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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40화
PAYLUA ORIGINAL · 제40화

첫 지도를 그린 사람들은 돌아왔다

별가루 지도 제작자 · 4,817자

오프라인 책장
증언 보관실에 들어가려면 먼저 자기 이름을 잊어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는 그런 규칙이 실제라면 입장을 거부할 생각이었다. 이름이 자꾸 남의 도장에 찍히는 것도 억울한데 내 이름을 직접 잊으라니, 노동조건이 너무 나빴다. 다행히 문 앞의 표석에는 다른 말이 적혀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사실이라고 강요하지 말 것.’ “이건 지킬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미라가 대답했다. “하루에 세 번쯤 실패하던데.” “조금 연습하면 됩니다.” 원형 극장에서 나온 뒤 우리는 산의 동쪽 벽을 따라 내려갔다. 어젯밤 네 번 올라온 붉은 신호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위벽에 짧은 붉은 끈이 걸려 있었다. 끈은 오래되지 않았고 매듭도 최근에 묶였다. 누군가 실제로 이곳을 지나간 흔적이었다. 미라는 끈을 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돌아갈 때 같은 매듭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테온이 다친 팔을 움직여 보였지만 어제의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우리는 속도를 늦췄다. 헤론은 곧장 도서관으로 가고 싶어 했으나 미라가 그를 말렸다. 기록은 급하지 않았다. 사람의 팔은 급했다. 산벽이 꺾인 곳에 낡은 문이 있었다. 쇠문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대신 손바닥 모양의 표식 세 개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빈칸 일곱 개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에는 아무 표식도 없는 원 하나가 있었다. “셋, 일곱, 영.” 키오가 중얼거렸다. 나는 곧장 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가 그 기호를 여러 곳에서 보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문에서 같은 의미로 쓰였다는 보장은 없었다. 살비가 표식을 만졌다. “이것은 열쇠가 아니라 질문일세. 누구의 발걸음이었나. 누가 돌아오길 기다렸나. 누가 기록했나.” 키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일곱은요?” “예전에 여기서 일곱 명이 돌아오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일곱 길을 확인했다는 뜻일 수도 있고요.” 내가 덧붙였다. 우리는 하나의 답을 고르지 않았다. 키오는 우편함에서 얻은 반송표를 꺼냈고 나엘은 귀환 확인실의 사본을 펼쳤다. 두 기록을 대조하니 빈칸 일곱 개는 오래된 ‘대기자 기록 칸’과 배열이 같았다. 다만 그게 여기에도 적용된다는 직접 표시는 없었다. 문 뒤편에서 낯선 기침 소리가 들렸다. 모두 숨을 죽였다. 이어서 여자가 말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안에서 나갈 방법을 찾고 있는데 통로가 바뀌었어요.” 나는 그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미라가 문틈으로 대답했다. “혼자 계십니까?” “지금 제가 보는 사람은 저 하나예요. 아까 다른 사람이 지나갔지만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좋은 대답이었다. 확인한 것과 확인하지 못한 것을 구분하고 있었다. 미라는 문의 경첩과 바닥의 수위를 살폈다. 다른 시기의 통로가 겹쳐 있어 문을 힘으로 밀면 안쪽의 석판이 무너질 수 있었다. 우리는 살비가 실제로 사용했던 옛 잠금 순서를 물었다. 그는 손바닥 모양의 세 표식 중 가운데를 누르면 안의 사람이 먼저 문고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세월이 오래 지나 장치가 똑같이 작동할지는 알 수 없었다. 안쪽 여자에게 그 사실을 설명했다. 그녀가 동의하자 미라가 가운데 표식을 눌렀다. 문 안에서 금속이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문을 조금 열고 스스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긴 갈색 망토를 입고 손에는 커다란 책을 들고 있었다. “저는 에일렌이에요. 보관실 임시 기록사입니다.” 그녀는 먼저 우리 이름을 묻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실제로 어디에서 걸어왔는지 물었다. 나는 여백항, 상흔 고개, 살비의 산장, 도서관, 돌시계탑, 관측봉, 절벽 우편함, 검문소의 순서를 설명했다. 그중 도서관으로 돌아갈 때의 길은 아직 일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했다. 에일렌은 내 수첩을 살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기록을 보셔도 되겠네요. 적어도 당신이 누구 이름을 대신 쓰려 하지 않는다는 건 알겠어요.” 보관실 안에는 지도보다 신발이 더 많았다. 작은 가죽신, 철편을 박은 장화, 맨발의 탁본. 벽 한쪽에는 서로 다른 시기의 항해일지가 놓여 있었다. 그 안쪽의 유리방에는 헤론이 평생 찾던 옛 천문도가 있었다. “이게 다 뭐죠?” 내가 물었다. “첫 지도 제작자를 증명하는 자료라고들 해요.” 에일렌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단일한 사람을 지정한 기록은 아직 못 찾았어요.” 우리는 서고의 첫 장을 함께 읽었다. 거기에는 첫 답사자가 남긴 흔들리는 필체의 문장, 귀환을 기다린 사람의 붉은 잉크 기록, 그리고 두 증언을 구분해 적은 기록사의 검은 선이 있었다. 세 글씨는 분명 서로 달랐다. ‘걷지 않은 길은 그리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은 이를 돌아왔다고 쓰지 않는다.’ ‘둘의 기록을 섞어 지우지 않는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전해져 온 첫 지도 제작자의 전설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기록에는 최소한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서로 어떤 관계였는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미라가 옆의 항해일지를 펼쳤다. 