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적힌 지도를 만든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도착한 건 우편물 보관소였다.
나는 운명을 믿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오래된 종이와 빚을 잔뜩 안겨 주려고 우주를 설계한 것 같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밤숨 분지 북쪽의 오래된 창고는 원래 화물을 말리던 곳이었다. 지금은 경계작성회가 일부를 빌려 쓰고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주민들이 버리지 않은 우편함이 가득했다. 키오는 그 우편함을 보자마자 눈빛이 달라졌다.
“아저씨, 이건 엄청난 곳이에요!”
“저도 알아요. 종이 먼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오면 대단히 위험한 곳이겠죠.”
“전부 주소가 남아 있어요. 사라진 도시 이름도요.”
그 말에 농담을 멈췄다. 나무함 가장자리에는 루메르, 아르켄, 여백항,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 몇 개는 현재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없는 지명이었다. 그러나 우편함이 있다는 것과 그 도시가 실제로 한때 존재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주소가 잘못 적혔을 수도 있었다.
보관소를 지키는 사람은 키가 작은 노파였다. 검은 장갑을 낀 손에 붉은 실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이름을 묻자 ‘타라’라고 답했다. 십이 년 전부터 이곳을 지켰다고 한다.
“그럼 이 지도통도 보셨을까요?” 내가 물었다.
노파는 통을 보더니 손을 멈췄다. 뚜껑의 작은 파임을 손끝으로 확인하고, 나를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이 통은 보관했던 적이 있다.”
나는 숨을 골랐다. 처음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누가 가져왔습니까?”
“열두 해 전의 겨울, 여자 둘이 가지고 왔지. 한 사람은 젖은 외투를 입었고 다른 사람은 오른손에 붕대를 감았어.”
“이름은요?”
“접수표에 적혔을 거다. 내가 그들이 누구인지 직접 확인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보관 장부를 꺼냈다. 그곳에는 ‘지도통 1개, 복행 시험 사본 3부, 반환 대기’라고 적혀 있었다. 수신인은 공란이었다. 발송인의 이름도 흐릿한 잉크 아래 가려져 있었다.
키오는 먼저 접수 날짜와 장부의 제본을 확인했다. 오래된 장부라면 나중에 끼워 넣은 종이가 없는지 살펴야 했다. 그는 실의 색이 중간부터 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타라는 몇 해 전 습기가 차서 일부를 다시 묶었다고 설명했다.
“그럼 재제본했을 때의 기록도 있나요?” 키오가 물었다.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별도 영수증을 꺼냈다. 거기에는 손상된 페이지 번호와 다시 묶은 날짜가 적혀 있었다. 키오는 그 자료까지 사본으로 만들었다. 열두 해 전의 기록이라는 주장에 한 단계 더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전달자의 신원은 미확정이었다.
타라는 우리에게 작은 보관 상자를 보여 주었다. 상자 안에는 둥근 황동 고리 두 개와 낡은 밧줄 매듭이 있었다. 지도통을 감쌌던 고정끈이라고 했다. 미라는 매듭을 보더니 손이 멈췄다.
“이거, 내 동생이 쓰던 방식이야.”
우리는 모두 그녀를 바라봤다. 미라는 고리를 들고 오래된 실의 꼬임을 확인했다. 동생은 어린 시절 선실에서 줄을 잘못 묶어 혼날 때마다 끝을 세 번 뒤집어 감았다고 했다. 이 매듭도 비슷했다.
“확실해?” 내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 미라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도 배울 수 있는 매듭이야. 하지만 확인할 이유는 생겼어.”
타라는 오래된 조각 배표를 찾아 주었다. 그 표에는 출항지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날짜와 선실 번호는 남아 있었다. 번호는 일곱이었다. 미라는 자신이 보관한 항해일지에서 같은 날짜의 기록을 찾아봤다. 그날 그녀의 동생이 탄 것으로 알려진 배가 출항했던 건 맞았다. 다만 배표의 선실 번호는 지워져 있어 직접 대조는 불가능했다.
테온은 조용히 옆에서 기다렸다. 루메르의 이름이 적힌 함도 보였지만 그는 서둘러 열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먼저 타라의 허락과 보관 규칙을 물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작게 웃었다.
“왕관으로 길을 살 수 없다더니 우편함도 마찬가지겠지.”
“드디어 제 직업교육이 효과를 보는군요.”
그때 창고 바깥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검은 별 깃발을 단 수레가 세 대 멈췄다. 경계작성회 감사관 오르반이 직접 내려왔다. 그는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레이븐. 사본을 가지고 나와라.”
“무슨 사본 말씀이십니까?”
“열두 해 전 지도통의 접수 사본. 그건 경계작성회 보관 자료다.”
타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원본은 마을 보관 계약에 속한다. 작성회는 임대인이 아니야.”
