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흔 관측소에서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을 요약하면 이렇다. 종이 하나는 벽에 없고, 종소리는 셋이 들렸으며, 내가 건넌 적 없는 길은 벌써 귀환 완료라고 처리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오래된 편지라고 대답했다. 물론 편지에도 거짓말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편지지를 누가 언제 접었는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다.
테온이 왕관을 쉼터의 문턱에 두고 나온 뒤 우리는 루안의 집으로 돌아왔다. 베사는 의원 토렌에게 다리 치료를 받았고, 열이 조금 내려갔다. 루안은 밤새 곁을 지켰다. 키오는 베사에게 질문을 열둘이나 준비했지만 미라에게 여덟 개를 빼앗겼다. 부상자에게 면담을 강요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녀석은 남은 네 질문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누나가 남긴 표식은 왜 세 번 두드리고 둘을 기다리는 거예요?”
“어릴 때 루안이 달리기를 못했거든.” 베사가 웃었다. “내가 셋 세는 동안 뛰어오고, 둘 세는 동안 숨을 고르라고.”
루안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내가 더 빨라.”
“그럼 내 대신 약국 좀 다녀와.”
남매가 서로 노려보는 동안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박자는 본래 가족이 만든 것으로, 탑의 공식 종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 박자를 이용해 수문 안에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은 종종 이렇게 사소한 장난에서 시작된다.
헤론은 베사의 장화에 붙어 있던 검은 점토를 조사했다. 점토 안에는 물에 닿으면 푸르게 변하는 가는 광물 조각이 있었다. 그 성분은 아린의 지도통 숨은 금속판을 감싸고 있던 이음새의 잔가루와 유사했다. 같은 광맥에서 나온 물건일 가능성은 있지만,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금속판에 남은 세 갈래의 선과 탑의 수로 모형을 나란히 놓았다. 금속판의 마지막 굽이는 연흔 관측소에서 정확히 끝나지 않았다. 그보다 서쪽, 옛 우편소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거 우연입니까?” 내가 물었다.
“우연일 수도 있지.” 헤론이 대꾸했다. “그 가능성을 없애려고 우리가 걷는 거 아니겠느냐.”
옛 우편소는 산 너머 좁은 골짜기에 있었다. 나무 간판에는 ‘먼저 온 사람의 편지를 나중에 온 사람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문 앞의 우편함은 각각 다른 달력을 사용했다. 어떤 함은 아르켄력으로 열두 해 전, 어떤 함은 루메르력으로 멸망 직전, 또 다른 함은 날짜 대신 ‘귀환 다음 날’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우편소를 지키는 사람은 얼굴에 검은 잉크 자국이 있는 노년의 여성 유라였다. 그녀는 지도가 아니라 우리가 신고한 날짜를 먼저 요구했다.
“오늘 날짜가 몇 개입니까?” 내가 물었다.
“여기선 셋이야. 너희가 어떤 일을 확인하려는지에 따라 하나씩 꺼내 쓰지.”
“편지는 언제 배송합니까?”
“수신인이 왔다는 게 확인될 때. 날짜만 맞았다고 배달하지는 않아.”
그 말이 좋았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지도통의 접수표와 아린이 남긴 사본을 보여 주었다. 유라는 장부를 뒤적이다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열두 해 전 ‘아린’이라는 발송명이 적힌 봉투가 한 번 이곳을 거쳐 갔지만, 최종 수령자는 지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우편소는 동명이인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고, 오래된 지도통은 여러 곳을 돌다가 엘루안에 보관되었다.
“그럼 왜 제 이름이 나타났을까요?”
“나는 이름이 언제 나타났는지 몰라.” 유라가 대답했다. “내가 보았을 땐 비어 있었거든. 그걸 증언할 수 있어.”
