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분화구의 마지막 아침은 매우 시끄러웠다.
일곱 바람길이 서로 다른 음으로 울었고, 진한의 세 시계는 여전히 세 시각을 가리켰다. 그 사이로 설묘의 호루라기와 단우가 치는 구조종이 겹쳤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세상이 망하는 것인지, 대규모 악단의 첫 연습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뭐부터 해야 하죠?” 키오가 물었다.
“일단 밥.” 미라가 대답했다.
“그다음은요?”
“어제부터 못 연 정비실.” 진한이 말했다.
“그다음은?”
“마지막 지도 확인.” 내가 대답했다.
“모험은 항상 제일 뒤네요.” 키오가 투덜거렸다.
“모험보다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일이 먼저라는 걸 배우면 좋은 지도 제작자가 될 거야.”
우리는 설묘에게서 받은 지도틀과 무연이 지켜 온 원본 기록을 한데 펼쳤다. 원래 마지막 지도는 그림이 완성된 한 장이 아니라, 세 부류의 수신인이 각자의 길을 확인하도록 남겨 둔 틀이었다. 돌아온 사람, 기다린 사람,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람. 세 자리를 한 사람이 대신 채우지 못하도록 빈칸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원본 틀을 얹은 돌판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분화구 바깥의 바람길에서 어제 풀지 못한 네 개의 잠금쇠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한은 바람이 더 강해지면 지하 배송실부터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연은 봉인함을 지키겠다고 고집했다.
“문서가 묻히면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야.”
“사람이 묻히면 문서도 읽을 사람이 없어집니다.”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정비와 대피를 동시에 준비했다. 단우는 역참에 임시 보관 장소를 마련하고, 설묘는 원본의 이동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오르반은 경비를 보내 위험 구간의 출입을 막았다. 그가 모든 과거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장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렌바 역시 자기 측량판을 옮길 인부를 내놓았다.
미라는 일곱 바람길을 한꺼번에 고치려 하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 길의 압력을 재고, 이미 분리된 세 갈래가 유지되는지 확인했다. 키오는 짧아진 자에 새 눈금을 붙여 바람길 안의 거리를 다시 쟀다. 헤론은 온도와 방향이 바뀔 때마다 다른 표에 기록했다. 나는 이들이 실제로 확인한 세 경로만 지도에 표시했다.
정오에 첫 번째 금속 지지대가 떨어졌다. 뒤이어 관측대의 옛 종탑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미라가 표시한 푸른 경로를 따라 위쪽 역참으로 이동했다. 그중에는 전날 구조된 소율도 있었다. 아이는 다친 장화를 새것으로 바꿔 신고 있었다. 단우가 만든 부츠였다.
“오늘은 저도 길을 알려 줄 수 있어요.” 소율이 말했다.
“어느 구간까지?” 내가 물었다.
“푸른 돌기둥까지. 그다음은 아직 안 가 봤어요.”
나는 웃었다. “그걸 정확히 말해 준 것만으로 충분해.”
우리는 그녀를 키오와 함께 앞쪽 대피조에 보냈다. 어린아이 둘이 자신들이 본 길을 서로 확인하며 걷는 모습을 보자 왠지 어깨가 가벼워졌다. 지도 제작자는 늘 먼저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잘 아는 길을 가지고 있었다.
바람길의 마지막 잠금쇠를 살피는 도중 아래에서 금속이 길게 울렸다. 헤론의 기구에서 바늘이 떨어졌고, 돌벽의 얇은 별가루 층이 한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렌바가 비명을 질렀다. 원본 보관함이 기울어져 곧 떨어질 참이었다.
테온이 먼저 달려갔다. 그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보관함을 받쳐 들었다. 미라는 밧줄을 문기둥에 묶고 무연을 대피시켰다. 나는 함이 놓인 받침대 아래쪽을 살폈다. 옛 도면에는 바닥에 배수로가 있었고 그 위에만 새로운 쇠받침을 설치해 놓았다. 배수로 쪽의 받침이 먼저 부서지고 있었다.
“함을 오른쪽으로 옮기지 마세요! 그 아래가 비어 있어요!”
“그럼 어디로!” 테온이 외쳤다.
“왼쪽 두 걸음. 여기 바닥은 우리가 어제 확인했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바닥을 두드려 소리를 확인했다. 미라가 보관함을 감싼 밧줄을 조금씩 당겼고 테온이 무게를 옮겼다. 마지막에 렌바와 경비 둘도 어깨를 받쳤다. 보관함이 마른 바닥으로 옮겨졌을 때 오른쪽 쇠받침이 완전히 무너졌다. 밑으로 검은 물이 치솟았다.
“이런 날은 월급이 두 배여야 해.” 내가 중얼거렸다.
무연이 듣고 대답했다. “원래는 세 배였소.”
“좋은 관측대였군요.”
“그래서 다들 떠나질 못했지.”
