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이 분화구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만난 것은 별이 아니라 시계 세 개였다.
돌벽에 매달린 둥근 시계들은 모두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왼쪽 것은 해 뜨기 직전, 가운데 것은 정오, 오른쪽 것은 자정. 더 이상한 점은 바늘이 모두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왼쪽 시계는 정방향으로, 가운데는 거꾸로, 오른쪽 것은 두 걸음 전진하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중에 오늘 시간이 어느 겁니까?” 키오가 물었다.
“네가 아침을 먹은 시각은 어느 거였니?” 내가 되물었다.
“먹기 전이요.”
“그건 아마 모두에게 공통이겠구나.”
미라가 내 등을 툭 쳤다. “먹여 놓고 농담해. 배고픈 애한테 시간 철학 하지 말고.”
단우가 아침에 싸 준 보리빵을 나눠 먹었다. 그녀는 우리가 돌아오면 약초꾼과 함께 복구한 석축길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날 구한 약초꾼의 이름은 하칸이었다. 그는 무사히 역참에 남았고, 우리가 받는 안내는 그의 직접 목격과 단우의 기록을 나란히 적은 사본이었다. 그것이 오늘의 첫 단서였다.
시계 앞에 있는 장벽은 부러진 철제 난간으로 막혀 있었다. 반대쪽에는 유리재가 굳어 생긴 검은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물길이라 부르기에는 흐르는 것이 물이 아니었다. 은빛 작은 돌들이 끊임없이 위쪽으로 굴렀고, 그 사이로 젖은 이끼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역류하는 강이라더니.” 테온이 중얼거렸다.
“강도 아니고 물도 아닌데, 역류는 하네요.” 내가 대답했다.
헤론이 손바닥에 이끼를 올려 놓았다. 가느다란 뿌리가 공기 중에서 북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별가루를 담은 유리관을 근처에 대 보았다. 관 속 가루도 같은 방향으로 조금 기울었다. 이곳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의 원인을 곧장 ‘별의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천문학자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시계 아래에는 작은 기술실이 있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고, 안쪽에는 망치와 나사, 미완성인 종이 모형들이 쌓여 있었다. 그 안에서 안경을 쓴 노인이 커다란 철추를 닦고 있었다.
“손님이면 길을 잘못 들었소.”
“왜요?”
“정상적인 손님은 여기까지 살아 올라오지 않으니까.”
노인은 자신을 길목 정비사 진한이라고 소개했다. 예전엔 분화구 위쪽 관측대에서 도르래를 관리했고, 지금은 아래쪽 시계실의 잔해를 돌보고 있었다. 외투 소매는 어깨까지 걷혀 있었고 오른손 두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내 지도통을 보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뚜껑, 아주 오래된 복행용인데.”
“아시는 물건입니까?”
“본 건 아니고 도면에서 배웠지. 세 갈래로 시작해 되돌아오는 길 하나를 비워 두는 방식이야.”
진한은 시계 세 개가 시간 여행 장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관측 지점의 시간을 읽던 기계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분화구 위, 하나는 안쪽 수로, 마지막 하나는 바깥 역참의 신호를 받았다. 지형이 바뀔 때 각 지점에서 보이는 별의 위치가 달라지면 바늘도 어긋났다. 첫 관측대는 그 차이를 지우지 않고 모두 기록했지만, 어느 때부터 누군가 세 시계를 하나의 ‘공식 시각’으로 맞추려 했다고 한다.
“그 뒤에 사고가 났습니까?” 헤론이 물었다.
“사고가 났다는 기록이 있지. 하지만 내가 그날 본 건 시계가 멈춘 것과 사람들이 달려가는 모습뿐이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소.”
그의 말이 끝나자 가운데 시계의 긴 바늘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이 정오를 지날 때마다 벽 아래 금속판이 딸깍거렸다. 진한이 철추를 떨어뜨렸다.
“누가 동조 장치를 켰어!”
벽 바깥으로 뛰어나가니 검은 물길의 은돌들이 일제히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울 위의 작은 돌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다리 저편에는 등짐을 진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우리가 바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막 중간 돌까지 발을 올린 상태였다.
