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경계선을 넘지도 않았는데 귀환 확인이 끝났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물론 이 세계에서 앞뒤가 뒤바뀌는 일 자체는 흔했다. 문제는 자연의 변덕과 사람의 조작을 구별하는 데 있었다. 별이 떨어져 어제의 도로가 들판이 되는 일은 우리가 막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지나가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통행 완료 장부에 쓰는 일은 분명히 막아야 한다.
베사는 루안의 어깨를 짚고 계단을 올라왔다. 그녀는 다친 다리를 끌면서도 탑 위의 표지판을 보자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거야. 내가 순찰할 때 붙이려던 판이야.”
“전원이라니, 누굴 세었다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네 이름도 적혀 있었어. 어떤 날짜에든 경계선에 접근한 사람은 전부 통과 예정자로 정리된다고 했지.”
그 말에 키오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아직 길을 고르지도 않은 사람을 고르게 만드는 거네요.”
“정답.” 나는 대답했다. “너는 벌써 나보다 큰 지도 제작자가 됐어.”
“급여도요?”
“그건 아직 어려운 논쟁이야.”
우리는 탑 아래의 좁은 임시 치료소에 베사를 데려다줬다. 지역 의원 토렌은 지혈 매듭을 풀면서 의외의 질문을 했다.
“이 사람, 언제 구조됐습니까?”
“조금 전입니다.”
“그럼 왜 진료 장부에는 어제 치료 완료라고 돼 있지?”
그가 꺼낸 진료표에는 베사의 이름과 부상 부위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다만 진료 시각은 오늘보다 하루 앞선 날짜였다. 토렌은 이런 일을 처음 보는 게 아니라고 했다. 탑이 복구되기 시작한 뒤부터 미래의 날짜가 찍힌 부상표가 자주 도착했고, 그때마다 의원들은 이미 치료했다고 적힌 환자를 다시 치료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의사처럼 보이겠군요.” 내가 말했다.
“게으른 의사는 아니지.” 토렌이 반박했다. “나는 실제로 진료하거든. 문제는 서류에서 의사가 먼저 진료해 버린다는 거야.”
헤론은 표의 발행처가 탑 위 금색 장치와 같다고 확인했다. 우리는 베사를 치료받게 하고, 오늘의 실제 진료 내용을 별도 기록으로 남겼다. 토렌은 미래 시각표를 버리지 않고 봉투에 넣어 보관했다. 위조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증거이자, 언젠가 그 시각이 왜 그렇게 기록됐는지 밝혀야 할 자료였다.
오후에 테온의 이름으로 전령이 찾아왔다. 왕자의 오래된 루메르 왕관 조각에 새겨진 문장이 경계 관문과 일치하므로 그가 통과자 대표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문서였다. 서명자는 경계작성회의 지방 총관 레무스. 문서 아래에는 ‘왕실 후계자의 동의는 경유자 전원의 승인을 대신한다’는 조항이 붙어 있었다.
테온은 그것을 읽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 나라가 사라졌을 땐 아무도 왕자를 찾지 않더니, 남의 이름을 대신 쓸 때가 되니까 왕실을 찾는군.”
“인기가 많으셔서 좋겠어요.” 나는 말했다.
“좋으면 네게 왕관을 줄까?”
“죄송합니다. 저희 가게는 반품 안 되는 왕관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테온은 문서를 접지 않았다. 그 대신 직접 거절 문장을 써서 전령에게 건넸다. 자신은 루메르의 옛 통행 절차를 설명할 수 있지만 현재 주민들의 귀환과 승인을 대표할 권한은 없다고. 전령은 당황하며 다시 서명을 요구했지만, 왕자는 끝내 펜을 놓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연흔 관측소 옆 폐쇄된 공공 쉼터를 조사했다. 루안은 어릴 때 누나와 그곳에서 비를 피한 적이 있다고 했다. 돌벽에는 루메르의 왕실 문장과 같은 형태의 표식이 있었다. 테온은 눈을 감고 오래된 글씨를 읽었다.
