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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66화
PAYLUA ORIGINAL · 제66화

제66화 - 왕관 없는 왕자의 통행권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701자

오프라인 책장
테온이 왕관을 내려놓은 뒤에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전하, 그럼 지금은 뭐 하시는 분입니까?’였다. 실제로 분화구 아래 관측실에서도 그 질문을 받았다. 이번에는 제법 단정한 제복을 입은 남자에게서였다. “루메르의 최후 왕자라 들었습니다.” 남자는 이름을 렌바라고 소개했다. 경계작성회와 백동상회가 공동 파견한 현장 감독관이라고 했다. 제복 왼쪽에는 금색 별, 오른쪽에는 흰 잎 세 장이 수놓여 있었다. 나는 아린의 옛 천 조각에 비슷한 무늬가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같은 조직이라고 결론 내리지는 않았다. “그렇소.” 테온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필요로 하는 서명이 뭔지부터 들어야겠군.” “왕실 복행 권한 확인입니다. 여기에 서명해 주시면 관측대의 마지막 지도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렌바는 금빛이 도는 얇은 문서를 펼쳤다. 상단은 첫 관측대를 ‘루메르 유산 보관구역’으로 지정해 두었다고 했다. 그의 설명만 들으면 테온에게 조상의 물건을 돌려주려는 선의처럼 보였다. 나는 문서 아래에 쓰인 작은 글씨를 읽었다. ‘왕실 관계자가 열람을 신청한 경우 해당 보관구역의 모든 현재 통행 기록을 왕실 복원 대장으로 승계한다.’ “전하,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보고 있네.” “왕실 유산을 열람하는 일과 지금 이곳을 다니는 사람들을 루메르 신민으로 만드는 일은 다릅니다.” 렌바가 웃었다. “행정 편의를 위한 조항입니다.” “행정 편의는 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편의입니까?” “국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요.” “국왕은 어디 계시죠?”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테온은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미라가 만족한 듯 팔짱을 꼈다. 렌바는 그 모습을 보고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자님, 루메르의 옛 지도 한 장이 안쪽에 있습니다. 잃어버린 왕궁이 표시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테온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에게 루메르는 잃어버린 영토가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이름이기도 했다. 아르켄에서 왕관이 깨졌을 때도, 연흔에서 왕관을 문턱에 내려놓았을 때도 그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손은 문서 끝을 꽉 쥐고 있었다. “보고 싶소.” 그가 말했다. “정말로.” 렌바의 입술이 올라갔다. “하지만 내 이름을 빌려 다른 사람의 길을 가져가지는 않겠소.” 그가 문서를 완전히 접었다. 렌바는 그제야 미소를 거뒀다. 우리가 배송실 옆의 공공 통로로 향하려 하자 경비 둘이 길을 막았다. 그들은 통행 허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벽의 오래된 표석에는 이 통로가 관측대 재난 시 주민 대피로로 지정돼 있었다. 진한이 과거 정비 기록을 확인해 주었다.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표지는 최근 붙은 것이었다. “누군가 문을 새로 만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경비가 아무 말 없이 검집에 손을 올렸다. 미라는 칼을 뽑지 않았다. 대신 옆의 쇠문 고리에 밧줄을 감아 놓았다. 누가 문을 닫더라도 사람들이 갇히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무단 출입자다.” 렌바가 말했다. “문을 닫아.” 경비 한 명이 레버를 내리려 했다. 테온이 먼저 움직였다. 왕자는 빠르게 검을 뽑아 레버 앞의 바닥을 쳤다. 돌조각이 튀고 경비의 발이 멈췄다. 그는 상대의 목을 겨누지 않고 문이 닫히는 경로만 막았다. “대피로는 사람을 가두라고 만든 것이 아니오.” 렌바가 손짓하자 경비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미라는 첫째의 검을 짧은 칼로 비껴내고 난간 뒤로 밀었다. 테온은 둘째와 맞붙었다. 나는 그 사이 벽에 붙은 안내판을 떼어 들었다. 누군가는 검으로 싸우고 누군가는 간판으로 싸운다. 재능이 서로 달라서 다행이다. 경비가 내 쪽을 돌아보며 외쳤다. “그걸 내려놔!” “표지판입니다!