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은 날이 밝기도 전에 우리에게 정식 초대장을 보냈다.
정식이라는 말에는 왕실 봉인, 경계작성회 인장, 백동상회 회계부의 도장이 모두 붙어 있었다. 세 기관이 동시에 한 사람을 부르는 이유가 좋은 소식일 리는 없었다. 나는 편지를 열기 전에 미라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 식사는 제공됩니까?”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적어도 감옥에 가더라도 아침밥은 주는지 알아야죠.”
초대장에는 증언 보관실의 임시 개방을 앞두고 공개 지형 대조회를 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장소는 강가 검문소 위의 오래된 원형 극장이었다. 오르반이 우리에게 ‘첫 지도 제작자의 기록’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 대조회가 열리면 보관실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주민들도 참석할 수 있었다. 원본을 숨기고 지도를 독점하려는 쪽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자리일 수 있었다. 그래서 참석하되, 각자가 따로 기록을 맡기로 했다. 헤론은 날짜와 천문표를, 미라는 현장 항로를, 키오는 우편 봉인을, 테온은 루메르의 오래된 법문을 준비했다. 나는 실제로 걸었던 길만 표시한 별가루 지도를 들었다.
원형 극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검문소에서 기다리던 노동자, 상단 관계자, 먼 마을의 대표, 귀환 확인실의 임시 운영자까지 있었다. 나엘도 작은 수레를 타고 도착했다. 귀환 확인실을 비울 수 없었기에 이르사와 시엘이 함께 기록을 지켜 주기로 했다고 했다.
“저쪽이 뭐라고 해도,” 나엘이 내게 말했다. “동생이 돌아왔다고 쓰지 말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확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했다.
오르반은 높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커다란 유리판이 있었다. 판 안에는 우리가 도서관에서 보았던 구리 자와 닮은 도구가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다른 구리 자였다. 살비가 손끝으로 만져 보고 길이가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복제한 겁니까?” 내가 물었다.
“기준 도구의 규격을 복원한 것이다.” 오르반이 답했다.
“원본과 다르면 어떤 규격을 기준으로 했나요?”
그는 내 질문을 넘겼다. 대신 큰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별락 대륙의 모든 안전 경로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지도 끝에는 나의 이름이 있었다.
‘최종 작성자 레이븐.’
나는 내 지도의 첫 장에 붙은 수리 기록을 펼쳤다. 이 흠집은 지도통을 여백항의 돌벽에 부딪혔을 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아르켄을 떠나기 전부터 있었고, 그날의 탁본에도 똑같이 남았다. 적어도 그 도장이 내 물건의 최근 상태까지 재현하지 못했다는 점은 보여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도 놀랐다. 단지 내가 그렇게 큰 지도를 그릴 만큼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금색 길을 하나하나 그리려면 잠잘 시간도 없었을 터였다.
“제가 그린 것이 아닙니다.”
오르반은 도장의 일치를 주장했다. 그러나 도장의 테두리에는 빠진 홈이 하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지도통은 오래전에 난 흠집 때문에 작은 점을 남겼다. 오르반의 지도에는 그 점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제 물건을 본떠 만든 표식일 수는 있어도, 제가 찍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오르반은 얼굴을 찌푸렸다. “기술적인 차이일 뿐이다.”
“바로 그 기술적인 차이가 저희 목숨을 살립니다.” 미라가 말했다.
나엘은 자기 기록을 펼쳤다. 상단 지도에 표시된 ‘전원 귀환 완료’ 항목 중에는 아직 귀환을 확인하지 않은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르사의 증언과 아이의 표식, 귀환 확인실에 남은 원본이 모두 나란히 대조됐다. 사람들은 조금씩 지도보다 그 밑에 적힌 증언을 보기 시작했다.
오르반은 다급하게 다른 자료를 꺼냈다. 낙성 예상일을 한 장으로 확정한 천문표였다. 헤론은 그 표가 어떤 기준시각으로 작성됐는지 묻고, 변동 중인 별락의 지형에는 서로 다른 시기의 관측 자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별이 떨어지는 데 날짜가 두 개일 수는 없다!” 오르반이 소리쳤다.
“별의 순간은 하나일 수 있지.” 헤론이 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대륙의 위치가 하나인지는 아직 모른다네.”
그때 바깥에서 비명이 들렸다. 원형 극장의 동쪽 통로가 갑자기 낮아졌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금색 지도에는 그 통로가 영구 안전 구역으로 표시돼 있었다. 미라가 먼저 달려가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멈추게 했다.
나는 즉시 위험 표시를 그었다. 테온과 노동자들이 함께 통로 옆의 가드레일을 붙잡았다. 무너진 계단 아래에는 예전의 낮은 길이 나타났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지 않고 서쪽 출입구로 돌렸다.
한 사람씩 빠져나오는 동안 무대 위 유리판이 깨졌다. 오르반이 복제한 구리 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속이 부딪히자 돌벽 안쪽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구리 자의 길이가 관측 시계탑과 맞지 않아 장치가 부서진 것 같았다.
“장치가 멈췄습니다!” 헤론이 외쳤다.
나는 공연장의 안전문을 확인했다. 다행히 수동 고정핀이 남아 있었다. 미라와 테온이 힘을 합쳐 문을 걸었고 키오는 대피한 사람들의 위치를 기록했다. 우리 일행만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 검문소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길을 열어 주어 모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르반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무너진 계단 옆에서 자신의 도면을 주워 들었다. 금색 선을 보고도 어디가 안전한지 몰라 발을 멈췄다. 나는 그에게 서쪽 출입구를 가리켰다.
“거기로 가세요.”
“날 도울 이유가 있나?”
“안전한 길을 확인했으니까요. 사람을 골라서 그리진 않습니다.”
그는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묵묵히 그쪽으로 달렸다.
사고가 수습된 뒤 공개 대조회는 중단됐지만 중요한 자료가 남았다. 오르반의 금색 지도에는 내 이름을 새긴 위조 흔적이 있었고, 주민들 앞에서 그 지도가 실제 지형과 맞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누가 지도 원본을 훔쳤는지 알 수는 없었다.
저녁에 나엘이 내게 작은 금속판을 건넸다. 유리판 아래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거기에는 다른 서체로 새겨진 문장이 있었다.
‘이 장치는 최초 답사자의 복행을 시험하기 위한 모형. 소유자가 아니라 증언자에게 열람을 허락한다.’
“그럼 최초 지도 제작자는 하나의 천재가 아니었던 걸까요?” 키오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살비가 설명한 세 역할과 시계탑의 숫자, 여백항의 표 세 장이 머릿속에서 한 줄로 이어졌지만, 아직 그것들이 실제로 같은 제도였다는 증거는 부족했다.
그때 헤론이 무대의 바닥을 살펴 보다가 작은 홈을 찾아냈다. 위조 구리 자가 떨어지며 갈라진 부분에, 원본 금속판의 뒷면이 드러나 있었다. 다른 어떤 지도에도 없는 낯선 기호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잎사귀 모양의 점 세 개.
살비가 손끝을 대고 오래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건 내가 젊었을 때 배운 표식이야. 첫 답사자에게 길을 돌려 준 사람이 사용했지.”
“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름은 몰라.”
그는 느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기록은 아직 증언 보관실에 있을 걸세. 오늘 밤이면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군.”
원형 극장 뒤편에서 붉은 구조 신호가 다시 네 번 올랐다. 이번에는 가까웠다. 우리는 즉시 등불과 밧줄을 챙겼다. 더 이상 신호의 주인을 막연히 기다릴 수 없었다.
제3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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