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흔 관측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누군가 제영 좌표의 사용자를 정하려 한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지도를 더 크게 그리지 않겠다고. 내 지도 위에 선 하나를 늘리면 누군가 그 선을 따라 걸을 수도 있었다. 그 선을 그린 나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길을 건너는 사람에게는 평생이 걸려 있을지 몰랐다.
미라는 내 결심을 듣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늘부터 지도 제작자가 지도를 안 그려?”
“확인되지 않은 길을 안전하다고 그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아하. 그건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이잖아.”
“저도 가끔 직업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우리는 루안과 베사, 세린, 로엘에게 각자의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노아와 에브는 토렌의 치료소에서 쉬고 있었고, 미라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뒤에야 움직였다. 이틀 전 다리에서 구조된 아이는 이제 열이 내려 빵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에브는 자신이 실제로 올라왔던 바위의 형태를 다시 그려 주었다. 하지만 오늘 그 바위를 건널 수 있을지 묻자 망설임 없이 ‘모른다’고 답했다.
그 대답이 이번 원정의 가장 정확한 지도일지도 몰랐다.
관측소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계작성회는 금색 판을 임시 봉인했지만, 다음 낙성이 가까워진다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은 안전한 길을 찾아야 했다. 노인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답장을 기다렸고, 상인들은 물자를 운반할 통로가 필요했다. 기록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이 굶어야 한다면 그 역시 실패한 지도였다.
나는 루안에게 임시 통행 안내대를 세워 달라고 했다. 날짜가 서로 다른 세 장의 지도를 펼치되 가장 위에 오늘 직접 확인한 길을 놓았다. 아래 두 장에는 과거에 실제로 통행한 흔적과 지금 확인되지 않은 구간을 표시했다. 위험 구역에는 붉은 선, 현재 확인된 우회로에는 짙은 푸른 선을 썼다. 미라는 직접 걸을 수 있는 길의 시작점을 확인했고, 테온은 공공 쉼터를 거쳐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동선을 살폈다.
“그럼 이건 공식 지도입니까?” 루안이 물었다.
“공식적으로 제가 오늘 책임지고 확인한 지도입니다.”
“정부에서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군요.”
“맞아요. 그래서 확인한 사람과 시각을 전부 적습니다.”
헤론은 낙성 관측의 변화량을 적었다. 한때 열일곱 날이라고 알려진 별락 대륙의 예보는 이미 여러 차례 수정돼 있었다. 그는 정확한 날짜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어떤 방향의 관측선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지, 내일 확인해야 할 기준점이 무엇인지 적어 주었다. 모르는 날짜를 한 날짜로 만들지는 않았다.
광장 한쪽에서 오르반이 나타났다. 그는 경비를 이끌고 왔지만 예전처럼 곧장 지도를 빼앗지는 않았다. 그 대신 우리 안내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네가 만든 비공식 지도가 사람들을 흔들고 있다.”
“움직이는 땅에서 움직이지 않는 지도를 믿게 하는 것보단 낫죠.”
“공식 지도의 책임자는 하나여야 한다.”
“그러면 누가 그리지 않은 길의 책임까지 떠맡습니까?”
오르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베사의 부상 기록과 에브의 귀환 진술, 베르탄의 정산표 사본을 보여 줬다. 원본은 각 소유자에게 남겨 두었다. 세 자료는 경계작성회의 현장 통제와 백동상회의 판매 기록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있음을 보여 줬다. 하지만 오르반 자신이 금색 판을 조작했다는 확정 증거는 아니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항로를 한 장으로 통합할 권한이 아니라, 틀린 항로를 고칠 책임입니다.” 내가 말했다.
오르반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록이 다르면 사람들은 서로 싸운다.”
“기록을 하나로 만들면 싸움이 사라질지도 모르죠. 대신 돌아올 길을 잃는 사람이 생길 겁니다.”
그는 한동안 침묵하다 경비에게 미확인 목판 판매 중지 공고를 붙이라고 명령했다. 나는 그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오늘 이곳의 위험한 판매를 막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정오 무렵 금색 장치에서 마른 충격음이 났다. 관측소 탑 위의 판이 저절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베사가 회복 중인 몸을 이끌고 광장에 나와 소리쳤다.
“세 번째 종이 울리면 문이 열려! 저걸 막아야 해!”
그러나 위쪽 종은 누군가 이미 떼어 낸 상태였다. 실제로 움직인 것은 탑 아래에 숨겨진 수문의 전환축이었다. 그 축에 연결된 추들이 주변 바위의 흔들림에 따라 움직이며 종처럼 울리는 소리를 냈다. 누군가 그 장치의 진동을 자동 통행 완료 기록과 연결해 놓았다. 헤론이 눈앞에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이건 마법보다 기계 쪽 문제입니다.” 내가 외쳤다.
“그쪽이 더 귀찮지!” 미라가 대꾸했다.
키오와 루안은 광장 사람들을 쉼터로 안내했다. 테온은 탑의 돌계단으로 달려가 난간을 고정했다. 미라는 베사의 기억을 바탕으로 수동 차단 레버의 위치를 찾았다. 한 번에 잘못 당기면 낮은 수로에 물이 쏟아질 수 있어서, 헤론이 압력 변화를 재는 동안 조금씩 조정해야 했다.
