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새로 생긴 첨탑을 보자 세 부류로 나뉘었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부동산 가격이 오를지 계산하는 사람. 나는 지도 제작자이므로 네 번째였다. 첨탑이 정확히 어디에 생겼는지 재러 갔다.
“자살하러 가는 거예요?” 미라가 물었다.
“측량은 위대한 일입니다.”
“위대한 일은 대개 먼저 죽은 사람들이 했죠.”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나를 따라왔다. 중앙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경계조사국 병사들이 관문을 세웠다. 새로 나타난 검은 첨탑은 왕궁에서 정남쪽으로 사백 보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원래 거기에는 시계공 조합의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물이 갑자기 솟아난 이유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분수대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문을 지키던 장교가 미라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항해사. 여기는 바다가 아니다.”
“어제까진 아니었죠.” 미라는 너무나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눈길을 끄는 동안 나는 광장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지도의 나침 바늘이 저절로 돌아갔다. 북쪽을 가리켜야 하는 금속 바늘이 첨탑 앞에서 수직으로 솟았다. 발밑의 포석이 뜨거워졌다. 돌 사이에 은색 별가루가 피처럼 스며 있었다.
첨탑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컸다. 표면은 검었지만 빛을 흡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이 있는 물건의 윤곽을 한순간씩 비추었다. 내 얼굴도 그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제의 내 얼굴이었다. 수염이 조금 덜 자랐고, 왼쪽 뺨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문은 어디 있지?”
검은 돌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봤다. 속이 빈 듯 맑은 울림이 났다. 그런데 벽을 따라 돌 때마다 첨탑의 넓이가 달라졌다. 동쪽에서는 다섯 걸음, 서쪽에서는 열두 걸음. 나는 줄자를 당겼다. 줄자는 같은 길이로 늘어났는데 기록한 수치는 서로 달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첨탑 아래 떨어진 돌 조각을 주웠다. 다른 건물에서 부서져 나왔다면 모서리가 거칠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돌은 물에 오랫동안 닳은 것처럼 매끄러웠다. 길을 안내하던 낡은 표석과 닮았다. 검은 첨탑이 갑자기 생겼어도 그것을 이루는 물질은 아주 오래된 것일지 몰랐다.
“이건 건축물이 아니라 좌표야.”
등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흰 수염에 낡은 천문관 제복을 입은 남자였다. 그는 내가 종이에 적은 숫자를 보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좌표를 먼저 알아보는 지도쟁이는 오랜만이군.”
“정체를 밝히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연세 많은 분들께 사기당한 적이 많아서요.”
“헤론. 전 왕립천문대 관측관이다.”
“전이라면 지금은?”
“쫓겨난 천문학자지. 관측한 걸 관측했다고 보고했거든.”
나는 미라를 찾았다. 병사 둘이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다. 미라는 도리어 병사들의 창끝을 발로 눌러 못 쓰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헤론은 내 손에서 줄자를 빼앗더니 첨탑 그림자에 대었다.
“그림자의 끝을 봐.”
그림자는 왕궁을 향하지 않았다. 광장 뒤편의 좁은 골목을 향하고 있었다. 그 골목 끝에는 시계공 조합의 폐창고가 있었다. 헤론이 말없이 그쪽으로 걸었다. 나는 뒤따라가며 물었다.
“저 첨탑이 왕도를 지우나요?”
“가능하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지운다’는 말에만 정신이 팔려. 별이 옮기는 것과 지우는 것을 구별해야 해.”
“왕도가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지나요?”
“그건 누가 지도 위에 남느냐에 달렸네.”
그는 창고 문을 열었다. 내부에는 먼지가 쌓인 시계 장치가 수십 개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계가 모두 같은 때를 가리켰다. 일곱 날 뒤 정오. 톱니바퀴가 돌아가지 않는데도 초침은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헤론은 천문도를 펼치기 전 낡은 수첩 하나를 내밀었다. 표지에는 왕립천문대의 문장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첫 장에는 숫자 대신 그림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성벽, 아이가 서 있는 마당, 밤마다 방향을 바꾸는 창문. 모두 낙성 뒤에 사라진 장소들의 마지막 관측 기록이었다.
