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을 찾는 일은 왕도에서 정직한 세금 징수원을 찾는 일만큼 어려웠다. 이유는 달랐다. 우물은 분명히 있었지만, 왕실이 흔적을 덮어 버린 탓이었다.
헤론이 가리킨 장소는 중앙 문서고의 지하층이었다. 출입증도 없이 왕실 문서고에 들어갈 방법을 묻자 미라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앞문으로 가면 됩니다.”
“그건 잠입이 아니잖아요.”
“그럼 앞문으로 소란을 피우고, 당신은 뒷문으로 가요.”
“당신이 소란을 피울 건가요?”
“당신이 피울 거예요. 지도를 팔아 본 적 있죠?”
그렇게 나는 왕실 문서고 앞에서 길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멸하지 않는 길, 선착순 세 분.’ 시민들이 모여들자 경비병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내 입장에서는 사기와 교육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었다. 어제까지의 길만 안내할 수 있다고 크게 써 붙였으니까.
“왕궁 뒤로 가는 가장 빠른 길!”
“하루 뒤에만 열리는 길이면 할인되나요?”
“오늘 쓰실 길이 필요하시면 별도 요금입니다!”
내가 소리치는 동안 미라와 테온은 문서고 후문으로 사라졌다. 헤론은 기침을 하며 경비병에게 말했다. “연로한 전직 관측관이 오래된 출입 기록 하나 찾겠다는데 막을 셈인가?”
병사는 그를 알아보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은 출입 금지입니다.”
“과학의 발전을 막는구나. 마음이 편해지네. 그럼 나도 새 기록을 만들어 주마.”
그가 작은 별가루 병을 문설주에 던졌다.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경비병이 눈을 감은 사이 나는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갔다. 돈을 내고 지도를 산 고객들이 나를 욕할 시간이 없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문서고에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경비병의 순찰 소리를 들었다. 나는 두꺼운 장부를 하나 꺼내 펼쳐 앞에 세웠다. 하필 ‘화재 시 대피 동선’이라는 제목이었다. 책에는 화재가 나면 제일 먼저 왕실 문장을 지키라고 적혀 있었다. 미라가 그 페이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사람보다 도장이 먼저예요?”
“이 문서고에서는 그런 모양이군요.”
복도 끝에서 문이 닫혔다. 우리는 낮은 석상 뒤에 몸을 숨겼다. 경비병 둘은 오늘 발생한 지형 변화를 놓고 논쟁 중이었다. 한 사람은 남문 밖의 채석장을 기억했고, 다른 사람은 그곳에 오래전부터 빵집 마을이 있었다고 말했다. 둘이 똑같은 왕실 제복을 입고도 서로 다른 과거를 믿고 있었다.
“대위님이 분명 채석장이라 했어.”
“내 누이가 거기서 빵을 샀는데 무슨 소리야.”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같은 도시의 경비병에게도 다른 기억이 심어지고 있었다. 왕실의 지도가 모든 이에게 하나의 과거를 강요하기 전에 실제 증언을 남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
미라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복도 벽에는 이미 옛 지도를 가리는 새 표지가 붙고 있었다. ‘정식 기록 외 발언 금지.’ 나는 왕실이 우물을 덮은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지우는 것은 어렵지만, 기록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일은 누군가에게 훨씬 쉬운 것이다.
지하층은 건조했다. 보관함마다 역사 연도가 적혀 있었다. 왕조 개창 이전 기록을 찾자 놀랍게도 선반 전체가 비어 있었다. 문서고는 천 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보다 오래된 아르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테온이 수집함 뒤의 돌바닥을 두드렸다. 울림이 달랐다. 미라는 밧줄을 묶어 대형 보관함을 옆으로 밀었다. 그 아래 둥근 덮개가 나타났다. 가운데에는 별 모양 손잡이가 박혀 있었다. 왕관이 손잡이에서 미세한 소리를 냈다.
“제 고향에서는 왕궁 우물을 봉인할 때 이런 장치를 썼어요.” 테온이 말했다.
“제 고향에서는 먼지 들어가지 말라고 천으로 덮는데요.”