무연은 웃다가 기침을 했다. 테온이 그를 부축해 대피로 쪽으로 옮겼다. 우리가 모두 밖으로 나오자 종탑이 뒤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 소리는 한동안 분화구 전체에 울렸다. 그러나 지하의 모든 서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봉인함과 사본을 안전한 역참으로 옮겨 놓았다.
해 질 무렵 우리는 지도틀을 다시 펼쳤다. 나는 첫째 칸을 보았다. 실제로 돌아온 사람들의 통행 기록이 있었다. 둘째 칸에는 그들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록이 있었다. 셋째 칸은 아직 비어 있었다.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빈자리였다.
“그럼 마지막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나요?” 설묘가 물었다.
“오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완성됐습니다.” 내가 말했다. “남은 부분까지 마음대로 채우는 건 다른 일이죠.”
헤론은 옛 두 낙성 날짜와 바람길의 변화를 함께 놓고 보았다. 세 시계의 숫자 가운데 오직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간격이 있었다. 처음 낙성의 빛을 보았다는 날짜부터 공식 공표까지 사흘이 흘렀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흘 동안 관측대는 여러 방향의 바람과 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실제로 떨어진 물체가 어디에 닿았는지 보지 못했음에도 발표에서는 분화구를 ‘첫 별의 자리’로 적었다.
“여긴 첫 별이 떨어진 자리가 아니라,” 헤론이 천천히 말했다. “첫 낙성의 차이를 기록한 자리였을 수도 있네.”
나는 지도의 낡은 선을 바라봤다. 그 선들은 하나의 거대한 구덩이를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사라진 강의 옛 둑, 바다 없는 항구의 석축, 사람을 기다리던 배송실, 귀환을 확인하던 역참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별이 떨어진 날 이 모든 땅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화구에는 그보다 오래된 뿌리와 항로의 흔적이 있었다. 별이 이 땅을 만들었는지, 이미 있었던 땅을 다른 곳에서 옮겨 놓았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그럼 우리가 얻은 건 뭔가요?” 키오가 물었다.
“첫 낙성의 정확한 충돌 지점은 아직 모르지만, 관측대가 보던 길은 몇 개 찾았잖아.”
“그건 너무 작은 성과 아닌가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지도도 결국 누군가 걸은 첫 발 한 걸음부터 시작해.”
미라가 마지막 지도틀의 맨 아래를 가리켰다. 아까까지 비어 있던 가장자리에 작은 글씨가 생겼다. 별가루가 움직이며 낯선 선 한 줄을 그었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눌렀지만 잉크는 묻어나지 않았다. 그 선은 현재 확인한 길이 아니었다.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기록과 함께 나타난 옛 항로의 윤곽이었다.
‘바다 없는 항구에서 시작한 항로 — 달 없는 해협.’
헤론은 그 지명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옛 천문도에는 달 없는 해협을 ‘두 낙성의 관측값이 겹친 곳’이라고 적었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마지막 별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한층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달 없는 해협까지 지금도 길이 이어져 있는지는 몰랐다.
“거기 내 동생이 갔을 수도 있어.” 미라가 조용히 말했다.
“가능성을 확인합시다.” 내가 답했다. “그곳에 간 기록과 돌아온 기록을 따로 찾아야겠죠.”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온도 옛 루메르 회랑이 해협까지 이어지는지 묻겠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그 길이 루메르의 땅인지’를 먼저 묻지 않았다. 헤론은 관측기구의 깨진 바늘을 만지며 연구할 일이 늘어났다고 투덜거렸다. 키오는 새 자 세 개를 사 주겠다는 내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밤이 되자 단우의 역참에 사람들이 모였다. 소율은 지하에서 구조된 뒤 처음으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웃었다. 설묘는 마지막 지도의 미배달 증명서를 새로 썼고 무연은 자신이 지키던 기록을 다음 세대가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 진한은 시계 세 개를 모두 고치지는 못했지만 서로 다른 신호가 들릴 때 어떤 통로를 피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표를 만들었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실제로 돌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그 기록을 역참에 남기기로 했다. 서둘러 떠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하루의 귀환 확인을 빼먹고 싶지 않았다. 하늘에 별빛이 퍼지고 재바람이 낮게 불었다. 분화구의 깊은 곳에는 아직 우리가 다녀오지 못한 통로가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지울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확인할 자리였다.
나는 지도통을 닫으려다가 마지막 페이지가 저절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달 없는 해협 — 왕도가 이전되던 날에도 바다였던 곳]
그 아래에 조금 더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다음 기록을 열려면, 마지막 별의 그림자가 지나온 길을 찾으라.]
미라가 뒤에서 물었다. “또 무슨 말이야?”
“우리가 지도를 잘못 읽고 있다는 얘기 같네요.”
“언제는 제대로 읽었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이 나왔다.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을 구분할 수 있는 동료들이 옆에 있었으니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회색 분화구의 가장자리에는 별 하나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의 그림자도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그림자가 향하는 곳은 분화구의 중심이 아니었다. 아주 먼 서쪽 바다였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찾는 것은 별이 떨어진 자리가 아니라, 별이 지나간 뒤에도 돌아올 수 있었던 길일지 모른다고.
제7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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