“누구든 걸을 수 있는 길을 막지 말 것. 왕관은 기록을 지키되 길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가 읽은 문장은 부서진 모서리 때문에 몇 글자가 없었다. 나는 탑에서 가져온 과거 도면의 문구를 대조했다. 두 자료의 공통 부분은 분명했지만, 빠진 문장의 전체 뜻을 복원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확인된 부분만 베껴 적었다.
쉼터 바닥에는 은빛 별가루가 희미하게 흩어져 있었다. 일부는 돌틈을 따라 길쭉한 선을 만들었다. 나는 지도통의 금속판을 그 위에 겹쳐 봤다. 세 갈래 선 중 하나가 쉼터를 통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판 위에 길이 나타난다고 해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라가 먼저 횃불을 들고 안쪽 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긴 회랑이었다. 천장에는 작은 등잔이 줄지어 걸려 있었고, 돌벽마다 낙성 전에 대피했던 사람들이 적은 이름과 날짜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자기 아들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배를 잃은 사람들에게 담요를 나눠 줬다.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떤 날을 지나갔는지 그들의 손으로 기록한 흔적이었다.
회랑의 중간에서 테온이 멈췄다. 돌 위에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왕의 이름 앞에는 ‘국왕’ 대신 ‘야간 물 운반자’라고 적혀 있었다.
“거짓일 수도 있어.” 테온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답했다. “하지만 확인할 수는 있죠.”
회랑 끝 보관함에는 날짜별 배식표와 지붕 수리 기록이 남아 있었다. 테온은 아버지의 서명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나는 비교할 원본을 요청했다. 그는 오래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두 글씨는 일부 획이 비슷했다. 헤론은 종이의 나이와 안료를 살폈다. 적어도 왕실 문장을 후대에 새로 판 흔적은 없었다.
테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평생 들었던 ‘왕은 마지막까지 왕좌를 지켰다’는 이야기와, 사람들이 도망치는 밤 왕이 물통을 들었다는 기록이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탓이었다.
“아버지는 나라를 살리지 못했어.”
“오늘 여기 기록은 그분이 사람 몇을 도왔는지 알려 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더 중요하겠군.”
바로 그때 쉼터의 바깥문에서 굉음이 났다. 금색 갑옷을 입은 경비들이 통행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레무스는 우리를 향해 왕실 유산을 무단 발굴했다고 외쳤다. 동시에 탑 위에서 금빛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표지판의 ‘귀환 완료’ 글자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일괄 통과 절차가 시작됐다!” 루안이 소리쳤다.
미라가 회랑의 다른 끝으로 달렸다. 우리는 전날 살비에게 받은 사본과 테온이 확인한 수리 기록을 챙기고, 오래전 쓰였던 옆문을 찾았다. 회랑 끝의 문은 바깥에서 걸 수 있는 자물쇠가 없었다. 사람을 가두는 문이 아니라 나가는 사람을 돕는 문이었다.
테온이 왕관 조각을 꺼냈다. 레무스는 먼 곳에서 그것을 보며 외쳤다.
“후계자께서 인증하시면 누구도 위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왕자는 문턱에 왕관을 내려놓았다.
“왕관으로 내가 하지 않은 약속을 할 수는 없소.”
그는 자물쇠 대신 사람들의 손을 잡고 옆문으로 나갔다. 한 명씩 지나간 발자국이 젖은 흙에 남았다. 나는 그 길을 지도에 옮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왕권의 증명이 아니라 오늘 실제로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사람까지 나왔을 때 탑에서 금빛이 번쩍였다. 벽에 박힌 수십 개의 날짜표가 동시에 한 날짜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 우리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회랑 안의 이름들은 빛에 휩쓸려 희미해졌지만 돌바닥의 오래된 발자국은 그대로였다. 글자를 지운다고 걸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발자국이 남았다고 그 사람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뜻도 아니었다. 미라가 내 어깨를 밀었다. “레이븐, 생각은 나와서 해!” 나는 왕자의 팔을 잡고 문턱을 뛰어넘었다. 뒤에서 레무스가 ‘왕실 책임’을 외쳤다. 테온은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오늘 내가 책임질 건 저 안에 아직 남은 사람부터 확인하는 일이오.” 그가 왕관을 다시 줍지 않았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제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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