나는 금속판을 뒤집어 안쪽 회로를 보았다. 세 개의 홈이 한 줄로 합쳐지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이 장치가 `3·7·0` 표식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금속의 홈은 최근에 판 흔적이 있었고, 옛 기록과도 맞지 않았다. 누군가 오래된 세 갈래 표식을 흉내 내 한 번의 완료 신호로 바꿔 놓은 것이다.
“길이 하나가 되면 책임자도 하나가 되는군요.” 나는 중얼거렸다.
금속판 뒤에는 새것 같은 종이가 접혀 있었다. ‘연흔 경계 통과자 일괄 귀환처리 — 제영 좌표에 위임.’ 누군가 빈 좌표를 사람처럼 취급해 처리 권한을 맡긴 문서였다. 그 문서를 발견했다고 곧바로 범인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 작동하는지는 더 분명해졌다.
테온이 위쪽에서 손을 흔들었다. “지금이다!”
미라가 레버를 반만 당기고 헤론이 외쳤다. “압력 유지!”
나는 일괄 귀환처리용 금속 연결쇠를 빼냈다. 수문의 물리적인 안전 기능은 그대로 두고, 경계 통과자 명부를 자동으로 완료하는 회로만 분리했다. 그 방법은 처음부터 탑의 정비 도면에 있었다. 다만 최근 개조하면서 금색 덮개 아래 숨겨졌을 뿐이었다. 기계의 진동은 계속됐지만 날짜표가 한 날짜로 바뀌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멀리서 박수를 쳤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장치에서 내려왔다. 세상을 구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우리가 한 일은 하나의 잘못된 회로를 분리한 것뿐이었다. 다른 관측소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면 위험은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 아린과 마엘의 답장이 도착했다. 아린은 열두 해 전 지도통의 발송자란이 비어 있었다고 재확인했고, 마엘은 과거 측량기록의 옅은 푸른 안료가 금색 판의 최근 안료와 다르다는 분석을 보냈다. 세린 역시 옛 수첩의 서명이 ‘첫 지도 제작자 일동’이라는 표기와 대체로 맞는다고 했다. 우리는 첫 제작자를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보류한 좌표를 후대에 누군가 단일 관리 권한으로 바꾸어 사용했다는 정황이 더 강해졌다.
밤에는 베사가 토렌의 부축을 받아 광장으로 나왔다. 루안은 누나가 정말 지금 자기 옆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에브와 노아, 로엘도 각자의 의사로 광장에 왔다. 우리는 돌아온 사람들을 한 장의 완료 명부에 몰아넣지 않았다. 베사는 구조 후의 상태를, 에브는 아이와 함께 머문 위치를, 로엘은 자신이 지나온 길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각각 말해 주었다.
별가루 지도 위에 작고 가느다란 은선 세 개가 나타났다. 서로 다른 시기의 길이었다. 선은 만나지만 하나의 선으로 녹아들지 않았다. 나는 손을 떨며 금속판을 살폈다. 밤숨 분지에서 보았던 표식 `3·7·0`의 세 숫자 옆에 아주 작은 문장이 나타났다.
‘셋이 기록하고, 일곱 길을 기다리며, 영을 비워 둘 것.’
이것이 최초의 정확한 의미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숫자가 여러 절차에서 쓰였다는 증거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영을 비워 둔다’는 말은 제영 좌표에 이름을 강제로 등록하려 했던 사람들의 의도와 정면으로 어긋났다.
헤론이 내 옆에 섰다. “다음은 어디지?”
나는 연흔 탑 너머 하늘을 가리켰다. 밤의 경계에는 눈으로는 겨우 보이는 긴 금이 생겨 있었다. 별이 아니라 오래된 지도 위에 칼끝을 대고 천천히 그은 선 같았다. 그 아래에서 아주 먼 종소리와 항구의 뱃고동이 동시에 들렸다.
“별이 떨어지기 전에 저 선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아야 합니다.”
미라가 웃었다. “이번에도 멀미는 공짜겠지?”
“네. 다만 요금은 생존 후에 청구하겠습니다.”
우리가 짐을 챙기려는 순간 지도통 안쪽의 흰 종이에 새로운 지명이 나타났다.
[회색 분화구 — 첫 낙성 관측대의 잔해]
그 아래에는 또 하나의 짧은 문장이 있었다.
[관측대가 남긴 마지막 지도는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아직 전달되지 않은 지도. 누가 그렸는지도,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지도. 하지만 이번에는 목적지를 먼저 지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연흔에서 실제로 확인한 길들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우리 뒤에 남을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길과 안전한 우회로가 모두 분명히 표시된 사본을 남겼다.
“출발합시다.”
키오가 재빨리 물었다. “이번에도 내일 확인하러 돌아오는 거죠?”
나는 빙그레 웃었다.
“가능한 한. 하지만 돌아올 날짜는 실제로 돌아온 다음에 적자.”
우리는 탑을 등지고 걸었다. 뒤에서는 서로 다른 세 날짜를 가리키는 시계들이 각자 제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불일치가 전보다 덜 무섭게 느껴졌다.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시계가 같아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을 걷는 사람들이 서로를 기다릴 자리를 남기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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