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람을 잃은 도서관을 찾기 위해 비탈을 세 시간이나 걸었다.
그동안 바람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름을 잘못 붙인 장소라면 적어도 간판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오에 도착한 돌기둥 앞에서 그 생각을 취소했다. 바람이 정확히 그 선을 넘는 순간 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눈송이는 흩날리는데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미라가 나를 불렀다. 입술은 움직였으나 목소리가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손가락으로 귀를 찔러 봤다. 귀는 멀쩡했다. 다른 쪽에서 키오가 과장되게 손을 흔드는 것도 보였다.
“...”
입을 여는 대신 수첩을 꺼냈다. ‘여기서부터 말이 안 들린다.’
미라가 종이를 낚아채고 그 아래 적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농담을 못 듣는 장점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상처를 받았다. 입으로 하는 것만이 농담은 아니었다.
살비는 지팡이로 바닥을 세 번 두드렸다. 우리가 느낀 것은 소리가 아니라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었다. 그가 웃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길을 확인하는 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듯했다.
도서관은 산속에 파인 반원형의 석실이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달려 있었는데 아무리 돌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벽에는 수천 장의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이름도 제목도 없는 종이들이었다. 종이의 아래쪽마다 작은 구멍이 셋, 일곱,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칸이 있었다.
헤론은 그것이 발소리 기록의 부호일 수 있다고 몸짓으로 설명했다. 나는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방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메모했다. 눈치로 끄덕인 대답은 지도에서 가장 위험한 기호였다.
계단 아래에 책상 하나가 있었다. 표면에 낡은 동판이 박혀 있었다. ‘돌아온 기록만 이곳에서 소리로 복원할 수 있다. 미귀환 기록은 있는 그대로 보관한다.’
돌판 뒤에는 오래전에 고장 난 음성관이 놓여 있었다. 살비가 동판 위에 자신의 장화를 올려놓자 얕은 진동이 전해졌다. 산장의 열한 걸음을 뜻하는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실제로 다녀온 지하길의 소리였다.
그러나 벽에 걸린 오래된 지도는 다른 일을 했다. 도서관 바깥의 협곡을 지나간 수십 명의 발자국이 시간별로 분리돼 나타났다. 나는 그중 오늘 날짜와 같은 눈 표시를 찾았다. 길목 세 곳은 이어져 있었지만 마지막 다리 아래 기록에는 ‘미귀환’이 적혀 있었다.
“앞으로는 못 가겠네요.” 나는 수첩에 썼다.
미라가 곁에 앉아 답했다. ‘못 간다기보다 확인이 안 된 거야.’
그 차이를 잊으면 안 됐다. 금지된 길과 아직 모르는 길은 다르다.
한참 뒤 도서관 바깥에서 금속을 긁는 진동이 전해졌다. 누군가 입구를 닫고 있었다. 도른 일행은 산장을 뒤진 뒤 우리의 발자국을 좇아온 것이다. 벽의 좁은 창으로 보니 그들은 큰 철망을 끌고 와 출입로에 걸고 있었다. 철망에는 백동상회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미라가 손을 펼쳤다. 다섯 명의 손가락을 이용해 경비 수를 알렸다. 눈보라 속에 보이는 인원은 셋, 안 보이는 곳에 더 있을지도 몰랐다. 테온은 검을 뽑아 잠금장치로 다가갔다. 그러나 살비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금속을 잘라 버리면 위쪽의 무거운 문이 한꺼번에 내려와 책상과 기록이 부서질 위험이 있었다.
우리는 소리가 없다는 사실을 장점으로 바꾸기로 했다. 미라는 줄을 이용해 반대편의 빈 음성관 안으로 탐침을 보내고, 나는 돌판에 기록된 오래된 정비 통로를 찾았다. 적어도 오늘 우리가 지나온 입구와 지하 연결 부분은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키오가 지면에 붙은 낡은 우편함을 발견했다. 그 위에는 작은 종이 한 장이 꽂혀 있었다. 날짜는 십이 년 전. 발신인은 ‘지도 귀환자’라고만 적혀 있었다. 받는 사람은 공란이었다.