그녀는 오래된 발송 대장의 먹지 사본을 내밀었다. 수신인은 실제로 공란이었다. 종이에는 최근 덧쓴 자국이 없었다. 레이븐이라는 이름은 지도통이 오늘의 길을 기록한 뒤 생겨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사실 하나를 확인했다는 데 조금 안심했다.
그때 유라는 선반 맨 아래에서 낡은 방수 봉투를 꺼냈다. 봉투의 봉인은 훼손되지 않았고, 겉면에는 ‘분지의 귀환 대조 완료를 본 사람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어제와 다음 날의 확인을 실제로 수행했다. 키오의 날짜표, 아린과 살비의 증언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유라는 확인된 부분을 대장에 적고서야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지도 대신 한 장의 경고문이 있었다.
‘경계선의 종이 모두 같은 날짜를 가리키면 물문을 잠그지 말 것. 낮은 골짜기의 두 다리는 서로 다른 날에 세워졌다. 어느 한쪽을 원본이라 부르면 다른 쪽 사람들은 돌아오는 길을 잃는다.’
미라가 글을 읽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열두 해 전에 저걸 썼다면 당시에도 같은 사고가 있었던 거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사고가 그때랑 같은 원인이라고 확정할 순 없죠.”
유라는 봉투 뒤쪽을 보여 주었다. 작성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보행 확인’, ‘귀환 대기’, ‘원본 보관’ 칸에 서로 다른 필체의 짧은 문장이 있었다.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되지 않은 세 책임이었다. 세 칸 옆에는 ‘0’이라는 빈 원이 있었다. 밤숨 분지 기둥의 표식과 닮았지만 숫자의 뜻까지 같다고 할 근거는 없었다.
우리는 편지를 챙기고 바로 옆 보관 창고로 갔다. 그곳에는 십이 년 전에 사용한 낡은 다리 모형이 있었다. 하나는 높은 암석에, 다른 하나는 계곡 낮은 곳에 놓여 있었다. 모형 옆의 관측 수치에 따르면 두 다리는 동시에 멀쩡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낙성 경계가 이동할 때 한 다리의 발판이 선명해지면 다른 다리의 일부가 사라졌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기의 주민들이 실제로 두 다리를 건넜다는 기록은 있었다.
“이걸 알면서 왜 다리를 하나로 표시했을까요?” 키오가 물었다.
유라는 한참 입을 다물었다. “관리하기 쉽거든. 하나의 다리면 하나의 책임자, 하나의 통행료, 하나의 지도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나는 백동상회의 금색 판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날짜의 사람을 하나의 길 위에 놓으면 종이 한 장으로 돈을 벌 수 있다. 그 종이가 사람을 어디로 보내는지는 두 번째 문제로 밀려난다.
돌아오는 길에 오르반의 전령이 우리 앞을 막았다. 그는 연흔 경계선의 ‘공식 통합 측량’을 다음 날 아침 시행한다며 일행의 현장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베사의 치료 기록과 옛 편지를 내밀지 않았다. 대신 위험 구간을 표시한 임시 통행 중지 권고를 건넸다.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해야 했지만, 증인의 사적인 이야기는 당사자의 허락 없이 넘길 수 없었다.
전령은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지도나 팔고 살던 때가 그립네요.”
미라가 웃었다. “그땐 손님들이 네 멱살을 잡았잖아.”
“지금은 상단과 왕실과 경계작성회가 순번을 정해서 잡죠.”
해가 질 무렵 계곡 아래서 새하얀 안개가 솟아났다. 유라가 마지막으로 건네준 편지의 접힌 자리가 은빛으로 빛나더니, 우리 눈앞의 계곡 위로 두 줄의 희미한 다리가 나타났다. 둘은 나란히 서지 않았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비껴서, 서로 다른 깊이에서 같은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 아래에 적힌 문장은 간단했다.
‘먼저 건넌 다리를 찾지 말 것. 지금 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확인할 것.’
나는 처음으로 다음 날의 통행료보다 더 무서운 것을 보았다. 다리 두 개 모두에서 누군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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