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65화
PAYLUA ORIGINAL · 제65화

제65화 - 북쪽이 서쪽으로 바뀐 날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77자

오프라인 책장
무연이 내게 봉투를 건넸을 때, 미라가 손을 들어 막았다. “읽기 전에 출구부터 확인해.” “지도를 보러 여기 왔는데 지도보다 출구가 먼저라니, 내 직업을 모욕하시는군요.” “그 봉투 때문에 문이 닫히면 네가 책임질 거야?” “문을 닫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문이 사람이어야 말이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미라는 손전등을 들고 배송실 뒤편의 좁은 통로를 살폈다. 테온은 출입문에 작은 나무쐐기를 끼워 두고, 키오는 진한에게서 오래된 비상구 도면을 받았다. 무연은 우리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과거에는 봉투 하나를 받기 위해 안전 확인을 요구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관측대가 결국 닫혔을지도 모르죠.” 내가 대꾸했다. 봉투 안에는 별가루가 거의 없는 얇은 종이가 있었다. 표면에는 분화구의 단면과 세 개의 바람길, 그리고 ‘북쪽이 서쪽으로 돌아가는 시각에는 그림자를 재지 말 것’이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누가 마지막 지도를 완성해야 했는지 알려 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내 손에 남은 건 또다시 금지문이었다. 헤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자를 재지 말라는 건 관측을 멈추라는 게 아닐세. 빛의 방향이 달라질 때 얻은 수치를 그대로 위치로 쓰면 틀린다는 뜻일 수 있어.” 무연은 기록실의 큰 창을 가리켰다. 창밖에는 분화구의 바깥쪽 산맥이 있었다. 방금까지 우리가 동쪽에서 보았던 산이었는데 창의 틀에는 ‘북측 관측’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처음엔 창을 다른 방향으로 설치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라가 나침반을 대 보자 바늘도 벽을 따라 이상하게 흔들렸다. “여기서는 방향이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군요.” “바뀌는 건 방향이 아니라 기준일 수도 있지.” 헤론이 말했다. 우리가 긴 통로 끝에 있는 관측실로 들어섰을 때, 바깥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무연이 얼굴을 굳혔다. “흰 재가 오고 있어.” 창밖의 검은 바위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눈처럼 보였지만 땅에 닿으면 작은 나침반 바늘처럼 떨었다. 미라가 창틀을 닫자마자 바깥의 돌계단 한쪽이 반쯤 들떠 공중에 매달렸다. 관측대의 경계가 다시 접히는 시각이었다. “우리가 왔던 길로 나가면 됩니까?” 테온이 물었다. 진한이 벽의 비상등을 확인했다. 원래 오던 계단은 지금 떨어지는 재에 덮여 있었고, 역참으로 연결되는 바깥 벼랑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연은 관측대 안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예전 지하 통로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사용한 건 오래전 일이었다. 우리는 두 길을 놓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기존 출구는 미라가 창밖을 직접 확인했고, 내부 통로는 무연의 기억과 옛 도면으로만 존재했다. 우선 현재 출구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안쪽 통로의 첫 구간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때 관측실 바닥 아래에서 두 번의 짧은 충격이 전해졌다. 키오가 바닥의 나사를 가리켰다. 나사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하얀 재가 강한 자성을 띠어 관측대의 쇠못과 줄을 잡아당기는 모양이었다. 지지대는 돌이었지만 지지대 사이를 묶은 금속이 떨어지면 천장이 무너질 수 있었다. “다들 벽에서 떨어져요!” 미라가 외쳤다. 나는 서류를 품에 넣고 뛰었다. 그러다 바닥에서 똑같은 글씨가 적힌 돌판을 보았다. 북쪽이라고 적힌 표지판의 화살이 서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림자가 아니라 돌판 자체가 천천히 회전했다. 돌을 밟아 확인한 위치와 판 위의 방향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테온이 쓰러지는 선반을 막았다. 선반 아래엔 설묘의 배달통이 있었다. 미라가 통을 낚아챘고, 나는 키오의 목덜미를 잡아 피했다. 바닥에 놓였던 작은 철제 저울이 하얀 재를 향해 튀었다. 