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항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처음 만든 것은 항구 지도가 아니었다. 구조자 명단이었다.
그 사실을 들으면 지도 제작자로서 조금 섭섭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전날 한 걸음 늦게 출발했다면 미라나 테온 중 누군가는 물속에 남았을 것이다. 지도가 아무리 멋져도 사람을 잃고 나면 그 지도를 누가 읽겠는가.
엘루안 관측소에서 마르켄이 내려왔다. 그는 구조 현장의 남은 사람들을 직접 살핀 뒤 우리 기록과 상단의 명부를 대조했다. 상단 명부에는 이미 '전원 구조 완료'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실제 구조 인원에 관한 최종 확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쪽은 참 빠르군요.” 내가 말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모두 구했다고 쓰다니.”
마르켄은 도장을 들고 한숨을 쉬었다. “결과를 먼저 정하고 사람을 거기에 맞추려는 버릇이지.”
우리는 구조 확인이 끝난 사람과 현장에서 보았으나 지금 소재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을 따로 적었다. 구출한 이르사와 이름을 말하지 않은 아이에게도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남길 기회를 주었다. 이르사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고, 아이는 오늘은 표식만 남기겠다고 했다.
나엘은 조금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동생 기록은 여전히 미귀환자 장부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장부가 실제 출항 명부와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증거가 생겼다. 그 사실 하나가 그녀에게 큰 의미였다.
낮이 되자 경계작성회 감사관 오르반이 도착했다. 그의 뒤에는 백동상회 서기 브라크의 대리인이 있었다. 그들은 전날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현장 지도를 봉인하겠다고 했다.
“안전상 필요한 조치다.” 오르반이 말했다.
“동의합니다.” 내가 답했다.
그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올렸다.
“위험한 경로에는 통행 중지 표시를 해야죠. 다만 현장의 증언 기록과 구조자 명단까지 지우시면 안전 조치가 아니라 은폐가 됩니다.”
시엘이 우리가 직접 확인한 길과 통행 불가 구간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보여 주었다. 나엘은 수문 조작 시각을, 미라는 구조선과 밧줄의 실제 길이를, 테온은 임시 대피 통로에 사람들이 지나간 순서를 설명했다. 헤론은 낙성 예보와 현장 지형 변경의 시간을 구분했다.
오르반은 우리 기록을 훑어보다가 문득 물었다. “이 일을 누구 이름으로 정식 등록할 거지?”
나는 답하기 전에 모두를 바라봤다. 미라는 배를 조종한 자신이 혼자 모든 길을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테온은 왕관의 도장이 있어도 주민 동의 없이는 귀환을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엘은 다시 한번 빈자리에서 돈을 벌게 놔두지 않겠다고 했다.
“공동 확인으로 남기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원본은 각자 보관하고, 다른 기록을 지우지 않게 같은 사건번호만 붙이죠.”
“그렇게 하면 책임자가 없잖아.” 오르반이 말했다.
“책임은 실제로 한 일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죠. 물을 연 사람과 구조를 지휘한 사람, 지도를 그린 사람은 서로 다른 일을 했으니까요.”
오르반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당시 상단 경비대장까지 현장의 위험을 증언하면서 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에게 하루의 임시 보존 연장을 허가했다. 하루 뒤 추가 심사를 받지 못하면 귀환 확인실은 다시 폐쇄될 수 있었다.
나는 그 결정을 승리라고 적지 않았다. 우선 시간이 하루 늘었고, 그 하루 동안 증거를 지킬 기회가 생겼다고만 기록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사라진 왕관을 찾기 위해 물이 빠진 돌문으로 돌아갔다. 테온이 먼저 찾으러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미라는 바닥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자 테온이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관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그가 말했다. “내가 두 번째로 같은 실수를 하면 네가 또 말려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은 아주 훌륭하지만,” 미라가 미소 지었다. “전하가 다음에는 저도 안 끌어올리게 해 주세요.”
바닥이 안정됐을 때 우리는 탐침을 내려 보았다. 왕관 조각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똑같은 도장을 찍은 인장 손잡이가 왜 두 개 있었는지 조사할 수 있는 금속 상자가 있었다. 테온은 그 상자를 건져 올려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우리는 상자가 놓인 위치를 기록한 뒤 공동으로 열었다.
안에는 물에 젖은 표 세 장이 있었다. 첫 장에는 선박 이름이, 두 번째에는 항로를 직접 확인한 사람들의 서명이, 세 번째에는 귀환자의 의사와 대기자의 증언을 따로 적는 칸이 있었다. 세 번째 칸에는 누구의 이름도 자동으로 들어가지 않게 되어 있었다.
