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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53화
PAYLUA ORIGINAL · 제53화

제53화 - 열두 번째 계단이 사라지는 날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89자

오프라인 책장
“그 종은 문을 여는 신호야.” 어둠 속에서 들려온 말은 탑에서 내려오는 모든 종소리를 한순간에 다른 뜻으로 바꾸어 놓았다. 열려야 할 문이라면 왜 위험할까. 문제는 배수구 밖에서 우리가 보는 문과 안에서 누군가 갇힌 문이 같은 시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있었다. 미라는 즉시 나무막대를 꺼내 배수구 둘레를 두드렸다. 낮고 텅 빈 소리가 왼쪽 벽에서 돌아왔다. 헤론은 수로에 새로 찬 물의 높이를 표시하고, 다음에 물이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테온은 루안을 붙잡았다. “달려들면 둘 다 갇힌다.” “우리 누나야!” “그러니까 네가 살아서 만나야지.” 왕자의 말에는 자기 삶을 잃어 본 사람만의 거친 진심이 있었다. 루안은 입술을 깨물고 배수구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나는 그가 베사에게 다시 소리칠 때 쓰던 호칭을 적었다. 그녀가 실제로 루안의 누나인지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출입대장이 아니라 서로만 아는 질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속을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베사 씨! 저는 레이븐입니다. 밖에 다섯 사람이 있어요. 물이 얼마나 찼습니까?” 잠시 답이 없었다. 그다음 목소리가 거칠게 올라왔다. “무릎 위. 왼쪽 쇠문은 잠겼어. 세 번째 진동이 오면 관문이 반대로 움직여. 위쪽에서 막아야 해.” 나는 그녀가 위험을 설명하는 동안 미라가 밧줄의 끝을 바위에 고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 있을 가능성’과 ‘구조가 가능한 통로’는 다른 문제였다. 미라는 두 번이나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이동을 금지했다. 우리는 지휘관이 내려간 통로의 반대편에 있는 좁은 비상계단을 찾았다. 열한 번째 계단까지는 젖어 있을 뿐 단단했다. 열두 번째에 다가가자 표면이 회색 안개로 풀리듯 사라졌다. 그 아래에는 훨씬 오래된 계단이 한 단 더 있었다. 오늘의 돌이 아니라 낙성 이전의 석재였다. 테온이 무릎을 꿇고 낡은 문양을 살폈다. “루메르의 공공 수로 표식이야. 왕실 소유물이 아니라 주민들이 관리하던 길이지.” 그가 잘못 배운 왕실 문장의 의미를 스스로 바로잡는 순간이었다. 나는 계단과 그 밑의 지면 사이를 재 보았다. 사람 한 명이 뛰어내릴 수는 있었지만, 다친 사람을 들고 올라오기에는 무리였다. 미라는 배낭에서 도르래를 꺼내 난간 자리에 고정했다. 헤론이 양쪽 바위의 속이 얼마나 비었는지 두드려 확인했다. 기구 하나를 설치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번도 거기서 구조된 적 없는 사람뿐일 것이다. 우리가 아래로 내려섰을 때 수로 위쪽에서 금속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앞서 내려간 순찰대가 방수문을 작동한 모양이었다. 지휘관의 고함이 터졌다. “누가 저쪽 관문을 열었지? 보고하라!” 그의 부하 중 하나가 물살에 넘어졌다. 미라는 머뭇거리지 않고 밧줄을 던졌다. 상대가 우리를 막던 경비인지 아닌지는 구조에 필요 없는 정보였다. 젊은 경비가 돌턱으로 올라오자 고맙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물을 토하느라 고개만 끄덕였다. “경고했잖아요.” 나는 지휘관을 향해 말했다. “사흘 전 지도로 오늘의 문을 열지 말라고.” “너희가 장치를 건드렸느냐?” “아닙니다. 저희는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장치가 왜 이 모양인지도 같이 찾을 거고요.” 지휘관은 끝내 우리를 믿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베사가 안에 있다는 말을 듣자 방수문을 작동한 순찰 명령을 다시 확인하러 뛰었다. 그의 금색 판에는 관문이 ‘상시 개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수문 옆의 붉은 손잡이는 내 눈앞에서 스스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기록이 실제 기계를 앞지르는 순간이었다. 키오가 바닥에 떨어진 녹슨 작은 방울을 주웠다. 방울의 몸통에는 베사가 남긴 두 홈 표식이 있었다. 나는 금지 구역의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서도 그 작은 물건은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 입으로 사람에게 경고할 수 없을 때 두드림으로 위치를 알린 것이다. 