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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지도를 지우는 사람들의 조합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57자

오프라인 책장
엘루안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었다. 금광은 별이 떨어지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금광까지 가는 길에 도장을 찍는 사람은, 금광이 사라진 뒤에도 통행료를 청구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백동상회의 임시 운영권 회수 통지서를 받은 다음 날 배웠다. 아침부터 검은 별 문양을 단 사람들이 시엘의 수리소 앞에 줄지어 섰다. 그들은 수레 두 대와 서기 세 명, 검객 네 명을 데려왔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우리가 훨씬 열세였다. 맨 앞에 선 남자는 넓은 회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성함을 묻자 자신을 ‘경계작성회 감사관 오르반’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소매 끝에는 작은 은제 자가 꿰매져 있었다. 지도 제작자라면 마주치기 싫은 사람의 복장이었다. 자를 갖고 있으면서 남의 길을 지우는 일이 더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여백의 항구와 관련된 무허가 측량이 접수됐다.” 오르반이 말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걸 적었습니다.” 내가 답했다. “그 확인이 공식 허가를 받았나?” “길이 무너지는 걸 보기 전에 허가를 받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이곳의 업무 속도가 지형을 따라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는 웃지 않았다. 미라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은 농담 좀 줄여요.” “전 심각합니다. 다만 이 사람이 제 말을 믿지 않을 뿐이죠.” 오르반은 제분소와 저류창고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사람을 구조한 일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그린 임시 대피로가 경계작성회의 검인을 받지 않았으므로, 누군가 따라가다 다치면 모두 레이븐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 문장을 따로 받아 적었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표시한 길을 없애고, 그 뒤에 누가 다치면 길을 그린 사람 책임이라고 하는 논리는 아주 편리했다. 책임을 물을 대상만 남기고 안전한 통로는 지우는 방식이니까. 시엘은 경계작성회의 오래된 회칙을 찾아왔다. 원래 회칙에는 ‘기존 길을 확인할 권한은 그곳을 실제로 지나온 사람에게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십 년 전 부칙에는 ‘허가된 지도 제작자만 그 사실을 공식 기록할 수 있다’는 문장이 추가돼 있었다. “이게 언제 바뀌었습니까?” 헤론이 물었다. “루메르가 마지막으로 항로를 잃은 다음 해.” 시엘이 대답했다. “길드를 탈퇴한 이유이기도 해요. 내 눈으로 본 길을 남의 장부에서 지워야 하는 일이 많아졌거든.” 오르반은 우리가 회칙을 읽는 모습을 보더니 종이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질서 없이 그려지는 지도는 혼란을 부른다. 별락 대륙에서 한 장의 지도는 수백 명을 죽일 수도 있어.” “그건 맞는 말입니다.” 내가 인정했다. “그래서 저는 날짜와 증인을 지우지 않았죠. 그런데 상회는 실종인지 탑승 예정인지도 구분하지 않은 채 일곱 명에게 비용을 부과했습니다.” “경계작성회는 그 계산을 검토할 권한이 없다.” “그럼 길은 관리하지만 길을 이용한 사람은 관리하지 않는군요.” 오르반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내 지도통에 멈췄다. “그걸 어디서 얻었지?” “맡겨져 있던 물건입니다. 발신자는 아직 모릅니다.” “그런 지도통은 세상에 하나뿐이야.” 나는 그가 아는 게 무엇인지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헤론이 내 발등을 살짝 밟았다. 그가 손짓으로 ‘지금 확신하는 사람을 믿지 마라’고 전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원본 지도통의 흠집과 오르반의 옷에 있는 자 표식만 자세히 적었다. 오르반은 갑자기 제안을 바꿨다. “네가 확인한 길을 우리 조합 이름으로 등록하면 처벌하지 않겠다. 그리고 네 여정에 필요한 통행증도 제공하지.” “제 이름을 빼면요?” “기록의 신뢰도는 조합이 책임진다.” “그 길을 실제로 걸은 미라와 시엘, 저류창고에서 나온 두 사람의 이름은요?” “기록에는 필요 없는 사항이지.” 내가 지도를 접었다. “그럼 거절하겠습니다.” 