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31화
PAYLUA ORIGINAL · 제31화

일곱 번째 계단을 밟지 말 것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27자

오프라인 책장
여백의 항구에서 내륙으로 가는 길은 세 개였다. 하나는 마르켄의 측량도에 있었다. 둘째는 나엘의 할머니가 기억했다. 셋째는 백동상회가 은화 두 닢에 팔고 있었다. 세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이럴 때는 가장 싼 길을 고르면 되지 않나?” 테온이 물었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시면 반드시 재무장관은 따로 두세요.” “그럼 네가 맡아라.” “제가 국가를 파산시키기 전에 도망칠 겁니다.” 미라가 웃으며 돛줄을 감았다. ‘어제의 파도’는 항구 바깥의 고정 계류점에 묶어 두었다. 세린과 오렌이 배를 지키고, 마르켄은 관측소로 돌아가 우리에게 매일 하늘과 해안의 변화 기록을 보내기로 했다. 나엘은 귀환 확인실의 임시 보존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녀가 동생을 찾겠다고 당장 우리를 따라나설 수 없는 이유였다. “당신들이 안쪽에서 무엇을 찾든,” 나엘이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서 누가 기다리는지도 기록해 줘요.” 종이에는 이름이 아니라 날짜와 작은 손그림이 있었다. 여백항의 어린아이들이 그린 귀환 표식이었다. 이름을 밝히기 싫은 아이는 흰 돌 그림을 그려 두었다. “가지고 가겠습니다. 다만 돌아왔다고 미리 쓰지는 않을게요.”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예요.” 시엘은 여섯 칸으로 나뉜 탐침 자를 주었다. 바닥이 접히면 검은 칸이 먼저 움직이는 기구였다. 벨과 로엔은 서로 다른 해안 지도를 각각 접어 작은 봉투에 넣었다. 어느 것이 맞느냐는 내 질문에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둘 다요.” 훌륭한 대답이었다. 안타깝게도 물에 빠졌을 때는 어느 쪽이 현재의 바닥인지 빨리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해가 높아지기 전 여백항의 북쪽 염전으로 향했다. 지도에 그어진 은선은 내륙의 검은 산까지 이어졌으나 중간이 몇 번 끊겨 있었다. 연결되지 않은 부분에는 내가 아는 어떤 길도 표시할 수 없었다. 존재했던 사실을 모르는 길은 별가루로도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 염전의 마지막 웅덩이 옆에는 돌계단이 있었다. 일곱 단. 첫 단에는 소금이 앉았고 마지막 단은 땅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길이 여기서 끝나는데요?” 키오가 말했다. “끝이라기보다 시작을 숨긴 것 같은데.” 헤론이 무릎을 굽혔다. “이 돌은 별락의 토양보다 오래됐어. 밑면에 바닷물 흔적이 남아 있지.” 미라가 계단에 발을 올리려는 순간 나는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그늘 속 첫 단이 방금 한 치쯤 내려앉았다. “잠깐. 여기 현재 높이부터 재요.” 테온은 검 손잡이로 돌을 두드렸다. 맑은 소리가 났다. 반면 둘째 단은 둔탁했다. 시엘의 탐침을 대자 검은 칸 두 개가 뒤집혔다. “아래에 빈 공간이 있어.” 미라가 말했다. 그때 계단 위로 행상인 셋이 올라왔다. 짐수레에는 유리병이 가득했다. 앞서 걷던 노인은 계단을 보고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은 일곱 단이오?” 노인이 물었다. “내일은 몇 단인데요?” “여섯이기도 하고 여덟이기도 하지. 열둘일 땐 돌아가시오.”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계단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서로 다른 비탈들이 같은 자리에 겹쳐 나타나는 것이다. 노인은 사흘 전에는 아홉 단을 밟았고, 지난겨울에는 여덟 단을 건넜다고 설명했다. 나와 키오는 그의 말과 날짜를 수첩에 적었다. 할머니의 옛길 기록에는 ‘칠계단 북쪽의 평석길’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두 시기의 증언이 같은 첫 두 단을 가리켰다. 나는 별가루를 묻힌 펜촉으로 그 부분만 표시했다. 은선이 얇게 이어졌다. 마지막 다섯 단은 여전히 흐릿했다. “왜 끝까지 안 그려?” 테온이 물었다. “제가 끝까지 아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행상인들에게 안전한 우회로를 알려 주었다. 노인은 대답 대신 빈 유리병 하나를 내게 주었다. 안에는 돌가루와 작은 파란 씨앗이 섞여 있었다. “계단 너머 상흔 고개에서 가져온 것이오. 