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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38화
PAYLUA ORIGINAL · 제38화

왕관으로 길을 살 수는 없다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535자

오프라인 책장
왕국이 없는 왕자에게 왕관을 돌려달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테온은 아침부터 그 질문을 받고 있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자신들을 루메르의 남은 관리들이라고 소개했다. 총 다섯 명. 두 사람은 흰 장갑을 끼고 있었고 한 사람은 접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우리의 지도를 줄곧 쳐다봤다. “테온 전하. 왕국의 복구를 위해 서명이 필요합니다.” “어느 왕국의 어느 땅을 말하는가?” 테온이 물었다. 관리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봉투를 펼쳤다. 안에는 사라진 루메르의 항구와 별락 내륙 산맥을 하나의 영토로 묶는 도면이 있었다. 제목은 ‘귀환 지형 국유화 승인’이었다. “이 지도를 승인하시면 루메르가 돌아옵니다.” “아주 좋은 소식이군.” 내가 끼어들었다. “서명만으로 왕국이 돌아온다면 저도 내일까지 수십 개를 만들 수 있겠습니다.” 관리의 표정이 굳었다. 테온은 웃지 않았다. 그는 문서를 가져와 오래 읽었다. 도면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길과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모두 왕실 소유라고 적혀 있었다. 왕국의 귀환을 명목으로 상단이 통행권을 독점할 수 있는 조항이었다. “이 길을 걸은 주민들의 동의는?” “왕권이 대신합니다.” “귀환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은?” “왕실 사료가 우선합니다.” 테온은 서류를 덮었다. “이건 내 왕국의 복구가 아니오. 남의 길을 내 왕관에 넣는 계약이지.” 그가 거절하자 관리들은 위협적으로 변했다. 왕국이 사라졌다고 왕자가 의무까지 잊어도 되느냐고 따졌다. 미라는 검집을 잡고 그들을 경계했다. 그러나 테온은 끝까지 칼을 뽑지 않았다. “나는 루메르를 되찾고 싶소.”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땅 위에 지금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게 만들고 싶지는 않소.” 관리들은 그를 반역자라고 부르며 물러났다. 놀랍게도 왕국이 없는 왕자에게도 반역죄를 씌울 방법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 우리 일행은 오래된 증언 보관실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도착했다. 붉은 신호가 올라온 곳이었다. 산 아래에는 낮은 다리와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의 깃발에는 루메르의 오래된 왕관 문양과 백동상회의 검은 별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관리들이 저기까지 왔군.” 테온이 낮게 말했다. 검문소 앞에는 노동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수레에 별빛을 품은 흙을 싣고 있었지만 길을 건너지 못했다. 왕국 복구를 위한 일이라는 이유로 대금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사내가 자기 아이에게 줄 밀가루를 사려면 오늘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했다. 나는 관리들에게 통행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길 자체에 대한 영구 사용권이 상단과 ‘임시 루메르 복구위원회’ 사이에 넘어가 있었다. 주민들은 계약 당사자도 아니었다. “왕자 이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승인 대기다.” “그럼 아직 승인하지 않았군요.” “왕위 계승자는 계약 의무가 있다!” 테온이 앞으로 나섰다. “그 의무를 누가 정했소?” 그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명확한 답은 없었다. 대신 무장 경비가 앞으로 나왔다. 갑옷의 어깨에는 루메르 병사들이 쓰던 푸른 깃털이 달려 있었다. 테온은 그 깃털을 알아봤다. “왕도 동쪽 병영의 표식이군.” 경비가 고개를 숙였다. “전하의 아버지께 맹세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사람들을 굶기고 돌아가라는 뜻이었을까?” 그의 말이 경비의 얼굴에 오래 남았다. 그러나 경비대장은 명령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테온에게 검을 겨누었다. 