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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4화
PAYLUA ORIGINAL · 제4화

제4화 - 사라진 왕국의 왕자에게 청구서가 왔다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19자

오프라인 책장
소년은 어려 보여도 말투는 국왕보다 당당했다. 검은 머리카락, 유리처럼 창백한 얼굴, 한쪽 소매에만 남은 푸른 금실. 옷은 낡았는데 허리춤의 작은 왕관 장식만 눈에 띄게 정교했다. “제 지도요? 전 남의 왕국을 지울 만큼 돈을 많이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루메르의 지도 제작자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지.” “잠깐. 제가 몇 살인지 알고 말하는 겁니까?” 소년은 검은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 별가루가 박힌 흉터가 있었다. 원형으로 돌아가는 열두 개의 점. 헤론이 그것을 보자 얼굴빛이 바뀌었다. “테온 전하.” “전하라는 말은 그만두시오. 이제 왕국이 없으니까.” “전하가 왕국의 존재까지 없앨 수는 없습니다.” 테온은 나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은 마음에 드는군.” 헤론이 설명했다. 루메르는 수십 년 전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한 조각 때문에 지도에서 지워진 왕국이었다. 역사책에는 산사태라 기록되었지만, 테온은 그날 온 도시가 빛 안으로 접혀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고향 이름을 차차 잊었다. 테온은 한 번 지워진 곳에서 귀환한 유일한 왕족이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수십 년 전에도 소년이셨나요?” “네가 해본 질문 중 가장 무례하고 가장 정확한 질문이군.” 테온의 시간은 루메르가 사라진 날에 멈췄다고 했다. 그에게는 겨우 열한 달이 지났지만 바깥에서는 삼십육 년이 흘렀다. 그는 왕관을 묻어 두었다가 아르켄의 새로운 별락을 보고 돌아왔다. “아르켄은 루메르의 일을 반복할 거야. 누군가 도시 하나를 옮겨 놓고, 나중에는 그런 도시가 없었다고 말할 거지.” “그 누군가를 본 적 있습니까?” 테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묻혀 있던 왕관 아래에서 두꺼운 쇠판을 꺼냈다. 루메르의 항로가 새겨진 판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별 모양의 섬이 있고 그 아래에 세 숫자가 적혀 있었다. 3, 7, 0. 미라가 내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은제 고리와 같은 번호였다. “이 판 어디서 났어요?” “궁전 지하 지도실.” “우리 아버지 배에 있던 항로와 같아요.” 미라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열두 해 전 미지의 항로를 찾으러 떠났다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항해일지에 있던 선원 넷의 빈 침대를 떠올렸다. 우연치고는 너무 많은 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테온이 가지고 있던 루메르의 동전 하나를 검사했다. 미라의 배에서 찾은 동전과 문양은 비슷했지만, 왕관 아래에 조각된 별의 개수가 달랐다. 테온은 두 동전을 나란히 놓자 얼굴이 굳었다. “이건 내가 알던 루메르 화폐가 아니야.” “왜요?” “우리 왕국에는 여섯 별의 문장이 있었어. 이건 일곱 개잖아.” 헤론은 고개를 숙여 흠집을 들여다봤다. “루메르가 사라진 이후에도 누군가 저 문장으로 돈을 만든 모양이군. 사라진 나라의 화폐가 유통됐다는 뜻이지.” “그럼 그곳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던 거네요.” 테온은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동전을 빛 쪽으로 들어 올렸다. 겉면의 닳은 문양 안쪽에 작고 굵은 선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로처럼 보였다. 그는 잠깐 울음을 참는 듯 입술을 굳혔다. “왕궁이 무너진 날 어머니가 말했어. 성문이 사라져도 백성이 걸어 다니던 길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고.” “전하의 어머니는 지도 제작자였나요?” “아니. 길을 잃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사람이었지.” 나는 왕관을 들고 공원 끝의 낮은 담을 살폈다. 담 너머로 이상한 풍경이 겹쳤다. 왕도의 현재 골목과 루메르의 오래된 해안도로가 잠깐 같은 방향으로 뻗었다. 기억 속 장소가 뒤섞이는 게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면, 그 길들은 언젠가 서로 통했을 것이다. 테온은 동전을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르켄을 지킬 때 이걸 써. 