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소리를 듣고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첩을 덮었다.
밤숨 분지에는 시계가 세 개 있었다. 내 주머니시계는 아침 여섯 시를 가리켰다. 헤론의 천문시계는 저녁 일곱 시에 멈춰 있었다. 창고 벽의 나무시계는 아예 시침이 없었다. 이곳에서 시각을 하나로 정하는 건 지도 위에 산 세 개를 겹쳐 놓고 모두 같은 산이라고 주장하는 일과 비슷했다.
“하나만 믿고 행동할 수는 없네요.” 내가 말했다.
미라는 창고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그러면 순서를 기록해. 밥 먹고, 종 울리고, 네가 투덜거리고.”
“그 순서로 쓰면 제 전문성이 너무 낮아집니다.”
“그래도 틀린 건 없잖아.”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창고에서 쉬었다. 정확히 말하면 창고 밖의 빛이 다시 밝아질 때까지였다. 라곤은 잠들기 전 분지의 시간은 돌아온 사람의 증언으로만 비교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서로 다른 시계를 맞추려다 수십 년 전 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사건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침의 빛 아래 우리는 고장 난 풍차를 향했다. 풍차는 바위보다 낮은 분지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날개 하나는 부러져 있었고 나머지는 바람이 없는데도 조금씩 회전했다. 풍차 아래에는 둥근 돌로 만든 수리 구덩이가 있었다. 미라가 구덩이에 돌을 떨어뜨리자 곧바로 물소리가 돌아왔다.
“여기 아래 강이 있어.”
헤론은 머리를 갸웃했다. “이 대륙에서 강은 별이 지나간 경로를 따르기도 해. 하지만 지금 들은 물소리가 실제 흐르는 물인지는 확인해야지.”
우리는 밧줄에 작은 금속추를 달아 내렸다. 열두 자 아래에서 젖은 돌을 만졌다. 추를 올리니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번에는 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때 아래에서 사람이 기침했다.
미라가 곧장 몸을 숙였다. “들리십니까? 저희는 수색하러 왔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저녁이야? 아니면 다음 날 아침이야?”
“우리는 아침에 출발했습니다.” 내가 답했다. “당신께서 보신 마지막 빛은 어땠나요?”
“붉었다. 바퀴를 고칠 때. 나도르라는 사람을 찾는 거라면 여기 있어.”
리아가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러나 미라가 그녀를 붙잡았다. 누구라고 말했는지와 실제로 누구인지는 다를 수 있었다. 우리는 수리공만 알 수 있을 질문을 하나 하기로 했다.
“나도르 아저씨, 지난번 풍차의 세 번째 톱니에 뭐가 끼었죠?” 리아가 물었다.
“네가 두고 간 작은 노란 머리핀. 바퀴를 열어 보니 거기 있더라. 네가 미안하다고 했지.”
리아는 그제야 안도했다. 그래도 밧줄을 내리기 전 구덩이의 벽을 확인했다. 아래에서 위로 이어진 경첩 길은 두 구간이 살아 있었고 세 번째는 무너져 있었다. 미라가 직접 내려가 임시 고정줄을 걸었다. 테온은 위에서 받침을 만들고 살비는 나무 바닥의 울림이 변하는지 들었다.
나도르가 올라왔을 때 그의 수염에는 하얀 결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한 시각쯤 아래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리아의 기록상 그는 이틀 전 아침에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두 진술이 달랐지만 어느 쪽을 거짓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시간이 제 발목을 잡았군.” 나도르가 말했다.
“잘 잡은 건 아니네요. 저희가 겨우 빼냈으니까요.”
그는 웃었다. 이어 자신의 주머니에서 뭉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고장 난 풍차의 수리 도면이었다. 도면 한쪽에는 ‘귀환 다음 날에 점검할 것’이라는 주석이 있었다.
“이건 누가 썼습니까?” 나는 물었다.
“아주 오래된 도면이야. 수리실에서 물려받았지. 대여섯 해 전에는 없던 문장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더군.”
나는 종이를 빛에 비췄다. 잉크의 색은 다르고 종이의 눌림도 달랐다. 적어도 한 사람이 한 번에 쓴 글씨는 아니었다.
나도르는 창고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분지의 지형을 조사하는 일을 당장 사람 목숨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리아가 약상자에서 마실 물을 꺼내 주자 그는 손을 떨며 받았다.