“건너지 마시오!” 진한이 외쳤다. “가운데 바늘이 한 바퀴 돌면 돌이 끌려 내려가!”
여자는 뒤돌아보았다. “다리 반대쪽에서만 길이 열린다고 했어요!”
나는 지도에서 다리의 위치를 찾았다. 열두 해 전 측량도에는 아홉 개의 돌발판이 적혀 있었지만 지금 보이는 건 일곱 개였다. 뒤돌아오는 편이 나은지 판단하려면 발판이 빠진 위치부터 알아야 했다. 키오가 천막 기둥 위로 올라가 불러 주었다. 셋째 발판에 금이 있고 여섯째는 물길에 반쯤 잠겼다고.
미라가 밧줄을 내밀었다. “내 쪽으로 돌아와요. 손은 난간을 놓지 마!”
여자는 돌아오려 했으나 발을 옮긴 순간 다리 전체가 흔들렸다. 테온이 반대쪽 난간을 지탱했고, 나는 진한과 함께 시계실로 뛰었다. 동조 장치는 가운데 시계 아래 기어 두 개를 서로 물리게 만드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러나 기어를 힘껏 빼면 시계 세 개가 동시에 멈출 수 있다고 진한이 경고했다. 그러면 돌다리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어진다.
“기어 하나만 풀 수 있습니까?”
“공구가 있어야 해. 작은 쐐기!”
나는 가방에서 지도통을 고정하던 납작한 금속판을 꺼내려다 멈췄다. 열두 해 전의 유물을 시계 속에 꽂아 버리면 다음 단서를 잃을 수도 있었다. 대신 키오의 나무 자를 빌려 끝을 짧게 꺾었다. 키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거 제가 아끼던 자인데요!”
“생존하면 새 걸 세 개 사 줄게!”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나무 쐐기를 기어 사이에 끼우자 금속의 울림이 한 번 끊겼다. 가운데 바늘은 계속 움직였지만 잠금판으로 신호가 전달되지 않았다. 다리 쪽에서 미라의 구령이 들렸다. 하나, 둘, 셋. 여자가 난간을 붙잡고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마지막 발이 땅에 닿자 여섯째 발판이 검은 여울에 가라앉았다.
여자는 숨을 몰아쉬며 이름을 밝혔다. 설묘라는 우편배달부였다. 그녀는 누군가 분화구 아래 관측대에 보낼 문서를 맡겼다며 방수통을 보여 주었다. 겉면에는 ‘마지막 지도 전달 실패, 2차 배송’이 적혀 있었다. 우편요금으로 받은 것은 동전이 아니라 오래된 시계태엽 하나였다.
“누가 맡겼습니까?” 미라가 물었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예요. 얼굴을 본 사람은 저뿐인데, 제 이름을 먼저 알고 있었어요.”
설묘는 그 남자가 분화구 아래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나는 시계실로 돌아와 출입 기록을 살펴보았다. 오늘 날짜 바로 아래, 열두 해 전에도 같은 번호의 태엽이 반납된 기록이 있었다. 글씨는 심하게 바랬지만 우편함 번호는 읽을 수 있었다.
‘관측대 지하 배송실 — 봉인함 3번.’
진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오래된 열쇠 꾸러미를 뒤져 작은 쇠열쇠를 꺼냈다. 손잡이에는 톱니 세 개가 그려져 있었다.
“저 아래는 재가 쌓여 막힌 줄 알았는데.”
“혹시 직접 보셨나요?” 내가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안 내려갔으니까.”
시계가 하나씩 다시 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은 분명 오후였지만 오른쪽 시계는 자정을 가리켰다. 나는 그걸 고치지 않았다. 오늘의 바늘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더 정확한 소식이었다.
설묘는 잃을 뻔했던 방수통을 가슴에 안고 물었다. “그럼 제 배송은 실패한 겁니까?”
“아직 수신인을 못 만난 거죠.”
“그게 무슨 차이예요?”
나는 부러진 키오의 자를 들고 대답했다.
“실패는 끝난 일이고, 미배달은 찾아갈 길이 남은 일이거든요.”
그때 분화구 아래의 푸른 창문이 다시 한 번 빛났다. 이번에는 불빛이 아니라 사람의 손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유리 앞을 지나갔다.
제6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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