테온은 나를 노려보더니 왕관의 안쪽 문양을 손잡이에 맞췄다. 덮개가 열렸다. 어둠 아래에서 차가운 바람이 솟아올랐다. 물 냄새가 났지만, 우물에는 물이 없었다.
그 안에는 하늘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물 바닥으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내려다보였다. 지금은 한낮이었다. 그러나 우물 속 별자리는 느리게 돌고 있었다. 별들 사이로 낡은 길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홀린 듯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 은색 선이 새로 이어졌다. 세 숫자 중 ‘3’이 빛났다.
헤론이 계단 끝에서 말했다. “첫 번째 붙박이 별. 장소가 아니라 기억의 방향이지. 어느 시대에나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길이 남는다네.”
나는 종이를 들여다봤다. 같은 장소에 서로 다른 시기의 길이 겹쳤다. 아르켄이 세워지기 전의 짐마차 길, 왕궁이 들어선 뒤의 지하 배수로, 아직 건설되지 않은 다리까지. 지도는 미래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겹쳐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럼 소멸 예고도 가능성 중 하나?”
“확정된 예언은 아닐 수도 있지. 문제는 누가 그 가능성을 고정하느냐야.”
우물 속의 별 하나가 갑자기 검게 변했다. 검은 별은 다른 별을 밀어내며 둥근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 속으로 낯익은 건물이 보였다. 내 지도 가게였다. 간판 아래에는 ‘영업 종료’라는 표지가 걸려 있었다.
“미래의 제 가게가 문을 닫네요.”
“그게 더 무서워요?” 미라가 물었다.
“가게는 제가 가진 유일한 부동산입니다.”
그때 계단 위에서 쇠신발 소리가 났다. 아브렌 경이었다. 그의 뒤에는 왕실 검사 둘이 따라왔다.
“멈춰라. 우물은 왕실 봉인 대상이다.”
테온이 앞으로 나섰다. “이곳의 첫 주인은 왕실보다 오래되었는데 누가 왕실에 허락했지?”
아브렌이 미소 지었다. “사라진 나라의 왕자가 살아 있군. 그래서 일이 쉬워졌어.”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병사들의 창끝에 검은 별 모양 문장이 번졌다. 헤론은 뒤로 물러났다. “그 표식은 경계조사국의 것이 아니야.”
아브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 지도를 가리켰다. “네가 본 소멸 문장을 내놓아라. 국가의 미래는 국가가 관리한다.”
“글자가 제 종이에 적혔는데 왜 국가 소유죠?”
“땅이 국가 소유니까.”
“그럼 제가 그린 배는 해군이 가져갑니까?”
“말장난은 그만.”
아브렌이 뽑은 검이 허공을 그었다. 검끝을 따라 우물 속의 별 하나가 지워졌다. 헤론이 경악했다. “그건 관측이 아니라 편집이야!”
나는 깨달았다. 이 남자는 지형을 예측하는 게 아니었다. 어떤 길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있었다. 아브렌은 우물 너머의 밤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왕도 아르켄의 윤곽이 천천히 검은 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라가 내게 외쳤다. “레이븐! 지도를 접어요!”
나는 종이를 접으려다 멈췄다. 접힌 자리에 있는 유리울 마을이 잠깐 사라졌다. 지도 위에서 무턱대고 길을 가리면 실제 길도 잃을 수 있다. 나는 종이를 펼치고 처음 나타난 은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우물 속에 새 길 하나가 나타났다. 왕실 병사들 발밑의 계단이 서쪽으로 돌아갔다. 아브렌이 균형을 잃은 순간 미라가 밧줄을 던졌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붙잡고 우물 너머의 하늘로 몸을 던졌다.
달이 바로 아래에 있는 밤하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우리는 왕도 외곽의 폐쇄된 수로에 떠 있었다. 위에는 낮의 태양이 떠 있었다. 헤론이 젖은 수염을 짜며 웃었다.
“축하하네. 첫 번째 방향을 얻었군.”
내 지도에는 작고 빛나는 점이 생겼다. 하지만 그 옆에 새로운 문장도 적혔다.
[첫 방향 확보. 남은 방향: 2]
아르켄 소멸까지는 여전히 엿새였다. 반대로 아브렌이 쓸 수 있는 검은 별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제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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