고개가 어제 어디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씨앗을 보시오.” “씨앗이 지도를 읽습니까?” “아니. 자라는 방향을 기억하지.” 그가 떠난 뒤 키오가 병을 햇빛에 들었다. 씨앗은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나는 노인을 믿기 전에 그가 실제로 고개를 다녀왔다는 증거를 더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우회길을 걷는 동안 땅이 낮게 울렸다. 먼 염전 끝에서 흰 먼지가 솟았다. 유리병을 실은 행상 수레가 갑자기 뒤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수레 앞바퀴 아래 길이 사라졌다. “묶을 곳이 필요해!” 미라가 외쳤다. 테온이 돌기둥에 밧줄을 걸었고 나는 잠시 전에 측량한 첫 두 단을 확인했다. 그 사이 헤론은 별의 위치가 아니라 그림자의 각도를 재며 지금 드러난 토양층을 구분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겨우 열두 걸음이었다. 열두 걸음이면 충분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부분에만 은선을 그렸다. 미라가 노인에게 손을 뻗어 끌어당기고, 테온이 짐수레를 포기하라고 소리쳤다. 노인은 유리병을 내려놓지 못하고 버텼다. “그 안에 우리 마을 약이 있소!” 미라가 수레를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밧줄을 갈고리처럼 걸어 맨 위 상자만 건져 올렸다. 나와 키오는 나머지 병의 번호를 적었다. 어느 병을 잃었고 어느 병을 구했는지 알아야 누군가에게 잘못된 약이 배달되지 않을 터였다. 마지막 사람이 안전한 돌 위에 올라서자 길이 한 번 접혔다. 수레가 그대로 흰 균열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그림의 아래쪽을 누가 접어 올리는 듯했다. 우리가 구한 상자의 유리병은 전부 열세 개였다. 노인은 그중 넷은 마을의 겨울 감기약이고, 둘은 소독에 쓰는 약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내용물을 함부로 섞지 않고 병마다 남아 있는 표를 따로 묶었다. 길을 찾는 일과 누군가에게 약을 전달하는 일은 결국 같은 문제였다. 목적지만 안다고 책임이 끝나지는 않았다. 노인은 숨을 몰아쉬었다. “네놈이 지도를 그렸으니 살았군.” “아뇨. 제가 확실한 구간만 그렸으니 살았습니다.” 나는 손이 떨려 펜을 놓칠 뻔했다. 위험한 곳을 보면서도 펜촉이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이 두려웠다. 조금만 더 그리면 모든 길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해 질 무렵 우리는 계단 북쪽의 버려진 초소에 닿았다. 낡은 나무판 위에는 눈금이 있었다. 숫자는 세 개였다. 3, 7, 0. 키오가 흥분해 손가락으로 짚었다. “지도통에도 있던 숫자잖아요!” 헤론은 눈금을 살핀 뒤 고개를 저었다. “아직 뜻은 몰라. 거리일 수도, 순서일 수도 있지.” 초소의 돌문 아래에는 이끼가 자라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닦아 낸 흔적이었다. 미라가 손등으로 먼지를 털자 안쪽에서 작은 글씨가 드러났다. ‘첫 지도는 정상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돌아온 자의 신발 밑에서 시작되었다.’ 그 바로 아래에 오늘 날짜가 찍힌 통행 확인서가 끼워져 있었다. 발행 관청은 존재하지 않는 곳, ‘상흔 고개 귀환관리소’였다. 확인서의 수령인 칸에는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레이븐. “제 이름을 쓰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나는 종이를 들어 빛에 비췄다. “이쯤 되면 저한테 사용료를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웃음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확인서 뒷면에는 내 필체와 닮은 글씨로 한 문장이 더 있었다. ‘일곱 번째 계단을 밟지 말 것. 그 밑에는 아직 귀환하지 않은 길이 있다.’ 나는 그날 우리가 일곱 번째 계단을 밟지 않았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안도했다. 그리고 누가 우리 발걸음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31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3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