“세 번째 기준점의 원래 방식일지도 모르겠군.” 헤론이 말했다.
“그렇다면 별가루는 원래 무엇을 하는 도구였을까요?” 내가 물었다.
“길을 그리기 전에 누가 그 길을 실제로 지나갔는지 묻는 도구였겠지.”
나는 눈앞의 표 세 장을 오래 바라봤다. 예전에 내게 나타났던 예언은 내가 세계를 지운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우지 않기 위한 방법이 있었다. 돌아온 사람을 기록에서 없애지 않고, 오지 않은 사람을 이미 돌아왔다고 적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때 키오가 우편통을 내밀었다. “아저씨, 편지 봉인에 있는 나침반 문양이 여기랑 같아요.”
그가 가리킨 것은 세 번째 표의 왼쪽 아래에 찍힌 작은 표식이었다. 미라의 가족이 쓰던 항해반 문양과 닮았다. 하지만 키오가 말한 것은 동생의 신원이 아니라 표식의 일치였다. 우리는 그 차이를 지켰다.
나엘이 묻기를, 본래 귀환 확인실에는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길을 걸었던 사람, 기다린 사람, 그리고 둘의 말을 기록하는 사람. 한 사람의 의사로 다른 둘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다고.
나는 세 표를 귀환 확인실의 손바닥 모양 받침 위에 올렸다. 미라는 자신이 실제로 통과한 길만 표시했고, 나엘은 아직 동생의 귀환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테온은 루메르 항구의 오래된 절차를 알지만 모든 배의 귀환은 증언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 모든 문장을 하나의 지도로 옮기되 각 사람의 글씨를 덮지 않았다.
그 순간 종이 위의 은선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가 한곳으로 모였다. 빈 지도의 가장자리에 마지막 숫자 0이 반짝였다. 멀리 무너진 제분소 뒤편에서 세 번째 기준점을 가리키는 돌기둥의 윤곽이 드러났다.
우리는 그것을 새로 생긴 기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시엘의 오래된 지도에는 분명 그곳에 돌기둥이 있었고, 나엘은 어린 시절 그 옆에서 놀았다는 기억을 조심스레 적었다. 현재의 지형에서도 같은 위치에 돌이 솟아 있었다. 서로 다른 때의 세 확인이 겹쳤다.
“열렸어요.” 시엘이 낮게 말했다.
지도에는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별락 제삼 기준점 — 임시 연결. 귀환 확인은 개별 동의에 따름.’
나는 그 밑의 ‘임시’라는 단어를 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고작 한 글자지만 이 세상을 너무 쉽게 확정하지 않게 해 주는 글자였다.
멀리 상단의 검은 깃발이 바람을 타고 물러났다. 오르반은 기둥을 잠깐 바라보더니 편지를 다시 건넸다. “십이 년 전 네게 보내진 물건이 한 개라고 생각하나? 지도통을 만든 자는 같은 지도를 여러 장 남겼어.”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자기 말의 증거를 내놓지 않았고, 내겐 오늘 지킨 항구가 있었다. 대신 편지의 봉인과 날짜를 따로 기록했다. 나중에 누가 지도통을 만들었는지 밝혀내면 그때 대조할 수 있도록.
오후가 저물 무렵 ‘어제의 파도’에서 신호가 왔다. 세린이 보낸 푸른 등불이 두 번 깜빡였다. 정박 중인 배는 안전했고, 얼굴을 가린 조난자는 새 항로의 바람 방향을 알아냈다고 했다. 미라는 그 신호를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테온은 기둥 앞에 서서 빈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잃어버린 왕관 조각을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표에 찍힌 왕국의 도장이 곧 왕국을 되찾는 길은 아니라고 스스로 말했다. 루메르는 아직 여러 사람의 기억에 서로 다른 곳으로 남아 있었다.
“그럼 다음엔 어디로 가요?” 키오가 물었다.
나는 지도를 펼쳤다. 새로 열린 은빛 선이 별락 대륙 안쪽의 높은 지형을 향해 뻗었다. 종착지는 아직 흰 여백이었다. 가장자리에는 또 다른 문장이 있었다.
‘첫 지도 제작자의 기록은 여백의 항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나는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또 하나의 비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길의 처음과 끝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 오늘은 출발점을 표시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돌아갈 길부터 기록하고 갑시다.” 내가 말했다.
미라가 웃었다. “이번에는 멀미 약도 챙겼어요?”
“그건 제 몸이 아니라 세상이 흔들리는 걸 막아야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나는 별락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낙성 예보는 열다섯 날을 가리켰지만 위치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의 항구는 지켜 냈다. 내일의 땅은 아직 아무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빈칸을 지키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길을 남기는 일이었다.
제3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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