키오는 배수구에 붙어 세 번 두드리고 두 번 기다렸다. 안쪽에서도 같은 박자가 돌아왔다. “확인됐어요!” 아이가 외쳤다. 미라는 곧장 반박했다. “안쪽에도 그 박자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까지야.” 키오가 풀이 죽었지만 나는 손을 얹어 주었다. 이 녀석이 배운 것은 의심이 아니라 정확성이었다. 우리는 박자의 간격을 기록하고 철판을 들어 올릴 도구를 찾았다. 테온은 오래된 수문에 남은 왕실 정비 구멍을 알고 있었다. 헤론은 종이 울리는 방향과 수문 움직임이 서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첫 종은 관측소의 현재 종, 둘째는 경보용, 우리가 들었던 셋째는 아래에서 사람이 두드리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서로 다른 소리가 한 탑에서 난 듯 들렸던 것이다. 철판의 자물쇠는 금색 인장이 붙은 새 부품이었다. 지휘관이 그것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자신이 관리하는 관측소에 허가되지 않은 장치가 설치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허리의 단검을 빼 들었지만 미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쇠를 베면 물문이 통째로 내려올 수 있어. 고정축을 찾자.” 지휘관은 짧게 숨을 내쉬고 자신의 공구함을 열었다. 순찰대와 우리 일행이 함께 축을 고정하는 동안 나는 다리의 양 끝을 잇는 옛 도면을 펼쳤다. 도면에는 최근 인장으로 덧칠된 부분이 있었다. 원래는 수로 점검용으로만 열리는 문인데 ‘통행 관리 장치’라고 바뀌어 있었다. 경계작성회가 최근 수리했다는 지휘관의 말과 맞지 않는 기록이었다. “문이 열립니다!” 키오가 외쳤다. 철판은 손가락 너비만큼 올라갔다. 그 틈으로 창백한 손이 나왔다. 루안이 달려들었지만 미라가 팔을 붙잡았다. 먼저 판을 고정하지 않으면 아래 있던 사람의 손이 잘릴 수 있었다. 테온과 지휘관이 기둥을 받치자 철판이 조금 더 올라갔다. 베사는 진흙투성이였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오른쪽 종아리에 쇳조각이 박혀 있었고, 외투를 묶어 지혈하고 있었다. 루안이 울먹였다. “누나, 왜 돌아오지 않았어?” “너는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벌써 이틀이야!” 베사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기록대로라면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오늘의 달력과 그녀의 체감 시간을 따로 적었다. 그 차이는 낙성 경계의 영향일 수도,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이 시간을 잃은 탓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베사를 들것에 누이는 동안 그녀는 끝까지 작은 쇳조각을 놓지 않았다. 금색 인장 뒷면에 끼워져 있던 부품이었다. 표면에는 지도에서 보지 못한 숫자와 길이 새겨져 있었다. ‘낙성 전 경계선 — 제영 표시, 전환 시험.’ “이걸 누가 달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어제 점검 온 사람들이.” 베사가 답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길을 하나로 합친다고 했어. 내가 반대하자 문을 닫았지.” 그녀는 스스로 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한 사람의 장화에 새겨진 흰 잎 세 개를 봤다고 했다. 우리는 그 표식이 아린이 건넨 천 조각과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린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루안이 누나의 손을 쥐었다. 나는 그 손들을 보며 지도의 가장자리에 ‘베사 — 구조 후 직접 확인’이라고 적었다. 다음 날에도 그녀가 안전한지 확인해야 오늘의 기록이 완성될 것이다. 우리가 계단을 올라오는 순간, 탑의 지붕 위로 하얀 불꽃이 솟았다. 누군가 세 번째 종이 걸려 있던 빈 고리에 새로운 금속판을 매달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미 오늘 날짜로 찍힌 글자가 보였다. ‘연흔 경계 통과자 전원 — 귀환 확인 완료.’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우리 중 누구도 아직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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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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