내 나라의 사람들이 걸었던 길도 함께 기억해 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전 하나로 왕국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런 약속은 지도가 그려 줄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서니까. 우리는 동전을 다시 뒤집어 보았다. 어느 면에도 새로운 왕의 이름은 없었다. 나라의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항로가 대신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수첩에 짧게 적었다. 왕국이 없어진 뒤에도 누군가는 계속 그곳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원 울타리 너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아브렌이 우리를 쫓아온 것이다. 헤론이 망토를 여미며 말했다. “이곳도 오래 못 버틴다네. 붙박이 별의 첫 기준점을 찾아야 해.” “첨탑에 있었잖아요.” “첨탑은 표지일 뿐이지. 기준점은 도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소에 있어.” 테온은 내게 왕관을 내밀었다. “이걸 갖고 가. 루메르에서도 기준점을 찾으려면 왕실의 표식이 필요했어.” “왕관을 쓰면 제 머리가 조금 나아 보일까요?” “입만 다물면.” 우리는 공원 뒷문으로 나갔다. 그러나 골목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가로등이 서 있던 자리에 오래된 가로수가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는 테온을 ‘폐하’라고 불렀다. 테온은 굳은 얼굴로 앞만 보았다. 한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테온의 옷자락을 잡았다. “우리 왕자님. 돌아오셨군요. 왕비님이 아직 기다리십니다.” 테온이 멈췄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반가움보다 공포가 먼저 어렸다. 노인은 루메르의 왕궁 문지기였다고 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도 루메르 성문을 지키고 있었고, 왕비는 점심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가리킨 건물은 아르켄의 낡은 목욕탕이었다. “거짓말입니다.” 테온이 낮게 말했다. “그분이 거짓말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 길이 보여 주는 장소가 정말 그 장소인지는 따져 봐야죠.” 테온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처음으로 나를 적이 아닌 사람처럼 보는 눈이었다. 목욕탕 문이 열렸다. 안에서 왕비의 목소리처럼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테온이 한 걸음 내디뎠다. 나는 그 소매를 잡았다. 지도의 별가루 선이 소년의 발밑에서 검게 변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라질 자리였다. “전하,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문을 만든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먼저 저 문 뒤에 바닥이 있는지 확인합시다.” 나는 돌멩이 하나를 안으로 던졌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노랫소리가 낮아지고, 문 너머에서 바닷물이 천천히 솟았다. 미라가 밧줄을 펼쳤다. 한 번에 테온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가짜 어머니라니.” 테온은 이를 악물었다. “이 세계는 대체 얼마나 잔인한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도는 방금 지나간 골목 자체를 지우고 있었다. 헤론이 아르켄의 가장 오래된 우물에 관한 기록을 말했다. 왕궁이 세워지기 전, 이곳에는 여행자들이 길을 묻던 우물이 있었다. 왕실은 우물을 덮고 그 자리에 중앙 문서고를 세웠다. 도시가 자기 시작을 잊도록 만든 것이다. “우물을 찾아야 한다.” 헤론이 말했다. 테온은 내 손에서 지도를 가져갔다. 그는 검은 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루메르의 왕관이 희미하게 빛났다. “내 나라는 되돌릴 수 없어도,” 테온이 말했다. “네 왕도는 아직 시간이 있겠지.” 나는 일곱 날 후의 문장을 다시 보았다. 숫자가 바뀌어 있었다. [왕도 아르켄 — 6일 후 소멸] 우리가 쉬는 사이 하루가 줄었다. 나는 지도를 닫고 한마디 했다. “이제부터는 왕자가 시간 맞춰 출근해 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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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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