나는 우편함의 뚜껑을 열려다가 멈췄다. 돌판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을 임의로 새기지 말 것’이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상단은 늘 이런 빈칸에 자기 이름을 먼저 넣으려 했다. 나도 혹시 그 빈칸에 나를 써 넣고 싶은 것은 아닐까.
키오에게 물었다. “네가 본 우편함이니 어떻게 할지 네 생각도 듣고 싶어.”
키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발신 기록을 먼저 살피자고 했다. 우편통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에는 편지 외에 반송표와 손으로 그린 작은 계곡 그림이 있었다. 우리는 그 상태를 그대로 확인했다. 키오는 종이의 접힌 모양을 기록하고 외피를 기름종이로 감쌌다. 봉투를 열지는 않았다. 다만 경비들이 우편함을 뜯어낼 조짐을 보이자, 원래의 위치와 봉인 모양을 살비·헤론과 함께 기록한 다음 우편물만 임시로 키오의 주머니에 옮겼다. 우편을 다루던 소년은 이것을 자신의 편지라고 부르지 않고 ‘수신인 확인 전의 임시 보관물’이라고 적었다.
밖에서 경비가 철망에 충격을 주었다. 돌벽 전체가 떨렸다. 도서관의 종이들이 한꺼번에 뒤집혔고, 그 순간 헤론이 눈을 크게 떴다. 종이 뒷면에 별자리들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낮의 별자리, 밤의 별자리,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계절의 별자리까지. 도서관은 발자국뿐 아니라 하늘이 바뀐 날짜도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수첩에 계산을 휘갈겼다. ‘낙성 이동 경로의 절반은 관측 오류가 아니야. 같은 장소의 다른 시각이 겹친 거야.’
별락 대륙이 움직이는 데에는 낙성만이 아니라 사람이 남긴 관측 시각의 차이가 함께 작용한다는 뜻일까. 아직 가설이었다. 하지만 헤론이 찾은 세 시기의 관측표는 서로 달랐다. 적어도 현재 위치만 보고 내일의 낙성 지점을 확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테온이 도서관의 돌바닥을 가리켰다. 기록판 아래에 폭 좁은 정비문이 있었다. 살비가 젊을 때 직접 통과했다는 기록과 길이가 맞았다. 우리는 구조대를 불러 줄 연락망도 없는 산에서, 사람 다섯과 노인 한 명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방법을 계산했다.
미라가 먼저 들어가 손바닥만 한 돌로 바닥을 두드렸다. 뒤이어 키오가 허리를 숙여 통과했다. 살비는 지팡이 끝을 줄에 묶어 건너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사이 바깥의 철망이 무너졌다. 경비들이 도서관 안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잡지 못했다. 대신 비어 있는 책상을 향해 곧장 갔다. 도른은 책상에 남은 구리 자를 집어 들었다. 그 행동은 그가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작은 관측 구멍으로 그 모습을 보았고 시각과 행동을 기록했다.
우리가 빠져나온 정비문 끝에는 오래된 바람방울 기계가 있었다. 그 문턱을 넘자 귀가 다시 소리를 받아들였다.
“살았다!” 내가 외쳤다.
“제발 조용히 해!” 미라가 소리쳤다.
그 말마저 반가웠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미라의 잔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를 영영 못 듣는 일이었다.
저녁 무렵 살비는 도서관의 위쪽에 있는 조그만 관측사 터를 알려 주었다. 첫 답사자가 통과했다는 돌길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상단 경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위치만 기록했다.
내 수첩에는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왜 도른은 구리 자부터 가져갔는가. 그리고 열두 해 전 그 우편함에 들어온 편지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했는가.
별가루 지도의 여백에는 아무 답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실제로 통과한 정비통로가 얇은 은선으로 남았다. 그것만은 오늘의 확실한 길이었다.
제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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