“이 사람들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일부는. 그날 내가 관측을 계속했더라면 돌아왔을지도 모르지.”
나는 검은 안개에 잠긴 도로의 그림을 보았다. 옆에는 어린아이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헤론은 그 이름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별의 위치를 재는 동안 아이들이 성문을 넘는 걸 놓쳤다네. 당시에 나는 정확한 측량이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믿었지.”
“지금은 생각이 다르세요?”
“측량은 여전히 중요하다네. 다만 아무도 길을 걷지 못한다면, 그 숫자가 얼마나 정확하든 지도는 실패한 거야.”
헤론은 나를 끌고 창고 뒤편의 측정실로 갔다. 작은 태엽 장치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하나는 현재의 별을, 다른 하나는 사라진 별을 표시했다. 둘이 겹치는 순간마다 장치 옆의 잉크가 하얗게 변했다. 그는 내게 하나의 바늘을 돌려 보라고 했다. 내가 현재의 아르켄에 맞춰 놓자 사라진 별 쪽 바늘이 미세하게 어긋났다.
“관측에는 오차가 있죠.” 내가 말했다.
“오차가 존재하는 한, 누군가가 틀렸다고 결정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아브렌은 그 일을 자기 혼자 맡았어.”
나는 헤론의 오래된 수첩을 접었다. 남들이 비웃는 노인이 왜 금지된 지도를 아직도 들고 다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는 실수를 되돌리려는 사람이었다. 다만 자기 손으로만 되돌릴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는 점이 아브렌과 달랐다.
헤론이 내게 낡은 천문도를 펼쳐 보였다. 별자리 중앙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는 왕도 아르켄보다 훨씬 오래된 도시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낙성 때마다 새로운 땅이 나타나는 게 아니야. 어떤 땅은 오래전에 사라진 자리에서 돌아오기도 하지. 그 땅에는 누군가의 하루가 그대로 남아 있어.”
나는 유리울의 빵 굽는 냄새를 떠올렸다. 그 마을은 오늘 생겼지만 에린의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거기서 살았다.
“그럼 왕도가 소멸한다는 문장은?”
“한 장의 지도에서는 그럴 수 있다네. 다른 장에서는 어떨까?”
그는 내게 질문만 던졌다. 천문학자들은 누가 질문을 하면 더 어려운 질문으로 대답하도록 훈련받는 모양이었다.
그때 창고 지붕이 부서졌다. 검은 깃발을 든 병사 넷이 뛰어내렸다. 선두에는 어제보다 더 낡은 옷을 입은 장교가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왕실 경계조사국의 은색 문장이 빛났다.
“헤론. 금지 천문도를 내놓아라.”
헤론은 웃었다. “아브렌 경이 직접 올 줄 알았지.”
“그리고 지도 제작자.” 장교가 나를 가리켰다. “너는 왕궁으로 함께 가야 한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도망칠 길은 지붕과 문, 둘뿐이었다. 그런데 작업실에서 늘 하던 일을 생각하니 세 번째 길이 떠올랐다. 지도가 없다면 길을 직접 만들면 된다.
나는 바닥에 은색 잉크를 엎었다. 금지 천문도의 빈 구멍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바닥에 낯선 골목 하나가 번져 나갔다. 문짝도 창문도 없던 벽에 좁은 틈이 생겼다.
“저건 내일의 문이다!” 헤론이 외쳤다.
“그럼 오늘은 공짜로 쓰겠습니다!”
우리는 그 틈으로 뛰어들었다. 벽은 젖은 종이처럼 부드러웠다. 뒤에서 검이 돌을 긁는 소리가 났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굴렀다.
눈을 뜨자 왕도 바깥의 오래된 공원이었다. 그러나 공원의 가운데에는 망가진 왕관이 묻혀 있었고, 그 왕관을 쥔 소년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븐이군.” 소년이 말했다. “당신 지도가 내 나라를 두 번 죽였어.”
제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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