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25화
PAYLUA ORIGINAL · 제25화

왕관에 찍힌 일곱 번째 도장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519자

오프라인 책장
사람을 구조하고 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별락 대륙에서는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가 더 어려웠다. 누군가 구조된 사람의 이름으로 선박세를 내라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엘은 저류창고에서 구조한 여자와 마주 앉았다. 여자는 자신을 이르사라고 소개했다. 오른팔에 오래된 화상 흉터가 있고, 왼쪽 발목이 부어 있었다. 미라는 그가 언제 어디에서 다쳤는지 당장 묻지 않았다. 먼저 발목을 고정하고 따뜻한 물을 건넸다. “동생 이야기를 해 줘요.” 나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르사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네 동생은 내가 아는 날엔 집으로 돌아갔어. 하지만 그날을 적은 장부가 다른 날의 배표에 묶였지. 내가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수문 창고로 보내졌고.” “그럼 그 애는 어디 있어요?” “모르겠어. 돌아간 날과 내가 갇힌 날이 다르니까.” 나엘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똑바로 앉았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보다 구체적인 기록이었다. 나는 이르사에게 마지막으로 본 동생의 옷과 함께 걷던 길, 저녁을 먹었던 장소를 물었다. 그녀는 바닷바람을 피하려고 낡은 염전 벽을 따라 걸었다고 답했다. 미라가 그 길을 해도에 표시했다. “찾을 수 있나요?” 나엘이 물었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찾았다고 말하려면 그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어린아이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테온의 허리춤에 매달린 부러진 왕관을 계속 바라봤다. 테온이 눈치를 채고 왕관을 들어 보이자 아이가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가리켰다. 금속 아래에 일곱 개의 도장이 겹쳐 찍혀 있었다. “그걸 어디서 봤니?” 테온이 무릎을 굽혔다. 아이는 이르사를 살폈다. 이르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에 쥐고 있던 종이표를 폈다. 표의 일곱 번째 칸에는 똑같은 도장 자국이 있었다. 도장의 모양은 루메르 왕실 문장이 아니라, 둥근 지도를 손으로 받친 그림이었다. 테온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왕실의 관문 검인과 닮았어. 그런데 왜 일곱 개지?” “전하의 나라엔 왕이 일곱 명이었나요?” 내가 물었다. “왕이 한 명이어도 관청은 일곱이 넘지.” “그럼 세계가 멸망해도 관청은 살아남을 수 있겠군요.” 테온은 나를 흘겨봤지만 이내 웃었다. 우리는 왕관의 도장과 아이의 표를 나란히 놓았다. 일곱 도장 가운데 여섯은 닳은 방향이 달랐고 마지막 하나만 가장자리가 매끄러웠다. 헤론은 닳은 순서를 살펴 실제로 한 번에 일곱 도장을 찍은 물건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나엘이 창고 출입 명부를 가져왔다. 일곱 번째 도장은 선박 인수란이 아니라 ‘돌아갈 길 확인’이라는 낡은 항목에 쓰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상단은 그것을 승객 수로 바꿔 쓴 듯했다. 그러나 옛 검인 자체는 사람의 숫자를 의미하지 않았다. “원래 누가 확인했을까?” 미라가 물었다. “떠난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 둘 다였을지도.” 시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테온은 왕관을 손바닥에 놓고 한참 바라봤다. 왕국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사람들의 귀환을 확인하는 도구였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는 왕관 아래쪽의 작은 금구를 눌렀다. 금속이 찰칵 열리며 접힌 종이 하나가 드러났다. 종이에는 루메르 항만의 옛 표어가 적혀 있었다. ‘왕관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왕관은 돌아오는 사람의 길을 증언한다.’ 테온의 눈가가 붉어졌다. “내 아버지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어.” “아버지가 직접 썼는지도 아직 모르지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이 말을 지켰는지는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왕자는 종이를 접어 곧바로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읽은 글을 한 번씩 따로 베껴 두었다. 나중에 한 사람이 사라져도 문구까지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했다. 오후에는 시엘의 수리소에서 작은 증언 모임이 열렸다. 벨과 로엔은 서로 다른 시간의 구조 경로를 각자 그려 왔다. 이르사는 자신이 본 염전 벽과 저녁 식사 시간을 기록했다. 나엘은 동생의 이름을 처음에는 쓰지 않았다. 동생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단 명부에 다시 등록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미라는 사람들 앞에 선박 출항 기록을 올렸다. “실제 탄 승객을 확인하려면 배에 있었던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이 일곱 칸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목선에 있던 아이는요?” 키오가 물었다. “그 아이가 직접 확인한 것은 자기 표와 창고의 상황뿐이지.” 나는 답했다. “그 기록은 소중하지만 다른 여섯 사람의 생존을 대신 증명하지 않아.” 키오는 입술을 내밀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우편통이 그 가운데 누군가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거워 보였다. 우리는 여백항 임시 징수권을 조사할 근거를 모았다. 나엘이 사본을 만들고, 마르켄은 엘루안 관측소의 날짜 도장을 보냈다. 시엘은 현장 측량을 증언했고 테온은 루메르의 옛 검인 기록을 확인했다. 권한이 하나의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으니 상단도 증거를 한 번에 빼앗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해가 기울 때 백동상회의 경비대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칼보다 두꺼운 계약서가 앞섰다. 사내는 창고 수리비와 구조 인건비가 상단 소유 시설에 발생한 비용이라며 우리에게 보증을 요구했다. “우리가 고장 낸 적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당신들 구조 작업 중 파손이 발생했지.” “파손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조사해야죠.”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항구 운영권자야.” “그걸 보여 주실래요?” 그는 밀랍 봉인이 붙은 인가증을 내밀었다. 인가증 아래에는 검은 별과 함께 아르켄 경계조사국의 옛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브렌이 조사받던 날 이후의 새 발급 날짜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를 떠올렸다. 조사 중인 사람이 이곳의 운영을 새로 허가했을까. 또는 도장을 빌려 쓴 사람이 있을까. “이 문서는 별락 대륙에서 누가 대조했습니까?” 시엘이 물었다. 경비대장은 대답 대신 인가증을 접었다. “내일 정오까지 항구를 떠나. 아니면 이곳에 남은 사람들의 표를 모두 회수할 거야.” 테온이 반쪽 왕관을 높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지만 또렷했다. “그 표는 당신들 소유물이 아니오.” 경비대가 돌아간 뒤 나는 오래된 표어를 다시 읽었다. 왕관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을 증언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곳의 왕국은 죽은 뒤에도 해야 할 일을 남겨 놓은 셈이었다. 밤, 이르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표가 없는 어린아이가 잠든 방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저 애가 기억하는 선착장에는 늘 다른 아이 한 명이 있었어요. 이름은 몰라도 별명은 알죠.” “뭐라고 불렀습니까?” “여백. 어른들은 그 애를 그렇게 불렀어요. 자기가 사라지는 날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나는 빈 지도에 그 별명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이르사가 그 말을 한 시각과 장소를 수첩에 적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한 사람의 이름이 이 항구의 소유물이 될 것 같았다. 지도를 덮는 순간 종이 가장자리에 얇은 은선이 켜졌다. 그것은 아이가 가리킨 일곱 번째 도장으로 향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 번째 기준점이 처음으로 아주 작은 반응을 보였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