 거야.”
그 말을 듣고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멀쩡해질 세상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보리의 섬에서 받은 나무판과 마도의 증언을 대조해 무월항의 북쪽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것은 항구가 아니라 가라앉은 시장이었다. 물속에는 간판이 기울어진 채 남아 있었고, 대문 앞에는 오래된 돌항아리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바다가 얕아지자 항아리의 윗부분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그곳에서 누군가 탁, 탁,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는 곧바로 배를 멈췄다. “저기 사람 있어.”
테온은 망설이지 않고 작은 보트를 준비했다. 우리는 돌항아리 옆으로 다가갔다. 물 위에는 얇은 판자 두 장이 떠 있었고 그 위에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여자는 손등이 까져 있었지만 의식이 또렷했다. 자신은 이곳의 우편 관리인이라고 밝혔다. 이름은 라온.
“배가 안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요?” 내가 물었다.
“어제 저녁부터요.”
헤론이 우리 달력을 알려 주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로는 마지막 배가 떠난 것이 사흘 전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날짜를 억지로 맞추지 않았다. 대신 손에 묻은 잉크와 옷에 젖은 소금의 상태를 보고 당장 마실 물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라온은 몸을 일으키면서 판자 아래의 나무상자를 가리켰다. 물이 불어나도 놓지 않았던 상자였다. 안에는 편지 일곱 통과 빈 주소표 하나가 있었다. 모두 다른 봉인이 찍혀 있었다. 한 통에는 루메르 보급선단의 도장이, 다른 한 통에는 아르켄의 오래된 왕실 문장이, 또 다른 봉투에는 여백의 항구 세 갈래 표식이 남아 있었다.
“수신인은?” 미라가 물었다.
“전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달 완료 처리를 안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라온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대개 확인도 안 한 채 완료 도장을 찍는 사람들이었다. 라온은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물속에서 갑자기 종소리가 났다. 무월항 수문이 열리는 시간이라며 라온이 얼굴을 찌푸렸다. 물의 방향이 바뀌면 시장의 남은 지붕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미라는 편지보다 먼저 사람을 태우라고 지시했다. 라온은 상자를 놓지 않으려 했지만 테온이 한 손으로 상자를 들어 보트에 올렸다.
“사람부터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요.” 내가 물었다.
“이분이 계속 붙들고 계셨잖나.” 테온이 답했다. “함께 가져갈 방법이 있으면 그걸 택해야지.”
나는 왕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전보다 훨씬 덜 명령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보트가 돌아오는 동안 바닷물이 빠르게 내려갔다. 지붕과 간판이 물 밖으로 솟았고, 순식간에 우리 주위에는 미끄러운 돌길이 나타났다. 그러나 물이 빠진 만큼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지붕에서 깨진 기왓장들이 떨어졌고 돌바닥의 틈으로 검은 바람이 솟았다. 미라는 수면이 남아 있는 좁은 길을 골라 노를 저었다. 내가 별가루 지도를 펼치자 우리가 건너온 수로만 짧게 빛났다.
“저쪽 골목으로 가면 빠르지 않을까요?” 키오가 배 위에서 외쳤다.
“직접 확인한 길이 아니야.” 미라가 대답했다. “우리가 온 길로 돌아간다.”
우리는 배에 돌아온 뒤 라온의 발을 치료하고 편지의 상태를 적었다. 그녀는 봉투를 뜯어 달라는 우리의 제안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권한은 봉투를 보존하는 데까지이지 내용을 대신 읽는 데 있지 않다고 했다.
그중 한 봉투의 겉면에 미라가 손끝으로 그리던 세 번 접힌 매듭이 있었다. 미라는 그 봉투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수신인 칸은 물에 젖어 있었지만 글씨 일부는 남아 있었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나의…….’
뒤의 글자는 지워져 있었다. 미라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이 편지는 누가 맡겼어요?”
라온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직접 받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보관하던 사람이 기록을 남겼지요. 항로 보존자 아린이라고.”
미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은 익숙했다. 아린이 편지를 썼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편지를 잃지 않게 보관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는 라온에게 옛 전달증을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편지 일곱 통을 받은 날짜와 당시 확인한 항구명을 적은 장부를 꺼냈다. 장부에는 무월항이 세 번이나 다른 곳에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장소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봉투를 놓아둔 서랍도 날마다 바뀌었다.
“서랍이 움직여요?” 키오가 물었다.
“서랍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날이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라온이 말했다. “어떤 날에는 편지가 젖은 채였고, 다음 날에는 마른 채였지요. 저는 둘 다 기록했어요.”
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같은 물건의 서로 다른 상태가 다른 날의 흔적처럼 겹칠 수 있겠군.”
“그럼 어느 편지가 진짜입니까?” 키오가 물었다.
“둘 다 실제로 관측한 상태일 수 있지. 다만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현재의 봉투는 하나씩 확인해야 해.”
우리가 일지를 정리하는 사이 누군가 먼 바다에서 신호탄을 쏘았다. 금색 불꽃이 안개 위로 솟았다. 백동상회가 소유한 대형 쇄빙선이었다. 이 해협에 얼음이 없다는 사실은 그 배를 만든 사람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나 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불필요한 장비에도 이름을 잘 붙인다.
상회선에서는 편지를 반환하라는 깃발을 올렸다. 라온은 그들의 구두 요구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상자의 보관 이력을 적은 사본을 미라와 헤론 앞에서 한 장 더 만들었다. 그녀가 왜 그토록 서두르는지 묻자 낮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싫어합니다. 항해권을 팔려면 모두 도착했다고 써야 하니까요.”
미라가 활짝 웃었다. 위험한 순간에만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럼 우리가 싫어할 일도 많겠네.”
밤이 되기 전, 상회선에서 작은 배가 내려왔다. 회색 코트를 입은 사내가 탔고, 모자 아래에서 금색 측량판이 번쩍였다. 그는 자기를 상회 항로 책임자 마르첸이라고 소개했다.
“편지를 안전하게 넘겨주시면 수고비를 드리겠습니다.”
“수신인에게 드려야지요.” 라온이 대답했다.
“수신인은 이미 이 항로의 계약에 따라 귀항 완료로 처리됐습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그럼 그분들 주소를 말해 보시죠.”
마르첸이 미소를 지었다. “문서상 주소는 모두 같습니다.”
“실제로도요?”
그는 대답 대신 물 위에 금색 측량판을 펼쳤다. 판에 표시된 일곱 점이 동시에 빛났다. 잠깐 동안 바다 위에 편지 일곱 통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물에 닿아 있지 않은 그림자들이 하나의 선으로 엮였다.
마르첸이 말했다.
“무월항에 들어온 것은 모두 하나의 날짜로 돌아갑니다. 계약에 따른 권리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사람을 찾으러 온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귀항일을 하나로 바꾸러 온 것이었다.
그 순간 라온이 내 손에 장부 사본을 쥐여 주었다. 마지막 쪽에는 작은 메모가 있었다.
‘돌아온 사람에게 편지를 전할 것. 귀항증을 산 사람에게 전하지 말 것.’
그 밑의 서명은 희미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린.
제7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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