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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46화
PAYLUA ORIGINAL · 제46화

기억을 사고파는 지도 시장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815자

오프라인 책장
밤숨 분지의 시장에는 아주 특이한 가게가 있었다. 물건을 사려면 돈을 내면 됐지만, 길을 사려면 자기 기억을 이야기해야 했다. 기억이 짧으면 가까운 길을, 기억이 길면 먼 길을 판다는 것이었다. “그럼 저는 길을 하나도 못 사겠네요.” 내가 말했다. “왜?” 미라가 물었다. “제 기억은 전부 지도에 적혀 있어서요. 이미 공개된 자료는 값이 싸겠죠.” 상인은 우리 말을 듣고도 웃지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장부를 펼쳤다. ‘귀환 증언의 독점 사용권’이라고 적힌 계약서였다. 우리가 분지를 조사하려면 장터를 지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은 두 언덕 사이의 낮은 석판 위에 세워져 있었다. 천막마다 서로 다른 날짜가 붙어 있었다. 어떤 상인은 오늘 도착했다고 했고, 다른 상인은 내일 아침에 떠날 사람의 짐을 보관해 준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 단순히 날짜가 잘못 적힌 것인지 먼저 대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인 이름은 베르탄이었다. 나이보다 깨끗한 장화를 신고 있었고 손에는 푸른 유리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쥐었다. 그는 테온의 왕관 조각을 보고 먼저 값을 매기려 했다. “루메르 왕실의 기억이라면 충분한 대가가 될 겁니다.” “내 왕국은 매물로 내놓지 않았소.” 테온이 답했다. “왕국이 아니라 기억을 사는 겁니다.”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면 같은 말이겠지요.” 베르탄은 미라에게도 접근했다. 오래전에 실종된 동생과 관련된 항해 기록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낡은 이름표를 꺼냈다. 거기에는 미라가 한 번도 남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배의 항로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미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손이 가방 끈을 세게 움켜쥐는 모습을 보았다. “그걸 어디서 얻었죠?” 그녀가 물었다. “증언 하나면 알려 드립니다.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날의 바람 방향과 당신의 항해 일지.” “서류를 보여 주세요. 먼저.” “거래가 성립된 뒤에요.” 그는 사람의 절박함을 계산하는 데 익숙했다. 내가 보기에도 능숙한 상인이었다.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미라, 일지를 내줄 필요 없어.” 내가 말했다. “알아.” 그녀가 답했다. “하지만 그 이름표는 진짜 같아.” “진짜 이름표를 누가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아직 모르잖아.”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지를 가방 안에 도로 넣었다. 베르탄이 웃었다. “안타깝군요. 기회는 오늘뿐입니다.” “그 말을 너무 자주 하시네요.” 내가 말했다. “장사에선 좋은 전략이지만 기록 조사에는 별로입니다.” 그는 내 지도통을 가리켰다. “당신은 그 통 때문에 여기 왔지요. 열두 해 전의 지도통이 누구 손에서 돌아왔는지 아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살펴야 했다. “그것도 살 수 있습니까?” “기억 한 조각이면요.” “저는 위조 지도 관련 증언을 팝니다. 대신 자료의 출처를 밝히세요.” 베르탄은 잠시 내 얼굴을 보다가 장부를 덮었다. 원하는 방식의 거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장 아래쪽에서 비명이 났다. 두 천막 사이의 돌판이 갈라지며 장난감을 팔던 소년이 다리를 빠뜨렸다. 사람들은 일제히 금색 표지판을 향해 달렸다. 표지에는 ‘안전한 우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눈으로 보니 그 방향의 다리에는 이미 커다란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쪽 말고 왼쪽!” 미라가 외쳤다. 상인들은 처음엔 움직이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힌 안전길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발밑이 갈라졌는데 계약서가 뭘 해 줍니까!” 우리는 왼쪽의 낮은 돌벽을 이용했다. 미라가 소년에게 밧줄 끝을 던졌고 테온이 반대쪽을 잡았다. 키오는 시장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나게 했다. 헤론은 바닥의 균열이 퍼지는 속도를 재고 안전한 거리를 표시했다. 소년이 겨우 올라왔을 때 베르탄의 장부가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 몇 장이 펼쳐졌다. 거기에는 오늘 팔겠다는 길들이 이미 어제 ‘귀환 완료’로 처리돼 있었다. 실제 이동 기록은 별도로 없었다. “참 빠르게 끝내셨군요.” 