“그 아래에 다른 사람도 보셨나요?” 헤론이 물었다.
“사람은 못 봤어. 하지만 문이 하나 있었지. 문 뒤에서 연필 긁는 소리가 났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래된 기록실을 찾는 원정에서 연필 긁는 소리는 누군가의 흔적이었다. 그래도 소리만으로 사람의 존재를 단정해서는 안 됐다. 풍차 아래 쇠바퀴가 벽을 긁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나도르가 준 도면을 확인했다. 풍차 아래 수로가 분지의 동쪽 벽으로 이어진다는 구간은 그가 직접 수리했던 부분과 일치했다. 그 너머는 오래된 사본에만 있었다. 미라는 무너진 사다리를 고치지 않은 채 그 아래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는 먼저 동쪽 비탈에서 수로의 다른 입구를 찾기로 했다.
비탈에는 잘린 갈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상했다. 밤숨 분지의 갈대는 물속에서 자랐고, 이곳의 갈대는 마른 흙 위에 놓여 있었다. 살비가 한 줄기를 만지더니 바삭하게 부서뜨렸다.
“사람이 묶었던 끈이 있네.”
갈대 끝에는 세 가닥을 꼬아 만든 매듭이 있었다. 미라가 매듭을 보고 말했다. “항해사들이 배를 묶을 때 쓰던 옛 방식이야. 지금은 거의 쓰지 않아.”
테온은 갈대 아래 숨겨진 작은 나무판을 꺼냈다. 한쪽에는 루메르의 옛 항구 도장이, 다른 쪽에는 날짜 대신 ‘돌아온 다음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 왕국의 물건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왕국의 물건인 건 맞을지 몰라도 여기 놓은 사람은 아직 모르죠.” 내가 말했다.
테온은 판을 가져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손을 멈췄다. 자신의 과거가 남의 현재를 마음대로 가져갈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왕관으로 길을 살 수 없다고 말했던 그가 스스로 배운 셈이었다.
우리는 판을 발견 위치에 두고 탁본과 사진 대신 직접 손으로 그린 모양 기록을 남겼다. 내가 오래된 도장을 베끼자 헤론은 바깥 테두리의 작은 점을 가리켰다. 세 점, 일곱 칸, 비어 있는 가운데. 3·7·0과 닮았지만 동일한 표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분지의 바닥이 다시 움직였다. 언덕이 낮게 내려앉고 수로의 물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침에 걸었던 돌다리가 더는 지상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라가 묶어 둔 밧줄이 물 위로 떠 있었다.
“돌다리가 없어졌어요.” 키오가 속삭였다.
“돌다리는 가라앉았어. 밧줄은 남아 있어.” 미라가 수정했다.
그녀는 밧줄을 잡아당기지 않고 물의 흐름을 살폈다. 아래에 걸린 고정말뚝이 아직 움직이지 않는지 확인한 다음 가장자리를 따라 우회했다. 나는 그들이 실제로 통과한 방향을 새 지도에 표시했다. 이전 길의 선은 지우지 않았다. 대신 날짜를 적고 ‘현재 침수’라고 덧붙였다.
나도르가 창고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약속대로 저녁 수프를 나눠 먹고 리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았다. 수리공의 귀환은 오래된 도면의 문장보다 확실한 오늘의 사건이었다.
그날 밤 풍차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세 번, 이어 일곱 번. 마지막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살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들리나? 3·7·0이라는 표식은 문을 여는 주문이 아닐 수도 있네.”
나는 대답 대신 수첩을 펼쳤다. 세 명의 기록자, 일곱 명의 귀환자, 소멸된 좌표 영. 우리가 얻은 해석은 유용했지만 아직 모든 장소에서 옳다고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풍차 아래에서 돌아온 건 나도르였다. 그러나 그의 도면에 적힌 ‘귀환 다음 날’이 가리키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도르가 잠들 무렵 그의 도면 뒷면에서 마른 흙이 떨어졌다. 그 아래 아주 옅은 글자가 나타났다.
‘밤숨 기록실 — 첫 답사자의 마지막 귀환 확인을 위해 보관.’
우리가 찾던 기록실은 분지의 바깥이 아니라, 매일 아침 물길이 달라지는 그 수로의 끝에 있었다.
제4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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