헤론의 낙성 기구도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건 제 평생의 관측기인데!” 헤론이 외쳤다. “그럼 죽어서 같이 묻히지 마세요!” 내가 소리쳤다. 미라가 비상 난간을 내려뜨렸다. 바람길이 바뀌자 관측실 천장에 매달린 쇠고리들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우리는 철로 이어진 길이 아니라 돌기둥에 새겨진 옛 배수로의 홈을 따라 움직였다. 그 홈은 하얀 재가 붙지 않는 물질로 덮여 있었다. 헤론은 손가락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분화구 껍질 속에서 보았던 얇은 돌층과 같은 질감이었다. “여기엔 재가 붙지 않네. 이게 예전의 안전 통로였겠어.” “지금도 안전한지는 확인해야지요!” 나는 손바닥에 별가루 지도를 펼쳤다. 처음에는 선이 모두 서쪽으로 기울었다. 내가 어제의 지도를 억지로 오늘의 방향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 무연의 봉투에 적힌 경고를 떠올리고 지도의 북쪽 표식을 가렸다. 그다음 우리가 아까 실제로 지나온 돌기둥 세 개의 상대적인 거리를 표시했다. 지도는 방향 대신 거리를 기억했다. 내가 그린 선은 다시 은빛으로 돌아왔다. “바깥이 서쪽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왜 여기 있죠?” 키오가 물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 있어서.” 내가 말했다. “방향은 나중에 찾자. 지금은 우리가 밟은 돌을 순서대로 기억해.” 무연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내부 통로로 향하는 첫 문턱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문을 열자 안쪽 바닥에 물이 흘렀고, 물 위에는 재에 달라붙은 쇳조각들이 둥둥 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보다 덜 위험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미라가 돌기둥을 따라 우회하는 좁은 선반을 발견했다. 그녀는 밧줄을 연결해 먼저 건너갔다. 내가 따라가려는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내 이름이었다. 소리는 옛 관측대 복도에서 들려왔다. “레이븐. 여기로 와.” 목소리는 미라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미라는 내 바로 앞에서 밧줄을 묶고 있었다. 나는 뒤돌아보았다. 붉은 등불이 걸린 옛 복도 끝에 여자의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 그림자는 미라와 같은 푸른 외투를 입고 있었다. “또 장난치는 거예요?” 내가 앞쪽의 미라에게 물었다. “뭐?” “저 뒤에서 부르잖아요.” 미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를 보자 그녀의 얼굴에서 피가 가셨다. 그녀가 외투 안쪽의 낡은 매듭을 쥐었다. 오래전에 실종된 동생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외투와 똑같은 색이라고 했다. 그녀는 순간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누군지 확인하고 가요. 길부터요.” 그림자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무연의 목소리였다. 바로 옆에 선 무연은 당황해 뒤로 물러났다. 헤론이 낮게 말했다. “잔향일 수도 있네. 예전에 남았던 목소리를 지금의 빛이 옮긴 걸지도.” 그림자가 사라지고 벽에는 젖은 손자국 하나만 남았다. 미라는 한동안 그곳을 보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동생의 이름을 조용히 말했다. 나는 받아 적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그림자를 그 이름의 주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물이 찬 좁은 선반을 건넜다. 마지막 사람이 도착하자 관측대의 쇠문이 뒤에서 굉음을 내며 닫혔다. 재바람은 두 시간 뒤에야 그쳤다. 창밖의 산은 여전히 북쪽이라고 적힌 창 옆에 있었지만, 이제 그 아래 강물은 서쪽으로 흘렀다. 미라가 내 어깨에 기대어 물었다. “만약 그게 진짜 내 동생이었다면?” “다시 찾을 길을 남겨 두면 됩니다.” “언제?” 나는 처음으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분화구 밖의 저녁 하늘에는 여전히 북쪽과 서쪽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무연이 건네준 마지막 지도 봉투의 빈칸에 가느다란 글씨가 나타났다. ‘첫 관측대의 마지막 지도를 열려면, 방향을 버리고 돌아온 사람의 위치를 확인하라.’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6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6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