내가 말했다. “손님이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그는 종이를 주워 들려고 했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구하던 상인 두 사람에게 방금 무엇을 봤는지 확인했다. 그들은 날짜와 완료 도장을 직접 봤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각자의 수첩에 해당 내용을 적었다. 증거를 보존하는 방법은 종이 한 장을 빼앗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터가 잠잠해진 뒤 베르탄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당신들이 본 건 영업 방식이오. 손해가 나지 않게 예정 경로를 미리 정산하는 거지.” “그렇다면 ‘예정’이라고 적으세요.” 내가 대꾸했다. “완료라고 쓰는 순간 그 길에 아직 있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베르탄은 말없이 장부를 접었다. 그때 그의 지팡이에 달린 유리구슬이 붉게 빛났다. 나는 구슬 안에 낡은 종이 조각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루메르 회랑의 벽화에 그려져 있던 작은 나뭇잎 세 점과 같은 문양이었다. “그 구슬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오래된 지도회에서 받은 것입니다.” “첫 답사자들의 모임이요?” “그 사람들이 무슨 이름을 썼는지 모르겠소. 다만 돌아온 지도를 보관하고 값을 매기는 사람들이었지.” 그는 내게 구슬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높은 값을 제시했다. 나는 거절했다. 미라도 거절했다. 테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왕국이 없고, 자넨 돈이 없고, 우리는 정보가 없군.” “전하, 적어도 셋 중 두 가지는 확실하네요.” 내가 대답했다. 살비는 베르탄의 지팡이를 멀리서 두드리는 소리로 기억해 냈다고 했다. 예전에 같은 소리를 낸 작은 장치를 밤숨 분지의 기록실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기록자들이 귀환자와 대기자를 대조할 때 그 구슬을 책상 위에 놓았다고 말했다. “그럼 그것은 길을 파는 도구가 아니라 증언을 맞추는 도구였을 수 있겠군요.” 헤론이 추정했다. “추정일 뿐이야.” 살비가 말했다. “그걸 확인하려면 원래 장부를 봐야지.” 시장 뒤편 창고에는 오래된 돌판 하나가 있었다. 베르탄은 그것을 자기 장터의 출입 표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아가 아침에 들려준 풍차 수리 기록에는 같은 돌판이 ‘귀환 대조표’라고 나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설명을 기록했다. 그 차이만으로 소유권이 결정되지는 않았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미라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 이름표를 왜 믿지 말라고 했어?” “믿지 말라고 한 게 아니야. 네 동생의 것이 맞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름표 하나를 믿느라 네가 가진 모든 기록을 내줄 필요는 없잖아.” 그녀는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내 동생은 이름표를 배에 남기고 내렸어. 그 뒤에 없어졌지. 누군가 그걸 주웠다면 정말 그 길을 알 수도 있어.” 나는 처음 듣는 사실을 적지 않았다. 그녀가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무조건 내 수첩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라는 그 점을 알아차렸는지 웃었다. “고맙다.” “뭘요. 저는 아직 동생분의 이름도 모르는데.” “나중에 말해 줄게. 내가 직접 확인하면.” 해질 무렵 마을 입구에 새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백동상회의 인장이 찍힌 금색 판이었다. 밤숨 분지의 모든 귀환 기록을 ‘안전 항로 복구 사업’ 명목으로 회수하겠다는 공지였다. 그 아래에는 오래된 서체로 작은 문장 하나가 남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자리는 값을 매기지 않는다.’ 누가 그 글을 지우지 못하게 보존했을까. 나는 탁본을 뜬 뒤 원래 돌판을 확인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길을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우리의 싸움 상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시장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아직 귀환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 줄 빈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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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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