오르반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금색 인장이 찍힌 매입 문서를 꺼냈다. 창고 전체를 경계 안전 시설로 넘기는 계약이었다. 그러나 문서에 기재된 매도자는 오래전에 사망한 창고 주인이었다. 타라가 자신이 직접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사망한 사람이 계약서를 썼다고?” 테온이 물었다.
“과거 계약의 갱신입니다.” 오르반이 답했다.
“그럼 원계약과 갱신 권한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오르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뒤에 선 경비들이 문으로 움직이자 미라가 타라와 우편함 사이를 막았다.
“사람을 밀지 마.”
“법에 따른 수거다.” 경비가 말했다.
“사람을 다치게 할 법은 너희 지도에도 표시돼 있나?”
상황은 급박해졌다. 오르반은 문서를 확보하라며 경비들에게 지시했다. 그 사이 창고의 뒤쪽 문이 흔들렸다. 금속 고리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탓에 강한 바람을 맞자 열리기 시작했다. 뒤편에는 분지 아래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우편함들이 쌓인 선반이 기울었다.
나는 오르반과 싸우는 대신 선반으로 달려갔다. 키오가 앞쪽을 받쳤고 테온이 낡은 가로대를 어깨로 밀었다. 미라는 밧줄을 기둥에 감아 문을 고정했다. 경비 두 명도 넘어지는 상자를 피하려다 결국 우리를 도왔다.
“오른쪽부터 내려!” 미라가 소리쳤다.
“원본 우편함은 건드리지 마!” 타라가 외쳤다.
우리는 먼저 사람이 깔리지 않도록 통로를 만들고, 그다음 떨어질 위험이 있는 상자부터 낮은 곳에 옮겼다. 소란이 끝났을 때 오르반의 금색 인장 상자가 바닥에 굴러 있었다. 그는 그것을 챙기면서 우리에게 다시 회수 명령을 내렸다.
“네가 나를 막아도 이 기록들은 언젠가 공통 지도로 통합될 거야.”
“통합이 나쁜 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날짜와 사람을 지우면서 하나로 만드는 건 지도 제작이 아니라 위조예요.”
오르반은 대답 대신 돌아섰다. 그는 우리가 이미 확보한 것은 사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타라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 있어 강제로 창고를 가져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창고가 다시 조용해진 뒤 타라는 나에게 더 작은 접수표를 보여 주었다. 지도통이 처음 도착했을 때의 운송 전달증이었다. 수신란에는 이름 대신 ‘돌아오는 길을 확인할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전달자의 이름 칸 아래에는 글자 하나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아린.’
미라는 그 이름을 보고 숨을 멈췄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 이름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예전에 동생과 함께 항해했다는 여성 항로사의 이름과 같다고 했다. 그 사실이 실제 같은 사람임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아린을 찾아야겠네.” 헤론이 말했다.
나는 수첩에 확인된 것과 미확정인 것을 나눠 썼다. 타라가 지도통을 보관했던 사실, 과거 접수에 ‘아린’이라는 이름이 남았다는 사실, 미라가 아는 항로사와 연결될 가능성. 그 셋은 같은 문장으로 합칠 수 없었다.
타라는 우리가 떠나기 전 지도통을 다시 살폈다. 그러더니 뚜껑 안쪽을 눌러 작은 나사를 풀었다. 내 손에서 몇 달을 보낸 물건인데 그곳에 숨겨진 홈이 있는 줄 몰랐다.
홈 안에는 아주 얇은 금속판이 들어 있었다. 금속판에는 글자가 아니라 손으로 그린 작은 길이 새겨져 있었다. 세 갈래의 길이 만나 한 번 되돌아가는 그림이었다.
“이건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내가 물었다.
“밤숨 분지의 기록실로 가는 마지막 돌아오는 길이지.” 타라가 답했다. “다만 열두 해 전에는 여기서 끝난 걸로 기록했어. 그 뒤에도 이어졌는지는 누가 다녀와 봐야 알 거야.”
나는 그 금속판을 지도통의 원래 홈에 다시 끼웠다. 지도통의 비밀이 하나 풀렸지만 내 이름이 왜 거기에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해가 지기 전 키오가 타라에게 보관증을 다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노파는 작은 종이에 ‘원본은 여기 있고 사본은 귀환길 확인자에게 전달함’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 문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오늘 구한 것은 오래된 금속판 하나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실제로 맡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날 밤 지도통의 숨은 홈에서 작은 울림이 났다. 금속판의 세 갈래 선 중 한쪽이 은빛으로 번졌다. 우리가 걸어본 적 없는 길은 여전히 빈 선이었다. 다만 그 끝에 문장 하나가 나타났다.
‘아린이 남긴 것은 지도 한 장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비워 둔 약속이었다.’
나는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것을 읽는 순간부터 밤숨 분지의 밤이 조금 더 길게 느껴졌다.
제4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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