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나는 간판의 뒷면을 렌바에게 보여 주었다. 오래된 대피로 번호와 오늘 우리가 직접 확인한 출구가 한눈에 드러났다. 렌바는 잠깐 굳었다. 그 표지판에는 경계작성회보다 오래된 관측대의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때 진한이 비상종을 울렸다. 연흔에서 듣던 가짜 종소리와 달리 이것은 손으로 당기는 작은 청동 종이었다. 역참과 아래 굴을 잇는 사람들의 구조 신호로 쓰였던 것이다. 바깥쪽에서 단우와 하칸이 종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설묘도 자기 배달용 호루라기를 세 번 불었다. 렌바가 이를 악물었다. “현장 지휘권은 나에게 있다.” 단우가 다가와 물었다. “그럼 대피로 안에 갇힌 사람들부터 꺼내 주실 건가요? 어제부터 당신네 창고 일꾼 두 명이 안 돌아왔어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렌바는 그런 보고를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진한의 시계실 기록에는 오늘 새벽 창고 통로로 들어간 인원이 있었다. 경비들은 그들을 자재 운반 인부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테온을 돌아봤다. 그도 이미 알아챘다. 왕실 옛 지도를 보겠다는 욕심에 문을 여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안에 있는 사람을 먼저 꺼내야 했다. 우리는 렌바가 막아 둔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테온은 경비의 검을 빼앗지 않았다. 대신 그들에게 구조를 도우라고 요구했다. 세 번째 보관함 뒤에 가 보니 목재 상자 하나가 넘어져 두 인부의 길을 막고 있었다. 바닥에는 하얀 재가 쌓였고 한 사람은 발목을 다친 상태였다. “도와 주세요!” 미라가 상자를 줄로 감아 당겼다. 테온과 경비 둘이 반대쪽에서 힘을 보탰다. 나는 재가 쌓인 땅의 깊이를 막대기로 확인했다. 상자 아래에는 오래된 배수로가 있어 무턱대고 밀면 인부가 다시 떨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나무받침을 댄 뒤 상자를 조금씩 들어 올렸다. 인부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단우가 물과 붕대를 건넸다. 렌바는 현장 정비가 완료된 것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인부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쪽에 아직 자재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어요.” 나는 그 말을 기록했다. 테온은 무릎을 꿇고 인부의 얼굴을 살폈다. 그에게 왕관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앞에서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이름과 집으로 가는 길을 직접 알려 주었다. 사건이 수습된 뒤 렌바는 조건을 바꾸어 다시 제안했다. 루메르 지도의 열람만 허용하고 현재 주민의 기록을 넘겨받지 않겠다는 문서를 새로 쓰겠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불쾌한 얼굴이었지만 경비가 앞서 대피로를 닫으려 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했다. 테온은 문서를 받아 살펴봤다. 그리고 서명을 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루메르였던 길을 확인할 권리. 좋소. 하지만 거기에 다시 갈 수 있는지는 내가 결정하지 않겠소.” 우리는 공동 입회 아래 옛 지도를 열람했다. 거기에는 왕궁보다 오래된 암석 회랑과 분화구에서 이어지는 좁은 바닷길이 표시돼 있었다. 그 바닷길은 지금의 지도에서 끊겨 있었다. 헤론이 날짜를 읽었다. 첫 낙성 이후의 수치가 아니라, 관측대가 세워지기 전의 측량값이었다. 테온은 그 지도를 오래 바라보다 나에게 건넸다. “내 나라가 있던 길을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는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해 보죠. 돌아올 수 있는지는 그다음입니다.” 테온은 처음으로 가볍게 웃었다. “왕관 대신 일할 일이 생겼군.” “월급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식비도...” “레이븐.” 나는 입을 닫았다. 왕국의 마지막 왕자가 내 지도를 들고 먼저 걸었다. 그의 등에는 더 이상 왕관의 무게가 없었다. 대신 길을 잃은 두 인부가 집으로 돌아갈 때 쓸 새로운 안내도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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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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