왕자가 계약에 서명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체포하겠다고 했다. 미라가 재빨리 내 쪽을 보았다. 나는 다리의 상태를 살폈다. 다리 한가운데가 내려앉고 있었다. 발목 높이의 물이 기둥을 갉아 먹고 있었고, 수레 세 대가 동시에 올라가면 버티기 어려워 보였다. 우리는 곧장 통행을 멈추게 했다. “싸움보다 먼저 다리를 비우세요!” 내가 소리쳤다. 경비대장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미라가 기둥 아래의 틈을 보여 주자 표정이 바뀌었다. 노동자들과 경비가 함께 수레를 뒤로 빼기 시작했다. 테온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함께 마지막 수레를 밀었다. 나도 뒤에서 힘을 보탰다. 내 힘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가장 크게 소리치는 사람 역할은 했다. 그때 물밑에서 검은 빛이 번쩍였다. 다리의 가운데 판자가 갑자기 없어졌다. 수레 하나가 기울고 그 위에 올라탄 노동자가 떨어졌다. 테온이 검집을 난간에 끼워 지지대를 만들었고 미라가 줄을 던졌다. 나는 노동자에게 밧줄을 잡으라고 소리쳤다. 그는 다행히 스스로 줄을 잡았다. 병사 둘이 도와 그를 끌어올렸다. 우리는 곧바로 다리의 안전 표시를 붉게 바꿨다. 다른 수레는 모두 통행을 멈추었다. “이게 귀환한 왕국의 첫 번째 길입니까?” 테온이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경비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갑옷에는 물이 튀었고 한쪽 깃털이 떨어져 나갔다. 구조된 노동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씻었다. 이름은 바른이라고 했다. 그는 길이 열리면 서쪽 제빵소까지 밀가루를 옮겨야 한다며 무너진 수레를 바라봤다. 테온은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수레 바퀴를 임시로 묶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경비 하나가 말없이 바른의 짐을 들어 올렸다. 누구의 명령도 아니었다. 몇 사람이 그렇게 돕자 수레는 조금씩 움직였다. 바른은 길이 다시 안전해지기 전에는 건너겠다고 우기지 않겠다고 했다. 테온은 직접 경비대장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이 나라가 돌아오길 원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떨어뜨리는 길을 왕국의 명예라고 부르지 않겠소.” 그날 저녁 노동자들은 강가에서 길을 둘러가는 오솔길을 알려 주었다. 한 사람은 지난해 가을에 걸었고, 다른 사람은 이번 봄에도 통과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걸음과 시기에 대해 따로 기록했다. 별가루 지도가 은선을 그리기 전에 미라가 먼저 그 길의 현재 바닥을 확인했다. 길이 이어졌다. 다만 돌다리 너머 마지막 부분은 아직 어둠에 가려 있었다. 우리는 보관실을 향한 추격을 멈추고 밤에는 강가에 머물렀다. 다리를 넘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사람이 모두 쉼터에 도착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테온이 불 앞에 앉아 손바닥을 펴 보였다. 검집에 눌린 손에 피멍이 들었다. “레이븐. 내가 왕자가 아니라면 뭘 해야 하지?” “우선 붕대부터 감으세요.” “그다음에는?” “오늘 구한 사람들한테 이름이나 물어보죠. 당신이 누구였느냐보다 그 사람들이 어디 가려던 건지 아는 게 먼저잖아요.” 그는 웃었다. “왕이 되는 법보다 어렵군.” “그럼 좋은 왕이 되긴 하겠네요.” 미라가 우리에게 따뜻한 수프를 건넸다. 멀리서 노동자들이 저녁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테온은 그곳을 오래 바라봤다. 그날 밤 그의 손에서 왕실 인장이 사라졌다. 누군가 훔친 것이 아니라, 테온이 스스로 인장을 꺼내 지도통 옆에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걸 열쇠라고 부르지 않겠어.” 나는 그의 말을 수첩에 적었다. 왕관은 길을 소유하는 도장이 아니라, 길을 잃은 사람에게 돌아갈 자리 하나를 남겨 두겠다는 약속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잠들기 직전 검문소 방향에서 새 깃발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왕실 문양이 없었다. 검은 별만 있었다. 오르반이 직접 도착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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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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