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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75화
PAYLUA ORIGINAL · 제75화

제75화 - 루메르의 마지막 돛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93자

오프라인 책장
루메르의 마지막 돛을 보고 테온이 한 말은 뜻밖이었다. “저건 우리 배가 아니야.” 나는 벌써 왕자의 극적인 재회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왕국의 돛을 손에 쥐고 눈물을 흘리는 왕자. 그다음에 나오는 숨겨진 보물과 검은 망토의 기사들. 그런 걸 기대했던 내 마음은 아쉽게도 이른 아침 바람에 날아갔다. “확실합니까?” 내가 물었다. “문양은 루메르의 보급선단 것이 맞네. 하지만 안감에 꿰맨 붉은 실이 세 갈래가 아니라 두 갈래야. 왕실에서 지급한 천은 바람을 나누어 받도록 세 갈래로 꿰맸지.” 미라가 천을 뒤집었다. “맞아. 누군가 옛 돛을 흉내 낸 거야.” “역시 왕자님은 유용하시군요.” “그동안은?” “계산 중이었습니다.” 테온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제 그의 표정만 봐도 왕족을 얼마나 자주 모욕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유네는 등대에 걸린 천이 자정 이후 나타났다고 했다. 누가 올려놓는 장면을 본 사람은 없었다. 난간까지 이어진 계단은 부서져 있었고, 아래쪽 출입문에는 유네가 걸어 둔 쇠사슬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헤론은 바람이 다른 시기의 천 조각을 떠밀어 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미라는 누군가 일부러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두 가설 사이에서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난간과 계단에 남은 발자국을 확인하는 것. 키오는 내가 시키기도 전에 발자국을 종이에 옮겼다. 진한에게 새 자를 받은 뒤로 녀석은 자신의 업무가 늘었다고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난간 아래에는 소금기가 묻은 작은 신발 자국 하나, 그리고 물에 젖은 밧줄이 끌린 선이 있었다. “아이가 다녀간 걸까요?” “신발이 작다고 아이일 필요는 없어.” 미라가 답했다. “배에서는 작은 장화를 신는 어른도 있거든.” 우리는 등대 주위의 돌바닥을 따라 자국을 추적했다. 얼마 가지 않아 끌린 밧줄이 어딘가에 단단히 걸린 흔적을 발견했다. 바위 사이에 숨은 오래된 도르래였다. 바다에서 밧줄을 당기면 난간까지 천을 올릴 수 있도록 연결돼 있었다. 자정에 등대를 오른 사람은 없을 수도 있었다. “누가 장난을 친 모양이군.” 테온이 말했다. “장난치기엔 손이 많이 간 일이죠.” 내가 답했다. 바위 아래에서는 오래된 방수통 하나가 발견됐다. 누군가 급히 묶은 새 밧줄과 함께였다. 뚜껑에는 조그만 납인장이 박혀 있었다. 루메르 왕실의 인장이 아니라 보급선단 자체의 인장이었다. 테온은 그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 “왕궁이 멸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출항한 보급선단은 왕실의 명령을 거절한 적이 있어. 귀족을 먼저 태우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나온 환자들을 실었지.” “그랬으면 그 사람들은 무슨 벌을 받았나요?” 키오가 물었다. “귀항하지 않았으니 아무도 묻지 못했네. 왕실은 그 배를 침몰로 기록했어.” “실제로 본 사람도 없이요?” 테온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고도 우리는 왕국이 왜 사라졌는지만 묻고 있었군.” 유네와 미라가 입회한 뒤 방수통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식량 배급표와 선원들의 이름이 적힌 얇은 천, 그리고 도장이 찍히지 않은 항로 반환장이 있었다. 배급표에는 일곱 항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 다섯 곳은 지금 지형에서 사라졌고, 한 곳은 바다 밑에 잠겼으며, 마지막 한 곳은 우리가 서 있는 등대와 이어지는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무월항.' 미라가 고개를 들었다. “달 없는 해협 안에 항구가 하나 더 있어.” 헤론은 낡은 배급표의 날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배급표는 루메르 멸망 후 작성된 것이었다. 테온은 배가 그때까지 운항했을 가능성에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해협의 기록이 다른 날짜의 물건을 불러들이는 특성을 생각하면, 배급표가 실제로 그날 그곳에서 작성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천에 남은 선원들의 이름을 읽었다. 