열두 해 전 어느 선장이 바다에서 올려 보낸 확인표가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그녀가 찾던 매듭 문양과 비슷한 그림이 있었다. 그러나 매듭은 세 번이 아니라 두 번 꼬여 있었다. “또 같은 표식이에요.” 내가 말했다. “같지 않아.” 미라가 조용히 답했다. “내 동생의 것과 달라.” 그녀는 서운해 보였지만 기록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나는 아무 위로도 하지 않았다. 미라가 스스로 구분해 낸 차이를 쉽게 지워 버리고 싶지 않았다. 테온은 루메르의 왕실 인장을 보관함에 올려놓았다. 에일렌은 그 도장이 여러 장의 귀환 기록에 찍혀 있으나 그중 일부는 실제 왕실 관료가 작성한 문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서류를 보관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왕국 이름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테온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왕국이 돌아올 수 있습니까?” “어느 때의 루메르를 말씀하나요?” 에일렌이 물었다. 테온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에게 루메르는 부모가 살던 궁전이고 누군가에게는 다리가 없어진 마을일 것이다. 한 장의 지도 안에서 둘을 같은 땅이라고 선언할 수 없었다. 보관실의 깊은 곳에는 동그란 지도판이 있었다. 지도판 가운데는 비어 있고 가장자리에는 일곱 개의 홈이 있었다. 헤론이 관측표를 대조하자 홈 가운데 둘은 과거에 같은 별자리를 가리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사이의 바닥에는 숫자 0이 새겨져 있었다. “0은 사라진 좌표일까?” 키오가 물었다. 나는 돌시계탑의 글귀를 떠올렸다. ‘소멸된 좌표 영.’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영은 아직 아무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보존 결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록이 같은 체계라는 사실을 더 확인해야 했다. 그때 바깥에서 쇳소리가 났다. 오르반이 데려온 경비가 산벽 입구까지 추적해 온 것이다. 에일렌은 서가가 흔들릴 것을 걱정했다. 보관실에는 돌이 접히는 구간이 있어 무리하게 싸우면 기록뿐 아니라 사람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싸울 장소를 바꿨다. 미라와 테온이 경비를 입구의 넓은 마당으로 유도했고, 키오와 에일렌은 원본 서류를 안쪽 보관함에 정리했다. 나는 문 옆의 최근 지형을 확인해 붉은 위험선을 그었다. 헤론은 산벽의 작은 흔들림을 관측하며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면 안 되는 구역을 알려 주었다. 경비 둘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테온은 검으로 상대의 칼날을 밀어냈다. 미라는 밧줄을 걸어 경비의 발목을 묶었지만 그를 절벽으로 밀지는 않았다. 도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르반도 없었다. 그들이 직접 이 명령을 내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마지막 경비가 물러나자 산벽이 크게 울렸다. 보관실 밖의 오래된 난간이 흔들렸다. 우리는 사람들을 모두 안전한 쪽으로 이동시켰다. 에일렌은 문에 임시 봉인을 걸고 기록의 반출 여부를 따로 남겼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내 손이 떨렸다. “오늘도 큰돈을 벌진 못했네요.” 내가 말했다. “대신 지도는 남았잖아.” 미라가 대답했다. “그게 문제예요. 팔지도 못할 지도가 자꾸 늘어납니다.” 에일렌은 웃으며 작은 사본을 내게 건넸다. 원본은 보관실에 두고, 내가 직접 확인한 부분만 따로 기록할 수 있게 한 사본이었다. 거기에는 첫 답사자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는 곳이 표시돼 있었다. ‘밤숨 분지 — 귀환 다음 날, 세 번째 기록 완료.’ 나는 처음으로 ‘귀환 다음 날’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지도는 사람을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 돌아온 뒤 누가 그 길을 확인했고, 어디까지를 다음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있는지 남길 때 완성되는 것이었다. 보관실 밖으로 나오자 별락 하늘에 새 빛줄기가 나타났다. 헤론은 낙성까지 남은 날짜를 아직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최근의 낙성 전조가 북쪽 밤숨 분지 방향에 집중되고 있다는 관측은 확인됐다. 그때 내 지도통 안에서 십이 년 전의 빈 지도가 저절로 펼쳐졌다. 빈 종이 가장자리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첫 기록의 복행을 확인하려면, 마지막 기록자가 되돌아온 길을 먼저 찾아라.’ 그 아래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대신 빈칸 셋이 있었다. 걸어간 사람, 기다린 사람, 기록한 사람. 나는 그 빈칸을 채우지 않았다. 미라, 테온, 헤론, 키오, 살비, 에일렌을 돌아봤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길을 기억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 앞으로의 길은 아직 몰랐다. “밤숨 분지로 갈까요?” 미라가 물었다. “일단 여기서 돌아오는 길부터 그립시다.” 그 말에 미라가 웃었다. 그리고 산벽 너머에서 금색 빛이 번졌다. 백동상회의 큰 측량판이 일제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누군가 밤숨 분지의 위치를 우리보다 먼저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나는 새로 그린 귀환선을 손으로 눌렀다. 이번 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목적지를 얻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온 길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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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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