오르반은 잠깐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별가루 지도는 하나의 진실을 대신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 길이 있었던 시간과 실제로 걸은 사람이 만나야 반응한다. 그 이름을 모두 지워 버리면 지도는 그냥 비싼 종이일 뿐이다. 오르반이 떠나려는 순간 오렌이 도착했다. 침묵 등대에서 구출했던 등대지기는 소금에 젖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는 미라에게 구조용 기름병을 돌려주고, 내가 들고 있는 지도통을 보자 한참 서 있었다. “그 무늬를 아는 사람이 있나?” 오렌이 물었다. “이분이 아신다고 합니다.” 내가 오르반을 가리켰다. 오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무늬는 낡은 구조등에 쓰던 표시야. 길을 지우는 자의 표식이 아니지.” 오르반은 곧장 자리를 뜨려 했다. 테온이 그의 앞을 막았다. 무기를 뽑지는 않았다. 대신 왕관 속에서 발견한 옛 항만 표어를 소리 내 읽었다. ‘왕관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오르반이 종이를 보자 손끝을 움찔했다. “루메르의 왕관 조각을 왜 네가 갖고 있지?” “그 나라의 마지막 왕자니까.” 테온이 답했다. “그렇다면 기록을 조심해라. 루메르는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멸망했다고 모두들 알고 있으니.” 테온은 눈을 내리깔았다. 화가 났지만 당장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루메르의 마지막 날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경계를 바꿨는지 아직 원본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오르반에게 그 말의 근거 문서를 요청했다. 그는 서늘하게 웃으며 편지 하나를 건넸다. 편지는 낡은 지도의 조각처럼 누렇게 변해 있었고, 뒷면에 검은 별이 찍혀 있었다. 발신자는 경계작성회, 수신자는 ‘미래의 지도 제작자’였다. “열면 네가 알고 싶던 일을 알게 될 거다.” 나는 바로 열지 않았다. 봉인 위의 날짜가 십이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맡겨진 지도통과 같은 연도였다.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럴수록 같은 사람의 흔적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오르반은 경비를 철수시켰지만 시엘의 수리소 앞에 경고문을 붙여 두었다. '내일 정오 이후 무허가 지도 폐기.' 벨과 로엔의 그림까지 포함한 현장 기록을 압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수리소 뒤편에서는 벨과 로엔이 서로에게 지도 읽는 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로엔은 자기 그림에 남긴 물길이 오늘은 사라졌다고 말했고, 벨은 그 물길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날의 기록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시엘은 아이들이 정답을 하나로 합치지 않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내가 길드에 있을 때 저걸 먼저 배웠어야 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지금 배우면 늦습니까?” 내가 물었다. “늦을 때도 있죠. 그래서 다음 사람한테라도 가르치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을 수첩 맨 뒤에 적었다. 어떤 지도는 길만이 아니라 길을 기록하는 태도까지 남겨야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지도들을 분산 보관했다. 시엘은 아이들의 원본을 맡았고, 나엘은 수문 기록을, 마르켄은 관측표를 보관했다. 오렌은 등대의 점등 일지를 복사했다. 한꺼번에 빼앗겨도 하나의 날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오르반의 편지를 펼치려던 순간, 지도통의 금속 가장자리에서 작은 울림이 났다. 빈 지도의 여백에 은색 숫자 하나가 나타났다. ‘7.’ 미라가 손목 고리를 풀었다. 고리의 같은 숫자가 희미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 옆에 찍힌 글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곱 번째 배의 출항을 기록한 자가 돌아올 때까지, 항구의 이름을 완성하지 말 것.’ 키오가 갑자기 문밖을 보았다. 수리소 밖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마당에 젖은 밧줄 자국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침묵 등대의 고동이 들렸다. 이번에는 오전이 아니라 한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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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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