미라 동생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항로 보존자 아린의 이름 옆에 작은 세 갈래 매듭이 수놓아져 있었다. 아린의 이름은 여백의 항구 지도통에서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아린이 탔던 건가요?” 내가 물었다. “이름을 적은 사람이 아린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 미라가 말했다. “먼저 무월항에 가 보자.” 등대 밖에서는 갑자기 바람이 거세졌다. 바닷물 속에서 은빛 모래가 떠올라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유네가 창문에 쳐 놓은 작은 종이 한꺼번에 울렸다. 세 조수표에는 위험 수위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시간이었다. 미라는 통선을 내리려던 손을 멈췄다. “금색 배가 움직이고 있어.” 멀리 바다에는 백동상회 운송선 두 척이 나타났다. 그들은 등대의 위험 신호를 무시한 채 물빛이 꺼진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배에서 외침이 들리더니 돛대가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었다. 다른 배는 그것을 도우려다 수면 아래 감춰진 턱에 걸렸다. “구하러 가자.” 테온이 말했다. “이제 와서 상회 배를요?” 내가 물었다.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봤다.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통행권을 판 건 아니지.” 맞는 말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출항 기록을 덮었다. 미라는 벌써 돛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서류의 비밀을 푸는 것이 아니라 배에서 떨어질 사람들을 건지는 것이었다. 첫 배에는 물에 젖은 짐꾼 여섯 명이 있었다. 그중 둘은 팔에 밧줄을 묶은 채 물에 빠져 있었다. 미라와 테온이 끌어올리는 동안 나는 등대의 고정 불빛과 조수표에 나타난 오늘의 얕은 여울을 대조했다. 헤론은 별의 높이를 다시 재고 키오는 배끼리 부딪힐 거리를 외쳤다. “오른쪽 일곱 걸음!” “그쪽에 암초는?” 미라가 외쳤다. “아직 확인 안 됐어요!” “그럼 확인된 쪽부터!” 우리는 크게 돌아 접근했다. 두 번째 배는 이미 선체의 아래쪽이 손상돼 있었다. 선장에게 남은 사람 수를 묻자 그는 세 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갑판 아래에서 네 번째 사람이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명부에 적지 않은 승선자였다. 테온은 물이 차오르는 선실로 내려가 낡은 문을 부쉈다. 안에는 병상에 누운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손에 비닐처럼 얇은 방수천을 움켜쥐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그가 말했다. “내가 짐이라며 명부에서 지우더군.” 나는 처음으로 상회의 금색 항해권이 얼마나 잔인한 물건인지 정확히 이해했다. 도착을 먼저 기록하면 도중에 내린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노인을 우리는 이름과 함께 배에 태웠다. 이름은 마도. 그는 루메르의 옛 선단에서 짐을 나르던 사람이라고 했다. 안전한 물길로 돌아오자 마도는 우리에게 손바닥을 폈다. 거기에는 오래전 생긴 화상과 작은 돛 문양의 문신이 있었다. 테온이 무릎을 꿇었다. “이 문양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왕실 보급선을 타고 다닐 때지. 마지막에 실은 건 식량이 아니었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낼 편지였지.” “그 배는 어디로 갔습니까?” “무월항.” 노인은 창밖의 달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여전히 달이 있었다. 그런데 수면 위에서 달이 없는 좁은 띠가 먼 바다로 길게 뻗어 있었다. “저기를 따라가면 돼. 단, 빛이 없는 쪽이 아니라 그림자가 끝나는 곳을 봐야 해.”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숨이 고른 것을 확인하고 나서 방수통의 이름들을 다시 펼쳤다. 천 위에는 지워진 이름들 사이로 아주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제삼 귀항. 선원 전원 확인 금지. 각자 돌아온 항구를 따로 적을 것.' 테온이 그 문장을 읽으며 오래 손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우리 왕국의 마지막 배는, 처음부터 왕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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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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